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도토리 수집가

2022 글쓰기 모임

by 도토리수집가

한 때 나는 도토리였다. 이런 문장을 만나다니. 나는 도토리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도토리였다는 건 어떤 의미려나. 고민이 많았다. 회사에서 가까운 직원에게 물었다. "도토리와 관련된 글을 쓰라고 하는데 무엇을 쓸까?"라고. 처음엔 싸이월드 도토리를 얘기해주었다. 그렇지만 그 도토리를 모아본 일이 없어서 쓸 말이 없었다.


또 물어봤다. 이번엔 다람쥐에 대해서 얘기해주었다. 다람쥐가 도토리 묻어둔 데를 까먹어서 도토리로부터 싹이나고 나무로 자라난다고. 생각해보니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다. 재미있는 소재라고 생각했지만 글을 쓰려고 생각하니 조금 부족한 기분이었다.


이번엔 보다 자세히 물어보았다. 글쓰기 숙제를 보여주며 도토리와 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많은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뭔가 힌트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호기심많은 그 직원은 지저분한 내 책상-좌우에 서류더미들, 책들과 모니터 아래 각종 필기구들을 두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서류더미들 사이에서 각종 문서업무를 하고 있는-을 보면서, 마치 다람쥐처럼 도토리들을 모아서 여기저기 숨겨놓고 있다고 했다.


평소에도 책상이 많이 지저분하긴 했지만 여기서 팩폭을 당할 줄이야. 반박할 수 없는 공통점이다. 이 글을 쓰면서 이 공통점은 나와 도토리의 공통점이 아니라 나와 다람쥐의 공통점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지만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나는 한 때 도토리였다"가 아니라 "나는 한 때 다람쥐였다"로 문장을 바꾸어야겠다.


그렇다. 나는 각종 도토리들을 모으는 다람쥐였고, 아직도 다람쥐처럼 살고 있다.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지갑 속에 각종 영수증을 남겨놓고, 오래전에 끝난 업무서류도 여전히 책상 혹은 책장을 차지하고, 먹다가 조금 남은 반찬도 냉장고에 넣어둔다. 미니멀 라이프, 그런 건 아마 내 인생에서 쉽게 구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이 뭐 그렇게 쉽게 변하는 건 아니니까. 대신, 도토리처럼 모아둔 각종 살림 속에서 보물찾기는 가끔 할 수 있어서 재미있는 삶을 살 수 는 있을 것 같다. 나는 그런 삶에 충분히 만족한다. 같이 사는 남자에겐 좀 미안하지만(사실 그 남자는 현관을 1초 만에 통과할 수 없다. 나와 아이들이 어지럽게 벗어놓은 신발들을 가지런히 정리해야만 통과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그 남자가 이런 삶에 만족하진 않겠지만, 나의 충만한 삶을 위해 나는 그 신발들을 모른척할 생각이다).


이러한 도토리 수집은 업무영역에서는 빛을 발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단순히 선행특허만 검색하는 것이 아니라, 구글링을 통해 기술의 기초 개념에서 다양한 활용분야까지 각종 기술자료들을 열심히 수집하고 훑어보고 살펴보고 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다운로드 받았거나 살펴보았던 자료들이 있는 줄 모르고 또 찾고 수집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면에서도 내가 수집한 것들은 도토리가 맞다고 우기고 싶다. 결국 싹이 트고 나무가 되는, 다람쥐가 묻어두고 찾지 못한 그 도토리 말이다. 내가 찾아보고 살펴본 그 자료들로부터 결국 내 업무능력이 커지게 되서 나도 언젠가 나무처럼 커다란 능력도 갖게 되지 않을까.


왜 하필 도토리인가 생각했는데, 도토리를 잘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다람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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