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웃음소리

글쓰기모임 1-나를 드러내는 글쓰기

by 도토리수집가

정인한 작가님(https://brunch.co.kr/@yoyokid)의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쓴 글입니다. 착오로 예전 글을 올렸네요. 수정 전의 글을 그대로 두고, 약간 더 다듬었던 최종 글로 다시 올려봅니다.

첨언하자면, 글쓰기 수업은 서점 크레타(https://www.instagram.com/bookspace.crete/?hl=ko)를 통해 진행되었고, 꼼꼼한 리뷰를 원하신다면 매우 강추합니다. 작가님이 운영하는 카페(https://naver.me/GsjL71sn)의 커피도 맛있습니다. ^^


나는 매우 잘 웃는다. 꼭 웃겨서 웃는 것은 아니다. 어이가 없어도 웃고, 기가 차도 웃는다. 물론 웃기는 일엔 더 잘 웃는다. 심지어 웃음소리도 크고 호탕하다. 대학다닐 땐 중앙도서관 휴게실 근처에서 친구랑 웃으며 대화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선배가 그 웃음소리에 나를 알아보았다고 했다. 지금도 여전하다. 사무실이 조용하다 싶으면 내가 외근을 나가고 없는 상태라고들 한다. 내 존재감은 커다란 웃음소리에 있다.


요즘 내 웃음버튼 중 하나는, ‘컴싸’다. 큰 애가 작년 기말고사에 컴퓨터 싸인펜으로 답안을 마킹해야 하는데 수성 펜으로 마킹하여 한 과목의 점수를 상당 부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늘 ‘컴싸’얘기만 나오면 우리 가족 모두가 킥킥대며 웃고 있다. 억울한 첫째는 놀림을 당하는 게 어이없어서 웃고, 남은 가족들은 그런 반응이 재밌어서 웃는다. 그렇게 첫 째의 억울함은 웃음으로 승화되고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요즘엔, “우리 딸래미, 컴싸 사줘야 하는데. 내가 컴싸를 박스로 사줄게. 컴싸만 사주면 시험을 잘 볼 수 있는데 말이지, 그치?” 이러면서 웃었다. 그리고 컴퓨터 사인펜 세 박스를 사다 준 지금은, 그녀의 다가올 중간고사 결과를 미리 기대하며, “컴싸가 있는데 시험을 못 볼 리 없지 뭐,”라고 자주 웃고 있다.

둘째에게도 웃으며 묻는다. “너도 컴싸 필요해?”


잘 웃기 때문인지 나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을 그리 분노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웃는 게 먼저인지, 긍정적인 게 먼저인지는 잘 모른다. 그냥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이 먼저 보일 뿐이다. 매사 부정적인 면도 잘 보고 걱정도 많고 불안도 많은 남편과 살고 있는 건, 아마 걱정과 불안에 따른 그의 세심함과 다정함을 먼저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렇게나 나의 실수담을 읊어대며 같이 웃었다. 아직도 왜 웃기고 싶었는지 잘 모르겠다. 불안이 많은 그가 참 힘들게 산다 싶을 때면 여전히 나의 실수담을 읊어댄다. 나의 웃음은 그의 불안을 낮추고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회사일로 힘들면 때려치라는 말도 해준다. 물론 그는 아직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


몇 해 전에 친정 식구들과 괌 여행을 처음으로 갔었다. 여행을 계획하며 남편에게 렌터카는 어떠냐고 했더니, 사고날 지도 모르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렌터카는 절대 안된다고 했다. 렌터카 없이 우리는 택시를 타고 편하게 잘 다녔다.


그러다가 우리 가족만 두 번째로 괌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는 더운 날씨, 생각보다 한적한 도로, 느긋한 사람들, 그리고 너무나 비싼 택시비를 고려하면 렌터카가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렌터카 예약 등과 관련해서는 남편이 담당했다. 남편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애들과 나는 숙소 이동도, 장소 이동도 너무 편하고 좋았다.


여행 둘쨋날 어둑어둑해질 때 쯤, 가족 모두 야시장을 찾아가고 있었다. 도로 경계석의 위치를 미처 확인하지 못한 남편이 우회전을 하다가, 차를 긁는 소리가 났다. 뒷좌석의 애들도, 나도 매우 놀랐다. 남편은 매우 당황해했고 곧 화도 낼 것 같았다. 그 화가 우리를 향하진 않겠지만, 굳이 여행의 분위기를 해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그를 보며 말했다.

“우리도 안 다쳤고, 다른 사람도 안 다쳤고, 다른 차도 안 부딪혔으니 됐어.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잖아. 영어도 안 써도 되고. 별 일 아니야. 진정해.”


나중에 남편은 그 순간 그 말이 매우 안심이 되었다고 했다. 자신은 어느 블로그에선가 본 손해배상비 등이 떠올라 화가 막 나고 있었는데, 화가 좀 진정이 되었다나. 그리고 남편 말에 따르면 다행히 다음 날 아침에 차량을 확인해보니, 약간의 물리적 조치로 티가 나지 않게 잘 마무리가 가능했다고 한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우리는 그 날의 이야기를 종종 한다. 그는 그 순간에 그렇게 얘기해줘서 상황을 정확히 볼 수 있었다고 고맙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 말만 하고, 렌트한 차도 한 번 살펴보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걱정 많은 남편이 잘 살펴보고 잘 처리할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말 한 번 잘해주고 편하게 웃으며 살고 있다. 와이프 말을 잘 들어야하는 거라고 거만한 듯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이다.


