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의 마지막 날. 제주의 도서관 중에 한 군데를 가기로 했다. 고민하다 결정한 우당도서관. 배를 타고 집으로 가야 하기에 제주항 옆에 위치한 것도 좋았고, 인터넷으로 찾아볼 때부터 '우당'이라는 그 이름이 좋더라. 우당탕이란 단어도 생각나고, 소리 내어 부르기도 좋다. (탐라도서관이나 한라도서관보다는...;;)
도서관에 가서 살펴보니 '우당'이라는 이름은 4대 제주도지사(1949)를 지내신 우당 김용하 선생의 호였다. (하찮게 우당탕을 떠올리다니!) 6.25 전쟁 때 김용하 선생은 차남과 함께 납북하여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고, 남한에 남아있던 다섯 명의 아들이 아버지를 기리는 마음을 모아 1984년에 개관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김용하 선생의 다섯째 아들이기도 하다.) 2021년 도서관대상을 받았고, 얼마 전 리모델링을 완료하고 이번 달 초에 재개관했다고 한다. (마치 우리가 올 때를 맞춰 재개관했네라며 의미를 부여...)
이상하게도 제주도 여행을 올 때마다 태풍이 북상하거나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았는데 이날도 비가 왔다. 하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는 도서관에 가기에 얼마나 좋은 날인가. 같이 여행 온 딸과 남편은 도서관을 거부하며 바로 옆 국립제주박물관에 향했고, 아들이 나의 도서관 친구가 되어주었다. 아들은 웹툰을 볼 생각에 신이 났고, 나도 아들만큼 신이 났다. 여행 와서 웬 도서관이냐고 말하지 않고 같이 와주는 아들이 있어서.
1층 로비의 모습
들어가니 초록초록한 로비가 우리를 맞아준다. 싱그러운 제주도 곶자왈 숲이 떠오른다. 리모델링 후 새로 생긴 공간인데 잠시 앉아보니 숲에 있는 것처럼 눈이 상쾌하다. 한쪽 벽에는 제주도 섬 모양의 책꽂이가 있다. 도서관에 몇 시간 머물다 보니 이 도서관은 제주도라는 특색을 잘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향토자료를 주로 보관하는 제3자료실이 따로 있을 정도로 말이다.
아이와 1층 어린이자료실에 들어가 보았다. 평일인데도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많았다. 인상적인 것은 육아서 코너가 따로 있어 어린 자녀와 부모가 함께 공간에 머물기 좋다는 점이다. 또 한쪽에 학습 만화 코너가 따로 있는데 역시 그 책상에 앉아있던 아이들의 독서 열기가 특히 뜨겁게 느껴졌다. 아이가 읽고 싶어서 검색해 본 책이 어린이자료실에 없었다. 우리는 여행자라 열람만 가능하기에 성인책이 있는 종합자료실에서 같이 읽을 수 있어서 오히려 반가웠다. 아이가 이렇게 말한다.
"고학년이 되니 어린이자료실에서 밀려나는 느낌이 약간 들긴 하는데, 그래도 내가 성숙해진 거겠지?"
1층 어린이 자료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낮은 서가가 인상적이다.
2층에 올라가니 제1자료실과 제2자료실이 있다. 제1자료실에는 총류~문학 자료가 있었고, 제2자료실에는 역사와 참고자료가 있었다. 2층 제1자료실에서 보고 싶은 만화책을 기어코 찾은 아이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2층 제1자료실에서 아이는 읽고 싶은 책을 찾았다.
책장 사이에 긴 테이블에 많은 사람들이 책에 집중하고 있다. 작은 소리도 들릴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였다.
어디 도서관에 가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창가 자리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창가자리가 마침 비어있어 기분 좋게 자리를 잡았다. 아이는 그토록 찾았던 인기 웹툰 [놓지 마 정신줄]에 금방 빨려들어간다. 다른 도서관에는 몇 권 없었는데 우당도서관에 시리즈가 많다며 기뻐한다.
창가를 통해 풍경이 보여 책을 읽다 눈을 쉬기에 좋다.
우당도서관은 역사가 있어서인지 책이 조금 낡은 편이었다. 하지만 신간 코너를 살펴보니 신간의 경우 2~3권씩 책을 구입해 놓은 경우가 많았다. 진주의 경우는 거의 신간이 한 권씩밖에 없는 경우가 많은데 확실히 우당도서관은 규모가 있는 편이다. 책에 집중하는 아이를 두고, 다른 곳도 둘러보았다. 사실 우리나라 공립 도서관은 외국처럼 크게 개성 있는 모습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작은 차이를 찾아내는 것이 도서관 여행의 묘미다.
3층 - 제3자료실은 제주향토자료, 제4자료실은 정보누리터라
원래 3층은 열람실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3층 열람실을 없애고 자료와 열람이 동시에 가능한 개방적인 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독서실처럼 공부를 하던 사람들은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개방적인 공간에서 카페처럼 공부하고 책을 읽는 것이 개인적으로 더 좋다. 열람실이 있던 곳이라 그런지 앉아서 책을 읽거나 공부할 수 있는 좌석이 매우 많아서 공부하려는 사람들도 크게 어려움은 없을 것 같다. 대출이 된다면 책을 빌려서 3층 제4자료실 창가에서 읽고 싶었다. 2층보다 공간이 개방적이라 편안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는 대출이 불가능한 여행자다. 이렇게 열람만 할 수 있다는 것의 장점도 있다. 빌려갈 수 없기에 정해진 시간에 그 책에 더 몰입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다.
도서관을 둘러보며 우당도서관은 제주의 환경을 지키는데 진심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바일 회원증을 이용해 플라스틱으로부터 제주를 보호해 달라는 문구가 자료실 입구부터 안내되어 있는 것이 꽤 인상적이었다. 다른 도서관에서는 본 적이 없는 문구이기 때문이다. 또한 해마다 제주시 올해의 책을 선정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환경에 관한 책이 몇 권 있었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처음으로 스타벅스에서 다회용 컵을 사용하고 반환하는 경험을 해보았다. 또한 신문에서 제주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탄소중립도시 예비대상으로 선정되었다는 기사를 본 일도 떠오른다. 그전에 여행 왔을 때보다 많아진 바다 위 풍력발전기를 보면서, 제주가 나아가고 싶은 방향을 응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