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모임 3 - 내가 사랑하는 존재에 대해 글쓰기, 그 말은 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글을 쓰라는 주제를 받고,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실제로 딸기를 졸이면서 주제를 찾았던 생각이 납니다. 이 글을 쓸때는 딸기철이었는데, 복숭아철이 코앞이네요. 맛있는 복숭아가 있는지 시장에 나가봐야겠습니다.
3월이다. 딸기가 끝물에 가까워가는 듯 하다. 12월 정도에 처음 시장에 나올 때는 너무 비싸서 잘 사먹지도 못하지만, 딸기가격이 점차 떨어지기 시작하면 1kg짜리 빨간 다라이를 서너 개씩 산다. 그 중 한 다라이 정도는 씻어서 바로 먹고, 나머지는 딸기잼 만들 듯 졸인다.
딸기 꼭지를 잘라내고, 냄비에 넣은 다음, 손으로 으깨서 즙을 내고, 설탕을 대충 눈대중으로 넣고, 가스불을 중간정도로 하여 오래오래 졸인다. 끊임없이 저어주면서. 처음보다 2/3 정도로 졸아들면 묽은 딸기잼이 완성된다. 딸기잼처럼 끈적한 정도의 점도가 아니어서 우유나 요구르트에 잘 섞이고, 많이 안 졸였기 때문에 너무 달지도 않아 잔뜩 넣어 먹을 수 있다. 우유에 요구르트 파우더와 만들어놓은 묽은 딸기잼을 넣어서 잘 섞으면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요거트 스무디와 비슷한 맛도 난다. 솔직히 꽤 괜찮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두 딸들은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다시 만들어달라고 한다. 특히나 학원일정으로 저녁식사 시간이 애매한 큰 딸은, 요거트 스무디를 만들어서 갖고 다니면서 야금야금 먹어치운다. 밖에서 사먹는 음식들보다 낫다 싶으니 다시 또 딸기를 사온다. 최근에 딸들이 나에게 말했다. 큰 딸이 얘기하고 작은 딸이 동조했는지, 그 반대인지는 잘 기억나진 않는다. 그렇지만 모두 입모아 말했다. 파는 딸기잼은 딸기향맛 나는 시럽약 같다고. 맛이 없다고 말이다. 안해줄 수가 없다.
딸기철이 끝나가고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 애들이 물어온다. “복숭아는 언제 나와?”. 그러면 애들이 잘 먹는 게 좋은지 남편도 늘 협조적으로 시장이나 마트에서 복숭아 박스를 두 개 사온다. 단단한 백도 복숭아 한 박스, 무른 황도 한 박스 이렇게. 그냥 먹기에는 무른 황도가 맛있지만, 졸임을 하기에는 적당히 단단한 백도가 좋다. 애들과 황도를 나눠먹고, 남편과 사이좋게 백도 졸임을 준비한다. 복숭아의 털을 깨끗이 씻고, 껍질을 벗기고, 불그스름한 복숭아 속살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준다. 이후 복숭아가 잠길 만큼 냄비에 물을 붓고, 설탕을 적당히 넣어 끓인다. 딸기잼처럼 오래오래 졸일 필요도 없다. 그저 한소끔 끓여내면 된다. 그리곤 식혀서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면, 황도 통조림처럼 시원하고 맛있다. 더운 여름에 학교에 갔다오면 애들이 설탕물까지 후루룩 먹는다. 그렇게 복숭아 졸임과 함께 여름이 간다.
다시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제주도 친정에서 박스로 귤을 보내준다. 파는 상품과는 달리 엄마가 보내주는 귤은 박스에 빈틈없이 담겨 있어서 오다가 몇 개쯤은 터진다. 그러면, 터진 귤을 포함해, 귤을 한 바구니 깐다. 한때 제주도민이었던 나는 귤의 한가운데를 눌러 양쪽으로 가르고, 다시 반 가르고 그렇게 1/4쪽이 되는 귤의 껍질을 뒤집으면서 순식간에 귤을 깐다. 깐 귤을 냄비에 넣고 으깬 후 적당히 졸인다. 귤은 충분히 새콤달콤해서 설탕은 꼭 필요한 건 아니다. 좀 오래 보관하고 싶을 때는 설탕을 좀 넣는다. 가끔 감기기운이 있거나 할 때도 그렇게 귤을 까서 끓여 먹는다. 생강청도 좀 섞어서. 그러면 초기 감기 정도는 잘 지나갈 수 있다. 그렇게 귤과 함께 겨울이 지나가고, 한 해가 가고, 다시 딸기 철이 돌아온다.
올 해도 벌써 세 번째 딸기를 졸이고 있다. 집 안에 온통 딸기 단내다. 보통 네 다라이 정도를 사오는데, 올 해 마지막일까 싶어서 여섯 다라이를 사왔더니 더 그렇다. 다른 음식 냄새에는 추운 날씨에도 창문을 활짝 여는 딸들인데, 딸기 졸이는 냄새는 괜찮은지 아무도 불평이 없다. 이것마저 잘 먹어준다면 매우 수고롭긴 해도 한 번 정도 더 졸일 수 있을 것 같다.
일주일 내내 사무실 일로 바빠서 못 챙겨줬던 미안함에 이렇게라도 생색을 낸다. 내가 바쁜데도 이렇게 너희들을 위해 만들어 놓는다고 말이다. 요즈음은 엄마들이 이런 걸 잘 만들지 않으니, 딸들이 엄마가 이렇게 정성스레 만들어주는 걸 꽤나 좋아하기도 한다. 생색을 내면서라도 이 수고로움을 해내는 이유다.
우리 엄마는 생색도 안내고 많이 만들어주셨는데. 도배일을 했던 엄마는 더 힘들고 바빴을텐데. 그저 우리 엄마처럼 나도 이렇게 만들고 있다고만 생각했을 뿐, 힘들었던 엄마 생각은 못했다. 내 딸들처럼 나도 그저 내 생각만 할 뿐이다. 역시나 자식들은 이기적이다. 다만, 엄마 생각은 못해도 내가 그렇듯, 어느 먼 훗날엔 내 딸들도 철마다 과일을 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