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30.
아이들이 학교에 온다.
매일매일 말이다.
그간 당연한 이 일이 당연하지 못한 채로 7개월이 흘렀다.
텅 빈 것 같았던 학교가 가득 찼다.
아이들 목소리로.
그간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두 번 오면 온라인 학습에서 중요한 부분을 짚어줘야 하고, 수행평가도 해야 하고, 새로운 진도도 나가야 하고, 확인할 과제도 많아 하루 종일 신경이 곤두섰다. 아이들이 오는 날 해야 할 것을 다 하지 않으면 최대 일주일을 아이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또 오지 않는 날은 오지 않는 날대로 회의와 온라인 수업 준비를 하며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었더라?'라는 질문을 계속 가진 채로 말이다. 사실 아이들이 학교에 없으면 마음은 불편하지만 업무를 하는 시간은 더 확보된다. 그래도 피곤한 건 여전했다.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아이들도 학교에 오지 않는데 날마다 해야 할 일을 왜 이렇게 다 못하는 건지, 퇴근할 때면 자책하곤 했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감정도 느꼈다. 학교에서 일은 하고는 있지만 아이들을 매일 보지 않는다는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왠지 학교 주변을 걸어 다니면 내가 누군지 알아보고 아이들도 매일 돌보지 않으면서 월급 받는다고 손가락질할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런 마음의 짐이 내 몸의 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매일 등교한 저번 주부터 이상하게 컨디션이 좋다. 뭔가 활기가 있다. 정말 내 몸이 좋아진 건지 너무 바빠서 피곤하다고 느낄 틈도 없는 건지 아직은 확실치 않다. 방과 후에는 수업 준비와 아이들이 학교에 오기 때문에 챙겨야 할 것을 확인한다. 쉴틈이 없다. 퇴근시간까지 해야 할 리스트를 체크하며 꼼꼼하게 일을 한다. 일의 능률이 오른다.
또 변한 것은 아이들과 하고 싶은 것이 많아진 거다. 글쓰기 공책을 준비해서 글쓰기도 얼른 같이 하고 싶고, 나만의 책 만들기도 하고 싶고, 자기 주도적 학습을 위해 데일리 플래너도 같이 써보고 싶고, 틈새 독서 기록지도 하고 싶고, 그림책도 같이 읽고 싶다.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이 많아지는 건 아이들에게는 나쁜 징조일 수 있다. 아이들은 매일 등교하는 것이 이제는 익숙하지 않아 힘들 텐데 자꾸 교사가 이것저것 하자고 하면 얼마나 피곤할까? 아이들과 호흡 맞춰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아이들에게 잔소리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아이들과 일주일을 내내 만나보니 그동안 몰랐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좋지 않은 모습이다. 수업태도, 연필 잡는 것, 글씨 쓰는 것, 수학 문제 푸는 방식, 교실에서 습관적으로 뛰는 아이. 아이들의 모습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니 그런 것들이 눈에 다 들어온다.
"연필 바로 잡아라."
"의자 자꾸 까딱거리면 뒤로 넘어져서 다친다."
"못 알아보겠다, 글자를 반듯하게 적어라."
"선생님 말이 끝나면 질문하자."
이런 잔소리가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아이들이 느끼기엔 참으로 귀찮을 것이다.
매일 등교를 하고 첫 주말을 맞이하는 금요일, 하교를 아이들은 그렇게 좋아할 수 없다.
"선생님, 그동안 못한 캐릭터 그림 그리기를 주말 내내 할 거예요."
"가족들과 캠핑을 가서 주말을 너무 기다렸어요."
"평일에 학교 오니 학원 가면 놀 시간이 없었는데 주말에는 하루 종일 놀이터에서 딱지 치기 할 거예요."
집에 가는 아이들이 자꾸만 희망찬 계획들을 털어놓는다. 아이들의 기쁨에 나도 마음이 전염된다.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이렇게 소중한 주말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아무튼,
아이들을 매일 보면서
열정이 다시 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