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과의 치열한 사랑

by 인애

1학년 담임을 같이 하자는 친한 선생님의 권유에 선뜻 그러자고 답하지 못했던 것은 그동안 1학년을 했을 때의 경험 때문이다. 1학년 아이들은 학교가 처음이다. 모든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한 번으로는 안된다. 반복해야 한다. 아주 여러 번, 어린 영혼이 다치지 않도록, 친절하게. 힘들지만 할 수 있다. 그 정도는... 교직 경력이 제법 되지 않는가. 그런데 강적을 만났다. 1학년 담임을 세 번째 하지만 이번엔 진짜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경이다. 경이는 바른 자세로 잘 앉아 있지 못한다. 옆을 보고, 뒤를 보고, 앞에 선생님만 빼고 다 보고 있는 듯하다. 책을 펴라고 해도 펴지 않는다. 쪽수의 숫자를 불러주어도 교과서를 찾지 못하겠다고 한다. 주변의 친구들이 일어나 책을 펼쳐준다. 쓰라고 해도 쓰지 않는다. 수학 학습지를 풀라고 하면 당연히 풀지 않는다. 문제를 읽어준다. 그래도 하기 싫다며 안 하고 있어서 잔소리를 하면 그 학습지를 찢는다. 조금씩 조금씩 소리도 내지 않고 찢어서 바닥에 버린다. 줄을 서면 항상 새치기를 한다. 늘 잔소리를 해도 늘 앞에 서려는 경이와 씨름하는 것은 일상이다.

급식소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야채를 한 개만 더 먹으라고 했다. 그러자 식탁 밑으로 들어갔다. 영양사 선생님이 오셔서 설득했다. 내 말도 안 듣는데 영양사 선생님 말을 들을 리가 없다. 일이 커졌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해야 한다는 공평함의 잣대로만 경이를 대해서는 안되었다. 나는 아직 교사로서 부족하구나! 너 노력해야 한다고 경이가 알려준다.



몇 달이 지나자 경이와 내가 둘 다 괴롭지 않은 방법을 찾았다. 잘 구슬려 요리조리 경이의 기분을 맞춰주어야 한다. 수업 시간에 책을 안 펴고 있을 때 하기 싫어하는 것 같거나 기분이 안 좋으면 그냥 내버려 두고 기다린다. 살짝 가서 "공부하고 싶을 때 책 펴~"라고 다정하게 말해주어야 한다. 그러다 기분이 좀 나아진 것 같으면 살짝 가서 몇 쪽인지 알려주거나 책 펴는 것을 도와주고 설명을 해준다. 혹시 내가 조금이라도 "수업 시간에 책을 왜 안 펴니?" 차갑게 말하면 경이는 단번에 삐딱함으로 갚아주며 그 수업 시간 내내 나를 힘들게 한다.

급식소에서 반찬을 먹어보라고 한 번 이야기해보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돌리면 더 권유하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을 생각하면 공평하지 않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상황이 악화되면 경이를 달래느라 다른 아이들을 돌볼 시간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우리가 서로에게 익숙해질 때쯤 뜻밖에 교감선생님이 등장한다. 복도에서 뛰는 경이에게 교감선생님이 서라고 했지만 경이는 교감선생님을 피해 슬며시 숨어버리고 말을 듣지 않고 도망을 갔다. 교감선생님은 이런 아이는 처음 본다고 하시며 경이의 부모님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경이의 부모님은 나에게 전화를 해 교감선생님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며 따지고 든다. 아!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와 경이와의 문제뿐 아니라 교감선생님의 감정도 학부모의 서운함도 돌봐야 하는 것이다. 교감선생님의 화를 식혀드리고, 경이 부모님께는 교감선생님을 대신해 사과를 했다.


한글을 조금씩 읽고 쓸 때쯤 경이가 다가와 쪽지를 전해준다. 쪽지도 그냥 전해주는 법이 없다. 쉬는 시간에 내가 앉아 있는 자리 뒤로 슬금슬금 다가온다. 누구에게나 보이는데 혼자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어딘가 숨겨놓고 간 편지에는 '선샘님 사랑해요 경이가'라고 적혀있다. '선생님도 경이를 너무 사랑해'라고 쓴 답장을 경이의 서랍에 넣어두었다. 편지가 감동적이고 고마운데 어딘가의 싸함이 있다. 내일도 분명히 시작될 전쟁 같은 사랑. 내가 화내면 지는 싸움.

치열한 연애를 하는 기분이다. 경이가 나에게 삐치고, 내가 경이에게 삐치고. 다음 날이 되면 새롭게 사랑한다며 고백하고 이렇게 치열한 연애도 없다. 집에 와서도 생각한다. 내일은 경이와 어떤 일이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기대가 되는 종류의 설렘은 아니지만 이런 치열한 사랑도 있는 것이다.



"경이야. 너를 만나 선생님은 정말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선생님에게 부족한 인내심을 기르고 감정 조절하는 법을 배운단다. 날마다 어제 속상했던 일은 잊고 선생님에게 웃으며 인사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너를 보면서 선생님도 날마다 새날이 되려고 노력해. 경이에게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인 것처럼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단다. 어쩌면 부족한 선생님이 많이 배우라고 네가 우리 반이 되어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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