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도시의 기준, 짜장면

2022 글쓰기 모임

by 도토리수집가

2022년 글쓰기 모임 후, 멤버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제출해냈던 글입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도 여전히 중국집 한 번을 못갔네요. 그리고 올 해는 드디어 논농사를 접으셨습니다. 나이가 들며 점점 거동이 불편해지셨기 때문에요. 어찌보면 그래도 거동이 좀 편안하시고, 농사일도 할 수 있을 때가 좋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과 데이트하던 시절, 남편의 절친 둘과 한 사무실에 근무했었다(그 절친 중 1명이 대표님 동생이었다). 그들은 고교 동창이었는데, 술을 마실 때면 서로 촌놈이라고 놀리며, 서로 누가 더 시골인지를 따지곤 했었다. 시골을 정의하는 질문은 몇 가지가 있다. 그 첫 번째 질문은 바로, “니네 동네 짜장면 배달되냐?”이다. 생각지 못한 질문이었고, ‘이런 시골이 있다니!’라는 생각과 함께 "이런 촌놈들!"이란 소리가 절로 나올만큼 충격적이었다. 짜장면이 배달되지 않는 동네는 상상해본 적이 없었고, 그들의 대화는 당혹스러웠다.


시간이 흘러, 그 촌놈과 결혼을 했다. 짜장면이 배달되지 않는다는 것은, 여전하다.

그리고 그 문제의 시골동네를 자주 가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짜장면이 배달되지 않는 동네란 그 모든 끼니를 자급자족해야한다는 것이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게 아니므로 나에게 엄청 문제가 되는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가끔 모내기 등을 할 때면 새참으로 짜장면 같은 것을 배달시키고 싶어진다. 부족한 요리실력을 충분히 만회해줄 수 있을텐데. 아쉬운 부분이다. 짜장면뿐인가. 배달가능한 맛집 음식도, 그 흔한 치킨도 시킬 수 없다. 굳이 운전하고 읍내에 나가서 사와야 한다. 그런데 심지어 나는 운전도 하지 않으니 식사메뉴와 새참은 매우 고민스러운 일이다.


그렇다! 시골을 정의하는 그들의 지적은 타당했다.

“니네 동넨 짜장면도 배달 안 오잖아. 이 촌놈아!”


이제 적어도 일 년에 열 번쯤 시댁에 간다. 명절, 제사, 농사일 등으로. 시댁은 짜장면도 배달되지 않는 자급자족하는 시골이므로, 언제나 제철음식이 반찬으로 나온다. 손질된 재료에서 시작되는 도시의 음식과 달리 시댁의 음식은 상당부분 땅에서부터 시작한다. 고추, 파, 무, 시금치 등 땅에서부터 집으로 들어온 그 식재료들은 흙을 털어내고, 다듬고, 씻고, 요리하는 어머님의 노동을 거쳐 반찬이 된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그저 신선한 재료로 만든 어머님 음식이 맛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이고, 이걸 또 언제 하셨어요?”하는 안타까움의 잔소리가 절로 나온다. 집 앞 텃밭에 한 가득 시금치가 펼쳐져 있으면, “이제 시금치 그만한다면서요. 저거 누가 다 먹어요?” 이렇게 타박도 하게 된다. 식재료가, 음식이 그 자체로 보이는 게 아니라 식재료 너머의 노동이, 음식 너머의 노동이 보인다. 몰라야 하는데 아는 게 병이다. 그렇게 시댁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 어머님은 시금치도 한 가득, 파도 한 가득, 제철 음식을 손에 들려 보내신다. 기왕지사 보내는 거 잘 다듬어서 주신다. 매우 감사하지만 또 한 편, 식재료 너머에 있는 어머님의 노동이 보여서, 귀찮은 마음을 접고 결국 나와 남편의 노동으로 거듭나야 한다. 어머님의 노동이 안타까워서다.


짜장면도 배달되는 곳이었다면 좀 덜 시골스럽지 않았을까. 여전히 자신의 노동으로 때웠을 그 분들이지만, 그래도 너무 몸이 힘들고 입맛없는 어느 날에는 짜장면 한 그릇 시켜먹는 여유를 부릴 수 있을 텐데. 그런 소소한 여유마저 어렵게 허락되어야 하는 시골이, 그런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안타깝게 바라볼 나의 남편이, 안쓰럽다.


꽃피는 봄엔 땅 일구고 씨뿌린다고, 알록달록 단풍이 드는 가을에는 가을걷이를 한다고, 변변한 꽃놀이 한 번, 단풍놀이 한 번 못가는 당신들을 위해, 꽃피는 봄이 되었으니 괜찮은 중국집에 가자고, 단풍 드는 가을이 되었으니 저기 어디 맛집이 있다고, 한 번 가보자고 해야겠다. 내가 하기엔 나이가 좀 부끄러우니 어여쁜 손주들의 입을 빌려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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