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제로웨이스트 남편

2022 글쓰기 모임

by 도토리수집가

2017년 첫 글들에 이어, 글쓰기 모임에서 썼던 2022년의 글을 이어 올립니다.


제로웨이스트의 시작은 아이들의 영어캠프였다. 19박 20일 사용할 것을 챙겨보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신청할 때는 몰랐다. 유학원 측에서는, 넉넉하게 수건도 10장이나 보내라고 하고, 너무 비싼 건 분실이나 파손의 위험이 있으니 문구류, 옷 등도 저렴한 것으로 보내라고 했다. 이를 테면 만 원짜리 샤프 대신, 망가져도 괜찮은 천 원짜리 샤프를 세 개나 보내라는 거다. 다이소에서 '플렉스'한 쇼핑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물건을 담아갈 캐리어부터 주문을 해야했다. 택배 박스가 날마다 쌓였다.


캠프 준비를 마칠 무렵, 테이크아웃 커피를 주문하고 확인하게 된 카드 사용내역 문자를 보고 '아차!' 싶었다. 단언컨대 최근 몇 년 들어 최대 규모의 카드값이었다. 여름캠프비용에 이 카드값까지 얹는다면 과연 나는 생활이 가능한가 하는 고민이 들 만큼이었다. "소비를 줄여야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어진 생각은 일단, '옷을 사지 말아야겠다.' ,'집청소를 해야겠다.', '냉장고 파먹기를 해야겠다.', 그리고 '택배도 줄이고 쓰레기도 줄여야겠다.'라는 거다, 그리고 내 마음을 읽었는지, 유튜브 알고리즘은 기후위기를 보여주었다. 기후위기는 왜 등장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과 함께, 제로웨이스트, 미니멀 라이프까지 생각이 흘러가서, 제로웨이스트에 대해 글을 쓰겠다는 겁없는 선언까지 하게 되었다.


과연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며칠 만에 제로웨이스트 체험기를 쓸 것도 아니고,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했다는 체험기를 쓸 것도 아니고 도대체 무엇을 쓴다는 말인가. “나는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라서, ”미니멀 라이프“ 따위는 불가능하다고 글을 써놓고, 제로웨이스트가 가당키나 한 일인지. 다시 생각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어쨌든 선언을 했으니 이제 글을 써보자.

제로 웨이스트란 무엇인지 찾아볼까. 네이버를 찾아보니 ‘제로 웨이스트’의 대체어가 ‘쓰레기 없애기’라고 나온다. 쓰레기 없애기였구나. 제로 웨이스트가. 그럼 쓰레기를 없애는 방법은 쓰레기를 안 만들거나, 만들어진 쓰레기를 재활용하거나 두 가지일텐데. 재활용으로 뚝딱뚝딱 뭔가를 만들어내는 금손은 아니니, 쓰레기를 안 만드는 쪽이 나에겐 보다 쉬운 선택인 것 같다. 그렇다면 쓰레기를 안 만든다는 건,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는 거니까, 버리지 않고 오래 써야겠다. 앗, 갑자기 남편이 ”뭔가를 살 때는 좋은 것으로 사서 오래 사용“하라고 했었던 잔소리가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티셔츠 하나도 10년 입는 남편이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세련되지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환경에는 좋은 분이었다니. 새로운 발견이다. 낡아서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까지 물건을 사용하는, 옛날 사람 같다고 생각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제로 웨이스트’에서 남편을 발견해버렸다.


새롭고 핫한 아이템이 끊임없이 공급되는 시대에 살면서 내가 과연 남편처럼, 예쁜 옷을, 좋은 물건을, 뛰어난 기능을 가지는 새로운 물건을, 첨단 기술로 만들었다는 신기한 물건을 외면하고 사지 않을 수 있을까. 카드값을 생각한다면 소비를 외면하는 게 맞는 일일텐데, 마음은 오히려 ‘제로 웨이스트’를 외면하고 싶어지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지만 기후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제로 웨이스트의 필요성을 모르면 몰라도 알고서는 ‘제로 웨이스트’를 외면하긴 좀 그렇다.


일단, 소비를 줄여야겠다. 소비는 어떻게 줄일까. 그냥 소비를 안하면 되는 거 아닌가. 법륜스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냥 딱 안하면 되는 거여. 그냥 딱 안사고, 그냥 딱 안쓰면 그만인데.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서, 소비를 줄이네, 옷을 안사네 이러고 있을까. 말만 쉬워서 그렇겠지. 안 산다고 해놓고 예쁜거 보면 사고싶고, 맛있는 거 보면 먹고싶고.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딱 돌아서지지가 않으니 말이다. '어떻게' 라는 단어가 낯설다.


나의 수많은 물건들은 다 내 도토리들인데, 그 도토리들은 어쩔 셈인지. 글쓰기 모임을 나서면서부터 제로웨이스트는 나를 옭죄이고 있다. 차라리 생각의 진화과정을 거꾸로 되돌려봐야겠다. 나에게 제로웨이스트는 생각의 결과물이었으니, 생각의 시작이었던 '소비줄이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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