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 도서관을 향해 오르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의문점 하나. 왜 많은 도서관들은 이렇게 언덕 위에 있는가! 원망을 담아 그 이유를 고민하다 보면 어느덧 도서관에 도착한다. 그리고는 결론짓는다. 도서관이 인간의 정신건강뿐 아니라 신체적 건강도 생각해 주는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오늘은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이 덜 외롭다. 아들과 함께 가기 때문이다. 아들이 오늘 도서관에 가자고 먼저 이야기를 했다. 감동받은 나는 행여 아들의 생각이 바뀔까, 아들 친구들이 혹시 놀자고 연락을 할까 싶어 급하게 모자만 쓰고 함께 도서관으로 향했다. 11살 아이가 도서관에 먼저 가자고 하는 것은 그곳에 그것이 있기 때문이다. 만화책과 초콜릿라테. 그리고 마침 그것이 없기 때문이다. 친구와의 축구 약속.
도서관에 들어서면 한 인물의 동상이 사람들을 반긴다. 바로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이다. 도서관의 이름인 '연암'은 구인회 회장의 호이다. 그는 고향 진주에 도서관을 짓고 진주시에 기부했다. LG그룹 창업주뿐 아니라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도 진주 지수초등학교의 전신인 지수공립보통학교를 다녔다. 이렇듯 진주에는 기업가가 많이 나와 기업가의 도시라고 진주시에서 열심히 홍보하고 있다. 뭐 그런 사실들이 나에게 다 무슨 소용이야하고 시니컬하게 생각하다가도 내가 가장 애정하는 이 도서관을 떠올리자면 아주 큰 혜택을 받은 것 같다. 도서관 건립과 관련된 LG 관계자 여러분, 존댓말로 인사할게요.
참, 많~이 감사합니다!
이곳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도서관이다. 그래서 도서관 여행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당연히 첫 번째 장소로 쓸 수밖에 없었다. 학창 시절엔 공부하기 위해, 어른이 되고선 집이 답답할 때 혼자 있는 시간을 위해, 부모가 되고선 아이들의 독서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그리고 해마다 벚꽃이 피는 봄에는 벚꽃구경을 하러. 산 위에 있는 이 공간이 늘 그 자리에서 나에게 위안이 되어주었다.
연암 도서관에서 보냈던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공부보다는 벚꽃이 먼저 떠오른다. 벚꽃철이 언제인지 그다지 관심도 없이 공부에 찌들었던 고등학교 시절,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힘들면 친구와 언덕에 앉아 수다를 떨곤 했다. 우연히 도서관 언덕에 친구와 앉아있던 그날에, 함박눈처럼 떨어졌다. 벚꽃이. 그렇게 한꺼번에 떨어지던 벚꽃은 처음이었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데도, 영화 같던 그 장면은 내 머릿속에 선명하다. 그때를 떠올리면 그때가 벚꽃 같은 청춘이었던 것만 같다. 그 풋풋하고 아름답던 시절이 떠올라 벚꽃철이 되면 늘 이곳에 오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는 벚꽃처럼 여드름이 난, 공부에 찌든 미성숙한 청소년이었겠지만...)
이곳이 좋은 또 하나의 이유는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다가 지루할 때 걸을 수 있는 산책로와 오래된 벤치들 때문이기도 하다. 그때 앉아있던 그 의자들은 색칠만 덧 씌워진 채 그대로 있다. 그 벤치에 앉아서 대나무 숲에서 들리는 바람 소리, 가끔 존재를 나타내는 새소리를 들으며 멀리 남강을 보고, 남강처럼 맑은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머릿속이 상쾌해진다. 신발을 타고 오르는 개미들도 반가울 정도로.
북카페연암오래된 이 도서관이 몇 년 전 리모델링을 하며 도서관 안에 작은 카페가 생겼다. 아메리카노가 1500원 밖에 하지 않고 다른 음료 또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아메리카노에 따뜻한 스콘을 단돈 4000원에 먹을 수 있다. 경남에서는 꽤 알려진 커피 체인점과 한국남동발전의 후원으로 진주시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수익보다는 공공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들어 주신다. 카페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일하시는 분들의 모습이 꼭 이 오래된 도서관을 따뜻한 활기와 닮았다. 나도 좋아하는 도서관을 떠나지 않고 나이가 들어도 저런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한 살이라도 총명할 때 따놓아야 하나?
오늘 아이는 초콜릿라테 대신 아이스티사람이 많을 때면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는데 따뜻한 커피가 나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메리카노에 물이 너무 많아 커피인지 보리차인지 하는 날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아무튼 이 카페가 있기에 초콜릿 라테 한 잔과 쿠키를 사준다는 핑계로 늘 아이를 유혹할 수 있다.
공부를 하는 데는 도저히 발휘되지 않는 아이의 집중력이 오늘도 발휘된다. 놀랍게! 좋아하는 만화책과 달콤한 음료가 있으니. 아이는 '놓치마, 정신줄'을 정신줄을 놓고 킥킥거리며 보고 있다. 만화책이라도 괜찮다. 그렇게라도 집에 가자는 소리 않고, 도서관에서 오래 머물며 친구가 되어주는 아들이 있어서 여기 있는 '현재'의 내가 행복하니까 말이다.
도서관 산책로에서 발견한 반가운 문장하나
<진주시립연암도서관>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모덕로 47번 길 13-17
(도서관 뒤편 선학산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전망대에서 멋진 남강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휴관일: 매월 첫 번째 월요일, 설 추석 연휴
(타 지역 공립 도서관에 비해 휴관일이 한 달에 한번 정도라 더 좋다.)
-운영시간: 종합자료실 09:00~22:00 (어린이자료실은 18:00까지, 주말은 모두 17:00까지)
-소장자료: 268,093권 (오래된 도서관이라 소장자료가 많고, 신간이 빨리 들어오는 장점이 있다.)
종합자료실은 두 개의 층이 개방적으로 이어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