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라푼젤

글쓰기의 시작

by 도토리수집가

2017년에 독서모임을 처음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글쓰기를 해보자고 하더군요. "작가군단"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써서 게시판에 업로드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쓴 글에 생각보다 호평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며 카타르시스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껴보기도 했습니다. 그 기분이 지금까지 글쓰기에 대한 꿈을 놓지 않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군단에서 썼던 글을 다시 기록해봅니다. 개인정보 등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고 거의 그대로 두는 것으로, 나의 첫 글쓰기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봅니다.


1편: 라푼젤과 나의 꿈


일요일 아침, 딸래미들과 영화 “라푼젤”을 봤습니다. 매우 인상깊은 부분이 있어서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도입부분에 마녀가 라푼젤을 성에 가둬두고는 라푼젤의 머리채를 타고 성에 드나드는 게 나옵니다. 그리고 라푼젤에게 매우 친절하게 “아가”라는 호칭을 쓰면서,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세상이 얼마나 험한지를 강제 주입식으로 교육하고, 그리고 성을 떠날 때 다음과 같이 대화를 나눕니다.

- 마녀: “엄마는 널 정말 사랑한단다, 아가”,

- 라푼젤: “제가 더 사랑해요.”

- 마녀: “널 가장 사랑해.”


사람을 어떻게 길들이는지, 어떻게 길들여지는지, 어떻게 무력감을 학습시키는지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매우 충격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한편, 어쩌면 요즘의 교육현실은 이와 비슷하게 “위험해, 좋은 것이 아니야, 더러워” 이렇게 부정적인 것들을 강제주입식으로 교육하고, “엄마는 너를 사랑해서 이렇게 얘기해주는 거야”라고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요즘 애들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비난을 퍼붓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최근 가장 화두로 삼고 있는 것은, 개인의 주체성과 독립성이어서 저 에피소드에 꽂혔던 것 같기도 합니다.


기억의 한 조각 떠올려보면, 초등학교 때 아침에 학교가서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엄마 나 이거 안 가져왔어요. 출근할 때 가져다 주세요.”하면, 잔소리는 하셨어도 엄마는 늘 가져다 주셨습니다.

별로 생각할 필요도 없고 매우 팔자좋고 편하게 살았던 거죠. 돌이켜 보면, 그 때 엄마가 안 가져다 주셨으면 어땠을까, 따끔하게 혼나는 일을 몇 번 겪으면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엄마가 저를 곱게 키워주신 점은 정말정말 감사하지만, 그래서 매우 긍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의존적인 성향이 강한 스스로를 확인하게 될 때 저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다시 “라푼젤”로 돌아와서, 성으로 찾아온 왕자(사실 도둑이지만)를 후라이팬으로 잡아서 옷장에 넣고는, “옷장 안에 사람을 가뒀어! 내 앞가림하기엔 내가 너무 약하다구요, 엄마? 여기 있는 내 프라이팬에 대고 말해보세요.”하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그리고 생일마다 밤하늘을 수놓는 등(Light)을 보고 싶은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왕자에게 등을 볼 수 있게 “데려갔다가 안전하게 데려다 줄 것”을 제안하게 됩니다.


일단 소소한 성공의 경험, 이러한 긍정적인 경험이 불러일으키는 긍정적인 파장, 그리고 꿈이 있었기에 일단 용기 내어 들이대보는 제안까지, 정말 대단한 용기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용기내었어도 18년이나 길들여졌기에 성을 나와서 내적인 갈등을 엄청 겪게 됩니다. 마치 조울증처럼.

그 때, “내가 네 걱정을 좀 덜어줄게. 이건 성장하는 과정 중 하나야. 작은 반항이자 작은 모험인거지. 아주 정상적이고, 바람직하기까지 한 거야.”라고 얘기하며 위로하지만, 여전히 갈등하길래 원래대로 각자 자기 길을 가자고 하니까, 다시 자신의 꿈을 생각하고 등을 보러가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꿈이 있으니 길을 잃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음 장면에서,

무섭게 생긴, 실제로도 무서운 사람들, 그렇지만 속은 여린 사람들, 아니 남자들이 우글우글하게 있는 식당으로 갔을 때, 왕자(사실은 도둑)를 잡으려는 그들에게, “꿈”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 사람 내려놔! 전 지금 제가 어디 있는지 몰라요. 그리고 등을 보러 데려다 줄 저 사람이 필요하구요. 제 평생 꿈꿔오던 거란 말이에요. 인정머리 좀 있어 봐요! 다들 한번쯤은 꿈을 가져보지 않았어요?”

그리고 꿈이라는 한 마디가 불러일으키는 엄청난 파장, 노래의 향연이 펼쳐지게 됩니다.


요즘 저 “꿈”을 이야기하는 게 점점 어려워집니다. 생각해보면 굉장히 쉬운 일일 수도 있는데, 점점 어려워집니다. 꿈이, 진짜 꿈이 아니고 그저 가지고 싶은 직업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길들임과 길들여짐 역시, 사실은 꿈의 문제인 것을 이 글을 쓰며 깨닫게 됩니다. 저는 꿈이 직업이었기 때문에, 직업에 길들여지고, 그렇게 고객을 길들이고, 그렇게 삶을 길들이고 길들여지며 살고, 사는대로 생각하고 다시 그렇게 길들이고 길들여지면서 말입니다. 꿈이 있다면 내 삶을 독립적으로, 주체적으로 길들이거나 길들여지지 않고 살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가장 근원이 그 “꿈”임을 비로소 알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변리사입니다. 촉망받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사실 변리사가 되고 싶어 매우 오랜시간 공부도 했습니다. 그렇게 오래 공부했어도, 공부하는 중에도 제 꿈은 20살 때부터 40대 중반에는 한의사 공부를 시작해서 한의사가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남들도 도우며 돈도 벌며 살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변리사가 되겠다는 생각도, 개업을 해서 내 사무소를 차리겠다는 생각도 안했던 것입니다. 한 15년 혹은 20년 고용된 직원으로서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 꿈은, 두 친구가 각각 던진 한 마디 때문에 산산조각 났습니다.

첫 번째는, 동종업계 비변리사인 친구가 “넌 머리 하얘서까지 명세서나 쓸 거냐”,

두 번째는, 대학 동창이 한의사가 요즘 홍삼 같은 건강식품 때문에 어렵다는 내 이야기에, “너는 그 홍삼한테 지는 한의사를 왜 할거냐?”라고 질문을 던진 것 때문입니다.


사실 별 거 아닌 말이고 그냥 스쳐갈 수도 있는 말인데, 꿈이 그저 “직업”이었기 때문에 근 20년을 이어오던 꿈이 깨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동사형 꿈”이 아니었기에, 딱 목표하는 그 직업을 꿈꾼 것이었기에, 굳건하게 생각해왔던 꿈임에도 그렇게 마음이 흔들렸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2년째 고민 중입니다. 제 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사실 작년에는 갖고 싶었던 직업에 대해서 많이 정리가 되었긴 합니다. 그리고 독서모임에 나오면서부터 좀 더 꿈에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꿈”의 정의를 새로이 해보고 있습니다. 곧, 저도 자신있게 제 꿈을 얘기할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두 “꿈”을 세우고, 이를 통해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길을 열어가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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