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기억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 날을 도저히 마음에 담아둘 수 없어서 써놓았던 글입니다. 문득 그 날이 떠오를 때, 한 번씩 다시 읽어보기도 합니다. 임종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덕분에 편안해진 마지막 모습이 늘 기억에 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산소공급을 최대로 했으니, 진통제도 놓아 드렸으니, 신경안정제도 놓아드렸으니, 이제 더 이상 취할 조치가 없다고, 지켜보자고 했다. 모니터에 산소포화도는 99를 나타내었다. 안심했다. 이 밤만 잘 견디면 괜찮아지실 줄 알았다. 주무르던 손길을 잠시 멈추면 거무튀튀하게 보라색이 되어 가는 피부가, 점점 차가워지는 체온이 나타내는 징후는 무시했다. 이제 이 밤만 잘 견디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설마했던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렇게 믿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산소포화도 수치가 나타나지 않았다. 간호사를 성급히 불렀다. 간호사는 체온이 떨어져서 그런 거 같다고, 촉지가 잘 안되어서 그렇다고 했다. 다른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간호사는 소식이 없고, 수치를 확인할 수 없는 우리는 애가 탔다. 산소포화도 수치는 모니터에 아주 잠시 나타나기도 했다가, 그렇게 왔다갔다를 반복했다. 다시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는 여전히 측정기가 제공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다시 간호사실로 돌아갔다.
이번엔 심장박동수가 갑지가 막 오르기 시작했다. 다시 간호사를 불렀다. 이번엔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가져와서 교체해주었다. 그렇지만 솟구쳐 오르던 심장박동수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산소포화도는 여전히 촉지를 할 수 없었다. 심장박동수는 다시 빠르게 떨어져갔다.
그랬다. 생명이 꺼져가는 신호였다. 그제서야 다급한 마음에, 아빠를 흔들며, 아빠를 불렀다. 심장박동수는 계속 떨어져갔다. 어느 순간 엄마가, 아빠를 흔들지 말라고 했다. 그리곤 아빠 얼굴을 잘 감싸며, 마지막 가시는 얼굴을 정돈해드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아빠, 사랑해."
곧 모든 수치들이 0을 가리켰다.
그리고 아빠 얼굴은 금세 편안해졌다.
힘드셨었구나. 이제 쉬세요. 아빠.
몰랐다. 생명이 꺼져가는 신호를.
촉지가 안된다고 했을 때, 체온이 너무 떨어진다고 했을 때 알았어야 했는데. 그러면 마지막에 고마웠다고 사랑했다고 한 번 더 얘기해줄 수 있었을텐데.
종종 생각한다. 경험이 좀 더 많은 간호사였더라면 '체온이 떨어져서 그런 거에요'가 아니라, '임종이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인사를 해주세요.' 라고 해주지 않았을까. 서툴렀던 그날 그곳의 간호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날의 우리에겐 못했지만 다른 누군가의 마지막은 잘 알아채줬으면 좋겠다.
나는 아직도 마지막 얼굴을 기억한다.
그리고 안도하며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아픈거를 못견뎌했었는데. 많이 아프시긴 싫으셨나보다.
너무 심심해 했었는데, 심심하기 싫으셨나보다.
편안히 가세요. 아빠.
먼저 가신 친구분들, 친척분들과 고스톱도 치고, 술도 한 잔 하고, 대장 노릇 하면서 잘 있으세요.
이젠 안 아프실 거에요.
우리도 엄살이 많다고 구박하지 않을게요.
귀찮아하지 않고 가끔 생각할게요.
아빠 덕분에 잘 살았어요.
더 잘 살아볼게요.
나중에 우리 꼭 봐요.
꼭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