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며느리 가면이 꺼내온 착한 아이 컴플렉스

나는 왜 착한게 싫을까

by 도토리수집가

도저히 마음에 담아둘 수 없어서 써놓은 글 두 편을 보니, 에피소드만 다를 뿐 내용이 동일하다. 인정욕구에 갇혀 착한 척 하는 나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음을 깨달았다는 그런 내용. 나는 착한 아이 컴플렉스를 나름 잘 다루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착한 아이 콤플렉스: 타인에게 착한 아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 자신의 내면적 욕구와 감정을 억누르고, 타인의 요구에 순응하는 행동을 지속하는 심리적 경향을 의미. 이로 인해 자아 존중감이 저하되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낌).


다만 스스로가 대견한 것은 이렇게 글을 쓰며 나의 감정과 욕구를 인식했다는 점, 부모나 주변의 기대에 맞추려는 태도를 버리고 나의 모습대로 살고자 하는 점이다. 적어도 착한 아이 컴플렉스를 극복하려는 출발점을 잘 설정했다는 생각은 든다. 누군가에게 폭발적으로 화를 낸 것도 아니고(남편한테 약간 따지긴 했다. 성질나서 울기도 좀 했고, 폭발적으로 화를 내진 않았을 뿐), 내면을 좀 더 들여다보려고 했으니 말이다.


착한 아이 컴플렉스라는 게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한 건, 김형경의 "사람풍경"이라는 책이었다. 대학교 1학년인지 2학년인지 생각나진 않지만 아직 고등학생 태를 벗지 못한 상태였기에 매우 충격적으로 이 책이 다가왔었다. 심리분석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이 내 얘기처럼 느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내가 인정욕구에 시달린다는 것을, 착한 아이 컴플렉스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아쉽게도 '내가 그렇구나'라고 생각만 했을 뿐,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못하지 않았나 싶다.


변리사 시험도 붙고, 결혼도 하고, 엄마도 된 이후에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게 되었다. 두번 세번 반복해서 읽은 것이 아니라서 내용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했던 것만큼은 마음에 선명히 남았다. 돈이 갖는 힘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미 변리사로 일을 하고 있었고, 엄마로, 아내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갖고싶은 것을 사거나, 돈을 들여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주저한 일이 별로 없었고, 남편이 돈을 써야하는 일에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서로가 과소비를 하지는 않는 사람이라는 신뢰도 충분히 있었다). 논농사도 하고, 밭농사도 하고, 소도 키우는 시댁에서조차 아무도 나에게 농사일을 거들라고 시키지 않으셨다. 그건 일하는 며느리라서, 그것도 소위 사짜 며느리라서 조금 더 배려해주신거라는 생각도 조금 한다. 전업주부였다면 어차피 일도 없는데라고 생각하실 수 있으니 말이다.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능력이 된다는 건 내 자존심이었다. 내 일을 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내 일을 잘 할 수 있다면 다 괜찮았다. 그렇지만 맞벌이에 아이 둘을 키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의 저녁 시간은 아이들을 위해 쓰여지는데 남편의 저녁 시간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 똑같이 맞벌이를 하는데 나의 저녁 시간은 남편의 양해를 받아야 회사일을 하는데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은 견디기 어려웠다. 나에게 내 마음껏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자존심이 짓밟히는 일이었다. 나에 대한 무시라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남편과 부딪히며 그 시절을 견디었다.


그러다 독서모임에 나가게 되며 손자병법을 접하게 되었다. 지피지기 백전불패를 통해 결국은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배우며, 나는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다. 남편과는 이길만한 사안에 이길만하게 싸울 거라며 자신만만하게 굴었다. 회사에서 나와 맞지 않는 상사와 대적하는 대신, 회사 시스템을 바꾸었다. 새 판을 짤 줄 아는 전략가가 된 것 같았다.


오늘에서야 나는 나의 내면을 성장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있다. 나는 착한 아이를 유지한 채, 착한 아이가 살아남는 법을, 착한 아이가 이기는 법을 찾고자 했다. 어린 아이는 그대로 두고 이길 궁리를 했기에 나는 여전히 착한 아이 가면을 쓰고 살거나, 어려운 상황은 회피하면서 살고 있었다.


최근에 대표변리사로 취임을 하면서 나는 너무 준비되지 않았음을,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음을 깨닫고 있었다. 나름 몇년간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왜 여전히 이 모양인가 싶었는데 그건 내가 아직 책임질 어른이 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임을 비로소 확실히 알겠다. 나는 언제나 착한 아이로 남고 싶었음을, 그것을 위해서는 타인을 조종하는 것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여전히 나는 착한 아이 컴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40대 후반, 낼모레 오십인데 말이다. 왜 아직도 그런지 한참을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은 너무 당연하게도 내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직 애라서, '착하다'는 칭찬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참고로, '착하다'의 사전적 의미(옥스포드 사전)는, '어른의 말이나 사회 규범·도덕에 어긋남이 없이 옳고 바르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이나 아랫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쓰며, 웃어른에게는 쓰기 어려운 말'이라고 한다).


착한 아이 컴플렉스를 극복하는 건, 착하지 않게 살라는 것이 아닌데, 못되게 살라는 것이 아닌데, 어른이 되라는 것인데. 나는 이런 것들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누군가 착하다고 하면 욕인 것 같고, 호구같다고 하는 것 같았다. 불편하거나 부당한 상황을 참고 넘기며 가능한한 그곳을 피했고, 착하다는 평판을 유지하면서 뒤로 무언가를 조종하고 싶어했다. 정면 대결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다. 지금까지의 나는 그랬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직 어른이 되지는 못했어도, 내면의 성장이 좀 더디긴 했어도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책을 읽거나 마음에 새겨둘 문구를 찾았고,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심리학이나 교육 관련 유튜브들을 찾아 들었다. 그러면서 가장 최근에 그저 제목이 맘에 들어 사놓은 책이 있다. "내가 커지면 문제는 작아진다"라는 문요한 정신과의사의 책이다. 아직 읽지는 못해서 내용은 잘 모르지만, 저 책의 제목이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명제라는 점은 분명하다. 내가 어른이 되면 오늘의 이 문제들은 틀림없이 작아질 것이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진짜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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