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2025.07.08 크레타 독서모임 후기

by 도토리수집가

오랜만에 독서모임을 갔습니다. 자기소개를 하는 순간의 어색함과 기대감, 모임장의 질문에 대한 각자의 의견들, 그리고 끝나고 나면 언제 그렇게 서로 대화를 나눴는지 알 수 없게 어색한 인사와 함께 사라지는 모습들, 독서모임을 이루는 다양한 풍경이, 일상에 설렘을 주네요.


오늘의 논제 중 하나는, 클레어 키건의 2022년 부커상 인터뷰와 관련하여, 과연 펄롱은 딸들의 관점에서 좋은 아버지일 것인가라는 점이었다.


“이 책은 아버지와 함께 석탄을 배달하러 간 소년이 기숙학교의 석탄 창고에 갇혀 있는 또래 소년을 발견하는 이야기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그저 문을 잠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다음 배달을 계속했지요. 어느 순간부터 저는 석탄 배달부의 관점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그에게 집중했습니다. 아버지인 그가 이 사실을 지닌 채 어떻게 배달을 마치고, 하루를 보내고, 인생을 살아갈지 그리고 그가 여전히 자신을 좋은 아버지라고 여길 수 있는지 탐구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저는 펄롱이라는 남자가 이 소설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자신을 좋은 아버지라고 여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딸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하지 못할 수도, 사업을 잃고 가족을 부양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고, 우리 마음속에 갇혀 있는 것을 어떻게 안고 살아가는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여성 혐오나 가톨릭 아일랜드, 경제적 어려움, 부성 또는 보편적인 것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소녀와 여성이 수감되어 강제로 노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거의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싶었습니다.


딸을 키우는 내 입장에서는 저 질문이 좀 이상했다. 좋은 아버지란 반드시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질문 같아서다. 좋은 아버지란 좋은 사람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라는 게 쉽게 티가 나지는 않으니, 좋은 사람/좋은 아버지라고 받아들일 수 있게, 아버지의 행동이 좋은 행동임을 이해할 수 있게 잘 설명해 주는 것-그것이 아버지 본인의 입을 통해서든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든-이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질문에 대한 내 의견은 "앵커링"의 문제라고 정의되었다. 펄롱이 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는 순간에, 맨 처음 "앵커링"을 어떻게 해주는가가 딸들의 이해를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는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낯선 여자아이를 수녀원에서 데려올 수밖에 없었던 사정에 대한 진실한 설명, 아버지가 외면할 수 없었던 심리적 배경에 대한 어머니의 지원 설명, 그것이 내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해는 물론, 낯선 여자아이에 대한 경계심도 풀어줄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런 생각들은 아마, 청소년기의 딸들을 키우고 있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비롯되지 않나 싶긴 하다. 나의 일상에서는 내가 남편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 주는지가 가족의 평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말이다. 성실한 모범생에, 부모님 말씀에 일단 "예"라고 대답하는 남편이, 자신의 말에 "왜요?" 혹은 "아니~"라고 먼저 대답하는 딸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그 딸도 일단 "예"부터 요구하는 아빠를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들한테 설명해 준다. 할머니, 할아버지께 "예" 말고 "아니요"를 먼저 대답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느냐고, 어른들에게 잘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런 아빠는 딸들에게도 일단 "예"라고 대답이 올 거라고 기대할 테니, 그런 아빠와 같이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해준다. 결국은 식구로서 삶을 공유하고 있으니, 서로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 주며 공존할 방법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누군가 건넨 첫 미소, 첫인사, 첫 호의가 가져오는 "앵커링"효과가 결국 서로를 좋은 관계로 만들고, 좋은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좋은 사람이라 여기며, 자신도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이 책의 제목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어쩌면 그 호의에 대한 것이 아닐까. 펄롱이 아이에게 베푸는 호의-아이를 수녀원에서 데리고 나오는 일-는 또 다른 호의-펄롱이 데리고 온 아이를 맞이하는 부인 아일린이 베푸는 호의, 아일린이 아이를 데리고 온 펄롱에게 베푸는 호의, 펄롱과 아일린을 보며 그들의 딸들이 아이에게 베푸는 호의-를 가져오고, 그러한 호의는 사실 "사소한 것들"에 불과하지만 결국 "좋은 사람"이 되게 할 것이다. 미시즈 윌슨이 펄롱 엄마에게 베푼 호의가 결국 펄롱이 수녀원의 아이를 데리고 나오게 한 것처럼.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요즘 내 맘에 꽂혀있는 문구이다. 나에게는, 우리에게는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 있다. 내가 지금 불행의 당사자가 아니라고,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내 아이들에게만이라도 알려주어야겠다. 그래서 그들의 불행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결국 사소한 호의가 앞으로의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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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에 인용된 구절들 중에서.


늘 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_29쪽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_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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