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우리새끼를 보다가
미운우리새끼 윤민수 편을 보았다. 이혼했음에도 동거하고 있던 그들이 드디어 헤어질 준비를 하는 장면이었다. 사이좋게 대화하며, 서로가 나누어 가지고 갈 가구와 물건을 구분할 수 있도록 스티커를 붙이는 모습에, 쿨한 모습 혹은 이혼의 실상이라며 패널들은 입을 댔다. 어쩌면 지칠 대로 지쳐서 더이상 싸우지 못하는 건 아닐까 싶은데 말이다.
그들은 어느 정도 물건 나누기가 끝나고, 밥을 해 먹으며 말했다. 이렇게 둘이 밥을 해먹은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이 식탁에 둘이 앉아 밥을 먹은게 처음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10년만에 단 둘이 밥을 먹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식사준비를 하며 남편은 아내에게 어떻게 한가지에 꽂히면 그것만 먹냐하고, 아내는 맛있는 게 없으니 하나라도 입에 맞으면 그것만 줄기차게 먹는다고 하며 어떻게 그렇게 매번 새롭고 맛있는 것을 좋아하냐고 했다.
같이 밥을 먹으며 아내는 헤어진 후 같이 살고 있긴 하지만 더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게 좋다고 했고, 남편은 큰 집 살고 돈 벌어오면 행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가족이 모여 있는게 행복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고 했다.
먹는 걸 좋아하는 남편과, 먹는 것에 관심이 없는 아내는, 그렇게 둘이 앉아 밥 한끼 먹는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기다림이 싫었던 아내와, 사회적 성공을 원하는 남편은 일상을 공유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결국 그들은 맛있는 것을 먹을 때가 아니라, 싸울 때 식탁 앞에 앉았던 게 아닐까. 공유된 일상을 갖지 못하는 결핍은 어떤 형태로든 흔적을 남기고, 둘만의 한끼는 결국 그들이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 내밀한 속사정은 누구도 모르지만 그래 보였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다보면 둘만의 시간을 내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더 잘 알기 때문에 안타까웠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림으로 보내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싸운 후에, 그들은 그렇게 평화로운 헤어짐에 이르게 되었을지 더 안타까웠다.
싸울 때가 아니라 화해할 때 식탁 앞에 앉았더라면.
음식이 아니더라도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식탁 앞에 앉아 있었더라면.
서로가 원하는걸 말해주었다면.
서로에게 원하는걸 물어봐주었다면.
각자가 생각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공유했더라면.
안타까움에 괜히 그런 생각을 해본다.
몇 십년을 같이 살아도 남이 될 수 있는 사이, 몇 십년을 같이 살아도 이해할 수 없는 사이, 그게 부부인 것 같다. 그래서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일상을 공유하고, 이해되진 않아도 서로가 원하는 것을 일상에 포함시켜 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그렇게 소소한 일들이 모여 일상이 된다. 결국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