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의 끝, 착한며느리는 이제 그만

부산-경주-울산-제주-울산-부산

by 도토리수집가

긴 추석연휴의 막바지다. 새벽부터 눈이 떠졌는데 ott를 핸드폰으로 오전 내내 보고, 사무실에서 유튜브 알고리즘을 한참 따라가다가 문득 글을 쓰며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쓰고 있다. 이번 연휴의 일정은 부산-경주-울산-제주-울산-부산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부산에서, 경주 시댁을 가서 2박3일을 살고, 추석 당일에 울산 공항으로 가서 제주도 친정을 갔다. 다시 2박 3일을 살고, 울산공항을 거쳐 부산에 왔다.


혹자는 경주도 제주도도 갔으니 좋았겠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정말 경주 시댁에만 있다가 왔고, 제주도 친정집과 아버지 산소만 들렀다가 왔다. 경주 시댁에서는 굳이 나에게 시조부모 산소에 가자고 하지도 않아서 경주 시댁에서는 산소도 들르지 않았다. 뒤늦게 어머님이, 너도 최근에 이장한 산소에 못가보지 않았느냐고 말을 했을 뿐, 남편과 아이들, 시누네 식구들은 이미 간 이후였다.


손주들을 다 데리고 산소에 가더라도, 며느리가 남편의 식구로 그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들지는 않는, 그저 그 집 행사에서 서브일 뿐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빈정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할 일이 많은 상황이라 그러려니 했다. 착한 며느리 가면을 쓴 채 지낼 수 있었다. 2박 3일은 좀 버겁다 싶었지만 친정에도 가야하니, 남편도 같은 입장일 수 있으니 좀 더 지내보자고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추석 전날 종일 음식도 하고 설거지도 하면서 종종거리며 열심히 차례 준비를 하고, 저녁식사 준비도 해서, 애들 밥상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사실 족저근막염도 있고 무지외반증도 있고, 목, 어깨, 허리 어디 하나 안아픈데가 없었는데, 저녁을 겨우 먹고 있는데, 어머님이 신랑 밥이 모자라다며 밥을 더 퍼오라고 나를 불렀다. 평상시라면 어르신들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이해를 하지만, 시어머니에겐 명절 전날조차도 나의 수고로움이 보이지 않고, 아들의 수고로움만 보인다는 것에 심하게 기분이 상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만큼 빈정이 상했다.


그래도 잠시 고민하다 부엌으로 향하는데, 그 순간에 남편은 그저 손짓으로만 나를 멈춰세웠다. 안 퍼와도 된다, 괜찮다는 말 한 마디를 할 줄 모르고, 손짓으로 나를 제지하다니, 진심으로 빡침이 올라오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따져 물었더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데 그게 더 기가찼다. 그들의 밥상에서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 아들이, 저 멀리 애들 밥상에서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있는 내 상태를 알 리 없다는 것도 기분이 상하고, 내가 그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주의깊게 듣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어이가 없었다. 나는 그들의 대화가 들릴 만큼 체력적 여유도 없고, 겨우 저녁을 먹고 있는데 말이다.


문득 신혼초에 참석했던 결혼식 생각도 났다. 남편의 사촌이었는지 누구였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남편은 그 와중에 부주계를 앉았던가 그랬을 것이다. 나는 어딘가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고. 그렇게 덩그러니 남겨진 것에 매우 기분이 상했고, 결국 우리는 결혼식을 본 후 밥을 먹지 않고 나왔다. 그 날 확실하게 깨달았다. 내가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있는 순간을 매우 견디기 힘들어한다는 것을. 나의 인정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그 순간을 견딜 수 없어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 추석을 지내기 전까지는 그럼에도 착한 며느리를 하려고 했다. 나의 인정욕구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르니 불가능한 것 같다. 신혼초 결혼식 기억까지 떠오른 걸 보면, 이제 더이상 착한 며느리의 가면을 쓰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게다가 친정에 잘 다녀왔다고 울산공항에서 부산으로 가는 중에, 시댁에 전화했더니 경주에 다시 들러서 밥 한끼 먹고 가지 그랬냐며 한 마디 하시는 걸 보면, 그분들 수준의 착한 며느리를 유지할 수 없음이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이제 마음을 바꾸어야겠다.

점점 노쇠해가는 부모를 보는 것이 안타깝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착한 며느리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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