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할만한 일

중재가 필요한 순간

by 도토리수집가

이런 순간을 글로 쓰면서 한 번씩 어른이 되는 건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잘 키우고 있는지 자신할 수 없지만, 딸들이 잘 자라고 있는 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중재를 자처하며 살고 있다. 나의 중재가 필요없는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오랜만에 등산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첫째 아이는 한 달 전부터 친구들이랑 잡아놓은 약속이 있어서 첫째 아이를 빼고, 남편과 둘째 아이와 셋이서 가기로 했다. 먼저 나가면서 점심식사메뉴로 햄버거를 시켜주기로 했는데, 1인분 배달이 되는가 싶기도 하고 해서, 사와서 먹는 건 어떠냐며 얘기를 하고 있었다. 농담반 진담반이었고, 둘이서 얘기 중이었다.


아직은 초등학생인 첫째 아이는, 혼자서 패스트푸드점에 가본 일은 없으니, 친구들과 점심 이후에 만나기로 했는데, 이제와서 이러냐면서 울 듯한 표정으로 다소 짜증섞인 표정으로 얘길했다. 그렇다면 알겠다고 얘기를 하려는데, 남편이 끼어들었다.

"왜 부모한테 짜증을 내. 그게 짜증낼 일이야. 가서 사먹는게 뭐 어때서?"

블라블라블라...


어이가 없었다. 본인이 애들과 얘기할 때 끼어들지 말라고 하는 그는, 이렇게 번번이 내 얘기에 끼어들어 어깃장을 놓는다.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잠깐 조용해 보라며, 번호를 붙여가며 중재를 시작했다.

"1번! 나랑 얘기중이고, 2번! 당신이 끼어들어 욱한 거고, 3번! 니가 짜증내서 이렇게 된거야, 내가 1인분 배달이 되나 싶어 물어본거니 알아보고 연락줄게."라고 말이다.


그리고 첫째 아이를 남겨둔 채 산으로 향했다. 어처구니 없이 살벌한 분위기에 눈치만 보는 둘째 아이도 안쓰럽고, 괜히 봉변을 당한 첫째 아이도 안타깝고, 이 상황을 해석하지 못하는 남편도 어처구니 없었다. 산 초입까지는 자동차로 이동했는데, 차 안의 불편한 분위기도 해소하고, 눈치보는 둘째 아이에게도 이유를 알려줘야 하므로, 남편에게 욱하지 말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편의 대답은 예상대로 '부모한테 짜증을 내서'였다. '어디 부모한테 짜증을 내냐'면서.

그래서 얘기해주었다. '짜증을 낼 만한 일'이 아닌 것 맞지만, 그렇다고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짜증을 낼 수 있는 거냐고. 그저 '짜증낼만한 일'이 아니라고 알려주어야 하는 거라고 말이다.


첫째 아이 입장에서는, 패스트푸드점을 성인들처럼 혼밥하기 좋은 곳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고, 혼자서도 가본 일이 없으니, 사다 먹으라는 이야기는 친구와의 약속을 변경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그러니 어른들의 이야기는 이러이러한 뜻이라고 알려주고,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얘기하면 되지, 짜증을 낼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면 될 일이라고 말이다.


남편은 자신이 너무 욱했음을 인정했다. 누구에게라도 짜증낼 일은 아니라는 내 말도 적극 수긍했다. 이렇게 쉽게 수긍할 걸 왜 욱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직도 착한 아들같은 남편이다. 어머님의 말을 빌자면, "입 댈 것 없는 아들"이다. 다만 나이많은 남의 집 착한 아들은, 본인의 딸이 본인처럼 순종적이고 착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번번이 이런 사단이 난다. 남의 집 착한 아들같은 딸은, 우리집에는 없기 때문이다.