수정 전:

나를 드러낸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으로 귀결될 것 같은데, 생일에 쓰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왠지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건 아니지만, 존재를 증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 그런 나의 존재를 떠올리면서 먼저 생각나는 건, 내가 맺고 있는 친밀한 관계들이다. 아내이자, 엄마이고, 딸이면서, 며느리인 이 모든 관계가 결국 나인 건 아닐까.


한참을 고민해보다가 "드러내다"를 사전에서 찾았다. "1. 가려 있거나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다. 2.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보이거나 밝히다."라는 뜻으로 설명되어 있다. 나를 드러낸다는 건, 결국 내가 맺고 있는 그 관계들을 아우르는 나를 밝히는 일이라는 건데, 그런 나는 어떤 나일지 생각해봐야겠다.


그 관계들 속에서의 나는 매우 잘 웃는다. 꼭 웃겨서 웃는 것은 아니다. 어이가 없어도 웃고, 기가 차도 웃는다. 물론 웃기는 일엔 더 잘 웃는다. 심지어 웃음소리도 크고 호탕하다. 덕분에 다들 따라 웃을 수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요즘 내 웃음버튼 중 하나는, ‘컴싸’다. 큰 애가 작년 기말고사에 컴퓨터 싸인펜으로 답안을 마킹해야 하는데 수성 펜으로 마킹하여 한 과목의 점수를 상당 부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학기 준비물을 장만하며, “우리 딸래미, 컴싸 사줘야 하는데. 내가 컴싸를 박스로 사줄게. 컴싸만 사주면 시험을 잘 볼 수 있는데 말이지, 그치?” 이러면서 웃는다. 그리고 컴퓨터 사인펜 세 박스를 사다 준 지금은, 그녀의 다가올 중간고사 결과를 미리 기대하며, “컴싸가 있는데 시험을 못볼리 없지 뭐,”라고 자주 웃고 있다. 나에게 웃음거리를 선물한 그녀의 건투를 빈다.


잘 웃기 때문인지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을 그리 분노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낙천성이 있다. 낙천적이라 잘 웃는지, 잘 웃어서 낙천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모든 일들엔 다 어두운 이면이 있다는데, 나는 그저 밝은 면만 볼 뿐이다. 그래서 모든 일의 이면을 잘 살펴야 한다는, 걱정 많고 불안 많은 남편과는 대척점에 있다. 나는 그런 그가 참 힘들게 산다 싶다. 나의 호탕한 웃음은, 그의 불안을 낮추고 가벼운 일로 만드는 데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언젠가 괌에 가족여행을 가서 차를 렌트했는데, 날이 어둑어둑해지는 시점에 도로 경계석의 위치를 미처 확인하지 못한 남편이 우회전을 하다가, 차를 긁는 소리가 났다. 그는 매우 당황했지만, 그런 그를 보며 말했다.

“우리도 안 다쳤고, 다른 사람도 안 다쳤고, 다른 차도 안 부딪혔으니 됐어.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잖아. 영어도 안써도 되고. 별 일 아니야. 진정해”.


나중에 남편은 그 순간 그 말이 매우 안심이 되었다고 했다. 자신은 어느 블로그에선가 본 손해배상비 등이 떠올라 화가 막 나고 있었는데, 화가 좀 진정이 되었다나(아주 가끔 내가 던지는 적확한 말에 놀라곤 하는데, 그 날은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을 볼 수 있는 나의 낙천성이, 그걸 전달한 나의 말발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행히 다음 날 아침에 차량을 확인해보니, 약간의 물리적 조치로 티가 나지 않게 잘 마무리가 가능했다고 한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우리는 그 날의 이야기를 종종 한다. 그는 그런 이야기를 해주어서 고맙다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나는 말만 그렇게 했지, 운전도 못하고, 덕분에 잘 다녔으니 좋았다고 말해준다.


나의 웃음은, 유머가 있던 아버지와, 잘 웃는 어머니에게서 왔다. 아버지는 가끔 내가 먼저 전화를 하면, “네, 고명숙입니다!”하며 내 이름을 얘기하며 전화받으시던, 유머가 있었던 분이다. 심각한 음치였던 아버지는 어느 날, 새로운 노래를 연습한다며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라는 노래를 전화에 대고 모두 똑같은 음으로 불러서 엄청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 노래의 원곡은 아직도 잘 모르는데, 노래인지 읇조리기인지 알 수 없는 아버지의 노래와 아버지 옆에서 들리던 엄마의 웃음소리, 그리고 그걸 전화로 듣고 있는 나의 웃음소리만 은 선명하다.


그렇게 물려받은 나의 웃음은 이제 딸들에게도 전해지고 있다. 사춘기 소녀들이지만 방문은 좀 덜 닫고, 나랑 깔깔거리며 웃는다(이제, 컴싸라는 말만 나와도 자지러진다). 그리고 웃음기 없는 시댁에서도 은근히 웃음을 전파하고 있다. 뭐가 그리 웃기냐는 핀잔도 들으면서.


종종 나는 누군가가 나와 만나고 헤어질 때 얘기한다. 집에 가면 내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릴 거라고. 그리고 가끔 내 귓가엔, 지금은 들을 수 없는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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