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줍는 순간-안희연의 여행"을 읽고
꽃이 아니라면
무엇이
- 안 희 연
꽃을 샀다.
여행지에서 꽃이라니,
칫솔이나 양말, 열쇠고리도 우산도 아닌 꽃이라니,
이 무모하고도 무용한
한 다발 꽃을 받아들이고도 한참을 어쩌지 못했다.
별안간 무슨 영문이었을까.
그날 아침 읽은 먹먹한 노래처럼
"삶의 안간힘 끝에 문득 찾아오는
환하고 쓸쓸한 꽃바구니"라도
받아안고 싶었던 것일까.
꽃을 사고 보니 안 보이던 길이 보인다.
인적 드문 곳에 놓인 벤치
거기 앉아 올려다보는 구름
괜찮다 다 괜찮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햇빛
그래, 이제 너는 꽃으로만 오는 사람
그리고 나는 홀로
망망대해를 헤엄쳐가야 하는 물고기
꽃이 아니라면 무엇이
폭주하는 삶을 멈추게 하고
꽃이 아니라면 무엇이
모든 사위어가는 것의 슬픔을 가르쳐줄까.
그날은 발이 부르트도록 걸었다.
이별이 아니라면 무엇이
별안간이 아니라면 무엇이
시인인 작가가 쓴 시다. "꽃을 샀다. / 여행지에서 꽃이라니," 라는 첫 문장이 마음에 꽃혔다.
최근 홍콩여행에서 복잡한 번화가 거리에 있는 꽃집을 보며, 꽃이 사고 싶었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말랑말랑해진 마음 때문인지 꽃집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그랬다. 그렇지만 꽃을 살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쓸데없는 것을 왜 사느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어서. 게으른 성격상 깔끔하게 정돈된 집이 아니어서 집에도 꽃 한 송이 들이지 못하는데, 여행지에서 왠 꽃이냐고 하는 질문에 답하기는 부끄러웠다. 그래서 동행자에게 아무 내색 없이 꽃집을 지나쳤었다.
아마 그 내심의 고민이 나에게 남긴 잔상이, 결국 이 책을 만나게 한 것이 아닐까 싶은 시였다. 아마 작가가 책에서 언급한 "잔상"이 바로 이런 것인가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부턴 여행지에서 꽃을 사봐야겠다. 어차피 일상을 새롭게 보려고, 일상의 감각들에 집중해보는 시간들인데, 그깟 꽃, 그게 뭐라고 못 살 것인가. 내가 있는 곳에 꽃을 두고 싶은 마음, 내 일상을 가꾸어보려는 마음, 나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닐까.
"이 모든 것이 잔상이다. ...... (중략) ...... 기억의 장난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기억의 상자 속에 행복했던 기억만 담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잔상으로 남은 기억들은 대체로 여진을 동반한 것일 때가 많다. 잊은 줄 알았던 통증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시간, 인간에게 영원한 망각이란 없다는 증명. "
그렇게 자신에게 새겨진 잔상은 다시, 불현듯 스쳐지나가는 어떤 장면에서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게 한다. 바로 무언가를 줍는 순간이다.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떠났던 여행, 그곳에서 만난 유년, 그렇게 잔상은 자신의 유년을 줍고, 과거의 나에게 가장 큰 위로를 건네준다.
"유난히 우울한 얼굴을 한 아이들이 있다. 누군가 핀 조명을 쏜 거서럼 오직 그 아이만 보이는 순간이 있다. 두 눈속에 백발 노인이 들어앉아 있는 아이들. 대체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느냐고 다그치고 싶어지는 얼굴들.
...... (중략) ......
그러나 나는 끝내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너의 곁을 오래도록 서성였다. 네 그리움은, 네 외로움은 너를 더 먼곳까지 끌고 가겠지.
나는 멀치감치 서서 너를 끌어안았다. 나의 유년을 끌어안았다. "
책을 덮은 그 순간에는 특별하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여행을 많이 다녔었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대부분이었는데, 독후감을 쓰며 줄쳤던 내용, 눈에 담았던 내용을 다시 살펴보고 여러 의미를 발견하면서, 이게 줍는 순간이구나 싶다. 결국, 나에게 꽃을 선물하는 마음, 일상을 주우려는 노력,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알아채려는 마음, 그것이 줍는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 같다. 삶이란 결국, 그렇게 잔상을 남기고 어떤 순간을 주우면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나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