또 어느날의 일이다. 카톡으로 날아온 쇼핑안내를 보니 머리끈을 매우 싸게 팔고 있었다. 아침마다 머리끈 찾아 헤매는 딸들, 그리고 나를 생각하며 잔뜩 주문했다. 이틀 후 택배가 도착했다. 배송된 머리끈을 보며, 세 명이서 나눠갖자고 했다. 둘째 아이는 마침 목욕을 하고 있던 터라, 첫째 아이에게 몇 개 고르라고 했고, 그래도 되냐며 다소 망설이다가 몇 개 골랐다. 둘째 아이가 목욕하고 나오니, 첫째 아이가 "나는 머리끈 골랐어. 너는 남은 거 해"라고 했다. 예상치 못하게 둘째 아이가 갑자기 "앙~"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건 공평하지 않다고. 나도 머리끈을 고르고 싶다고 말이다.


그리고 또 예상치 못하게 남편이 끼어들었다. 매우 큰 소리로. "그게 울 일이야?"

'착한 아들이란~ 정말~'이라고 생각하며, "이봐이봐~ 또 이런다~ 그게 그렇게 울 일이냐고 소리칠 일이야? 울 일이 아니라고 알려줄 일이지. 정말 이럴거야?" 농담반 진담반, 분위기를 풀어가며 나도 끼어들었다.

그리고, 다시 선택하기로 하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머리끈을 나누어 가졌다.


돌아서서 내 말을 곱씹어 생각해보았다. 울만한 일이란 뭘까. 슬프면 울어도 될까. 억울하면 울어도 될까. 울만한 일이라는 건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짜증낼만한 일이란 뭘까. 짜증은 누구에게 낼 수 있을까. 부모에게는 짜증을 내면 안되고, 동생에겐 되는 걸까. 윗사람은 안되고 아랫사람은 될까. 그건 갑질을 배우는 건 아닐까. 짜증낼만한 일이라는 건 어떤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걸까. 도대체 ~할만한 일이라는 건 무엇이란 말인가. 과연 화를 낼만한, 기뻐할만한, 분노할만한 그런 일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사전을 찾아보았다. "만하다"는 어떤 대상이 앞말이 뜻하는 행동을 할 타당한 이유를 가질 정도로 가치가 있음을, 그 행동을 하는 것이 가능함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했다. 영어로는 "deserve to". 다시 말해 울만한 일이란 눈물의 가치가 있는 일이고, 짜증낼만한 일이란 짜증의 가치가 있는 일이고, 분노할만한 일이란 분노의 가치가 있는 일이고, 기뻐할만한 일이란 기쁨의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무언가를 할만하다는 건, 그 행동이 쓸모, 중요성 혹은 올바름 등이 있는 그런 가치있는 일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사안으로 돌아가서, 애들은 짜증낼만한 일이었나, 울만한 일이었나. 남편은 화를 낼만한 일이었나. 애들도 남편도 각자에겐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다만, 듣는 사람에겐 중요하지 않은, 쓸모있지 않은 일이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짜증을 낼 수도, 울 수도, 화를 낼 수도 있는 일이 아닐까. 짜증낼만한, 울만한, 화를 낼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결국 듣는 사람의 판단일 뿐, 각자의 마음에서는 충분히 짜증낼 수도, 울 수도, 화낼 수도 있는 일이다. 감정이란 각자의 몫이니까 말이다.


나는 사실, 내가 굉장히 현명하게 대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이렇게 글을 쓰고 나서야 깨닫고 있다. 다시 얘기해주어야겠다.

"너에겐 짜증낼만한 일이었겠구나. 그렇지만 짜증내지 않고 말해준다면 아빠도 기분이 상하지 않을 것 같아."

"너에겐 울만한 일이었겠구나. 그렇지만 울지 않고 말해준다면, 엄마아빠는 덜 속상할 것 같아."

"당신에겐 화낼만한 일이었겠구나. 그렇지만 화내지 않고 말해준다면, 아이들도 좀 더 편안히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


그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제일 중요하게 여긴다는 그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사실을 알고 나면, 내 마음을 솔직하게 전달하게 되고, 결국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쓸모가 있거나 중요한 것을 행하게 될 것이다.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내 아이들이 성숙한 어른으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길, 내가 그렇게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


부모가 되어봐야 진짜 어른이 된다더니, 딸들이 나를 어른으로 키우고 있다.

그리고 남의 집 착한 아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

"우리 집엔 그런 착한 딸은 없어. 나는 그런 착한 딸은 안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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