수학에 대한 두려움, 교사와 학생 사이

by 인애

수학 시간에 교과서를 같이 공부하고 수학 익힘책을 풀라고 했다. 아이가 울상이 되어 다가와 말한다.

"선생님, 머리가 아파요. "


그다음 등교하는 날, 수학 시간이다.

"선생님, 속이 안 좋아요."

같은 아이다.


출근을 하는 아침, 학부모에게 전화를 받았다. 격일제로 등교하는 요즘, 일주일에 두 번 아이가 학교에 가는 날이면 예민해지고 아프다는 원인이 '수학'인 것 같다고 했다.



학교에서 얼마 전 진단평가를 쳤다. 초등 3학년의 진단평가는 3R이라고 해서 일기, 쓰기, 셈하기를 평가한다. 초등 1학년부터 2학년 과정의 기초적인 내용을 가지고 시험을 치는 것이라 시험이 정말 쉽다. 그 시험 25문제 중에 대부분의 우리 반 아이들이 23~25점이었다. 우리 반에 한 아이만 19점이었는데 그 아이가 바로 이 아이다. 수업태도도 좋고 글쓰기나 다른 과제는 속도는 느리지만 너무 잘하는 아이라 살짝 불러서 이야기했다. "우리 반에 다 23점 이상인데 넌 19점이야. 수학 공부를 더 신경 써서 해야 해. 지금 수학을 놓치게 되면 앞으로 더더더 힘들어져!" 조금 충격이었을 것이다. 사실은 그런 충격을 받아야 공부를 하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했다. 많이 못하는 아이였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거다. 조금만 신경 쓰면 될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시간을 거꾸로 짚어보니 그 아이는 그 이후로 아팠다. 그다음 등교일에는 아침에 기침이 난다고 했고, 그다음 등교일에는 머리가 아픈데 학교에 왔다. 그리고 수학 시간이 지나고 갑자기 속이 울렁거린다고 했다. 그때까지 그게 수학 때문인지 몰랐다. 그저 몸이 안 좋은가 보다 하고 집으로 보냈다.



그래서 그 아침에 학부모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아픈 것은 학교에 오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 때문이고, 학교에 오는 것이 힘든 이유는 수학 공부 때문이고, 수학 공부가 힘든 것은 수학 시간에 자꾸만 옆에 서서 이것저것 아는지 확인하고 자꾸만 평가지를 주는 선생님 때문이다. 내 딴에는 그 아이에게 더 신경을 써서 지도한다는 것이 아이에게는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 것이다. 정말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아이와 더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했다. 그날 아이는 2교시가 지나서야 학교를 오고, 수학 곱셈 문제를 푸는데 또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수학책을 덮고 엎드려서 좀 쉬라고 했다.


그러고는 그냥 이렇게 두는 것은 교사로서 방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배울 내용은 곱셈의 첫 차시라 아주 쉬운 내용이 아니던가. 오늘 배울 내용을 모르면 내일도 모르고 그다음도 모르고, 또 머리는 아플 거고 그다음 날도 아플 것이다. 아이의 자리로 가서 오늘 해야 할 수학 익힘 두 바닥을 함께 풀고자 했다. "너는 머리가 아프니 말만 해. 선생님이랑 같이 해보자"라고 하며 같이 풀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2학년 때 꼭 익히고 와야 할 구구단이 잘 안된다. 좌절했다. "3 곱하기 4가 뭐야?"라고만 물었는데도 자꾸 눈물을 흘릴려고 한다. (친절하게, 다른 아이들에게 들릴까 봐 소곤대며 말했는데도...)


방과 후 아이와 이야기를 해보았다. "수학 공부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가 아픈 거니?"라고 물으니 아니라고 한다. "그럼 언제부터 머리가 아팠니?"라고 하니 화요일, 목요일이란다. 일주일에 두 번 그 아이가 등교하는 날이다. 엄마와 선생님은 네가 머리가 아프고 속이 안 좋은 것이 수학 때문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그리고 수학을 제시간에 다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면 집에 가서 해오라고 이야기했다. 엄마에게 도움을 받아서 다 하면 선생님에게 보여주고, 집에서도 다 못하면 확인하지 않겠다고 했다. "너의 속도대로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라고 했다. 아이의 마음을 더 듣고 싶었지만 아이는 그저 듣고만 있었다.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내 마음속에 숨겨진 마음은 '수학 때문에 학교에 오기 싫다면 그래도 즐겁게 학교라도 오는 편을 선택하자. 수학은 포기하고'였다.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했다.


이번 경우처럼 이렇게 예민한 아이들은 흔하진 않지만 해마다 수학이 부진한 아이를 몇 명은 만나게 된다. 결국 이 아이는 학년말 수학을 더 힘들어하게 될 것이고, 내년에는 교과 학습 부진이 될 것이며 고등학교를 마치는 그 순간까지 수학 시간을 괴로워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저학년을 맡게 되면 '아! 지금 놓치면 안 되는데!' 하는 순간과 자주 만나게 된다. 수학 공부에 더 힘을 쏟을 계기를 주고 다른 아이들과 수준을 맞추어 함께 공부해나갈 수 있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이는 원하지 않는 듯하다. 지금까지는..


공부 말고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성공해서 살 수 있다. 하지만 공부 말고 다른 길로 간다고 해도 보통 고등학교까지 학업을 지속한다면 얼마나 많은 수학 시간을 보내야 할까. 그때마다 아이가 느껴야 하는 좌절감이 나는 두렵다. 한편으로 수학을 못해도 다른 꿈을 펼칠 수 있고 주눅 들지 않는 사회에서 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그런 사회를 만든 것 또한 어른인 내가 아닌가. 문제가 잘못되었는데 잘못된 문제에 맞게 해결방법을 찾아내라는 못된 어른 같다.



다음 수학 시간에 그 아이는 또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학부모가 말하는 이 아이의 이런 예민함이 무뎌지지가 않는다. 사실은 왜인지 자꾸만 친절해질 수 없는 마음이 든다. 그 아이에게 "머리가 아파요"라는 말을 듣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 수학 익힘을 풀기도 전에 나는 말하게 될 것이다.

"풀 수 있는 만큼만 풀고 머리 아프면 집에 가서 해. 집에서도 못하겠으면 안 해도 괜찮아."

가슴 아파 차마 하지 못하는 말, 어쩌면 이것은 포기 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르친 아이가 수포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생각보다 크다. 나의 그 두려움도 아이들이 수학시험으로 인해 학교에 오기 싫은 두려움과 맞먹을 것이다. 그 날 이후 나도 명치가 아프고 자꾸만 체한 듯 소화가 안된다. 머리까지 아프다. 아이의 증상과 꼭 닮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실패의 끝에서, 관계 맺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