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 4 - 조금 특별했던 일상에 대한 글쓰기
글쓰기 주제는 내 삶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는 조금 특별했던 일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특별한 일상이 뭘지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먹고사는 일상 그 자체가 특별한 일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남편의 요리에 대한 글을 써보아야겠다고 시작한 글입니다. 쓰다보니, 결국 원대한 저의 계획도 들통나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마침 이 글이 여태 써놓았던 글쓰기모임의 마지막 글이라, 남편의 요리에 대한 글을 앞으로 좀 더 써볼까 싶습니다.
제주도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니고, 대학을 서울로 갔다. 잘 지냈다. 졸업 후 꽤나 오랜 시간 고시공부를 하고 드디어 합격을 했다. 그리고 취업한 첫 직장에서 남편을 만났다. 키 차이가 많이 나서, 대화는 어렵겠다 싶었는데, 친해지고 나니 그가 고개만 숙이면 가까이에서 얘기할 수 있었다. 키가 매우 작았던 아버지의 영향인지, 롱코트가 어울리는 남자가 이상형이었던 나는, 키가 큰 그가 맘에 들었다.
그런 그는 돈을 잘 벌지만 호구같은 인생을 살고 있던 나에게 밥도 사주고 영화도 보여주고, 자취하는 집에 생기는 여러 문제들도 해결해주는 사람이었다(아마 그는 경상도를 기준으로 하면 가장 자상한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요리를 잘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뒷정리도 잘한다. 별 일 아니라면서 기꺼이 말이다. 그와 결혼하고 나니, 같이 장보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먹고 하는 일상이 매우 좋았다. 맛있다는 칭찬, 고맙다는 말과 함께 맛있게 먹어주기만 하면 됐다. 가끔 티비에 등장하는 맛있는 음식을 보며, 우리도 저런거 만들어먹을까 하면 그가 일어나 음식을 만들어주었고, 나는 아주 조금 거들었다. 그리고 맛있게 먹으면 되었다. 나는 그 사실을 결혼하고 일 년 쯤 후에야 인지했다.
직원들과 식사를 할 때 가끔 농담삼아 자랑도 했다. 나는 감자탕과 꽃게는 남편이랑 먹는다고. 그가 감자탕의 고기도 다 발라주고, 꽃게 살도 다 발라주니까 내 손을 들여서는 귀찮아서 안 먹게 된다고 말이다. 여직원들의 부러운 눈빛도 즐기고, 남직원들의 야유도 즐길 수 있다. 사실, 결혼한 초반에는 그렇게 별로 안 힘들게 일상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에게 집을 맡기고 내 일만 하고, 내 일상만 살 수 있으면 되는 것 같았다. 일상의 수고로움을 모르는 삶이었다. 좋을 때였다.
지금은 꽃게를 기다리는 입이 둘 늘었다. 도저히 그의 속도로는 꽃게를 입에 넣을 수가 없다. 옆에서 같이 열심히 꽃게 살을 발라내어야 한다. 감자탕도 그렇다. 그 혼자서는 고기를 다 발라줄 수가 없다. 한 명씩 맡아서 고기를 발라주어야 한다. 할 수 있는 요리도 하나씩 늘어갔다. 그렇게 그와 일상의 일들을 나누었고, 일상의 고마움도 나누게 되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전쟁같은 시간들을 보냈다. 그리고 애들이 말귀를 어느 정도 알아들을 때, 아마 결혼한 지 8-9년쯤 지난 후에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엄마같은 사람을 찾아 결혼했다는 것을 말이다. 엄마노릇이 몸에 어느 정도 익은 후에야, 일상의 수고로움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때가 되어야 알게 된 것이다. 엄마처럼 챙겨주는 사람을 원했다는 것을, 엄마처럼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줄 사람을, 그저 예쁘다고 해줄 사람을 원했다는 것을 말이다.
육아의 최종 목적은 자녀의 독립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20살에 독립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채로 세상에 나갔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부모님 덕분에 알바도 별로 해보지 않았다. 꽤 오랜 기간 고시생으로 살았지만 그 기간 역시 부모님의 지원이 있었다. 결혼할 때까지도 나는 20살 대학생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에서 ‘일만 잘하면 된다’로 바뀌었을 뿐, 일상을 이루는 많은 일들에 대해서, 그 일들의 수고로움에 대해서 별로 알지 못했다.
엄마가 되고 나서도, 처음 몇 년간은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았다. 친정엄마가 첫째에게 하는 것을 보며 둘째를 키웠고, 어깨너머 살림도 배웠다. 그렇게 엄마노릇을 조금씩 배웠다. 그렇게 친정엄마의 육아는 끝이 났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애들을 먹이고 재우는 일들을 해내야 하는 일상을, 남편과 교대하며 둘이서 오롯이 살아낸 후에야 비로소 독립을 했다. 독립이란 결국 먹고 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일이었고, 그렇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그가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요리는 할 수 있다. 적당히 먹고 살만은 하다. 물론 남편은 여전히 요리를 더 잘한다. 정성스럽게 나물도 무치고 된장찌개도 끓여주고 미역국도 끓여준다. 시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처럼 정갈하다. 주말 저녁에는 내가 생선 조림이나 생선 구이를 하기도 하고, 전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친정엄마가 자주 해주시던 음식들이다. 그렇게 시어머니 요리를 닮은 그의 음식과, 친정엄마 요리를 닮은 나의 음식을 함께 만들고 나누어 먹으며 서로에게 맛있다는 칭찬을 한다. 먹는 즐거움을, 맛있는 과거를 함께 나눌 수 있어 참 좋다.
나의 육아도 역시 딸들의 독립이 목적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남편이 모르는 계획이 있다. 바로 딸들이 대학에 가면 방학마다 요리학원을 보내는 것이다. 한식, 양식, 일식, 원한다면 제과제빵도 다 배우게 할 계획이다. 지금 생각엔 조리사 자격증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요리를 배우고 나면 뭐든 만들어먹을 자신이 생기지 않을까, 그곳이 어디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녀들이 집에 오면, 나는 남편에 이어 딸들에게도 잘 얻어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한다. 그 날이 멀지 않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지만, 내가 만일 혼자서도 나를 위한 음식을 잘 만들어먹는 사람이었다면 어쩌면 그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문득 요리를 잘하게 되면 딸들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