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딱 100번만 엄마랑 밥먹기

2025.11.15 첫번째.

by 도토리수집가

아버지가 살아계실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100번만 얼굴을 봐야지' 라고. 아마 나이드신 부모가 돌아가시기 전에 100번도 보기 힘들단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고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친정은 제주도라서 1년에 많이 가봐야 3~4번이니 더 마음에 닿았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결국 100번에 한참 모자란 횟수에서 그쳤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지도 벌써 3년이 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100번에 대한 생각은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다가 이제서야 그 생각이 났다.


올해 엄마는 척추협착증으로 수술을 꽤나 크게 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났다. 척추 수술 특성상 거동도 어렵고, 누군가의 도움도 꽤나 필요한 기간이었다. 그저 바닥에 있는 물건 하나를 집는 것도 어려우니 말이다. 게다가 무척이나 더웠던 여름은 입맛을 떨어뜨려서 면역을 저하시켰고, 각자의 삶을 사는데 바쁜 딸들에겐 서운함이 한가득하고, 회복 중에 겪게 되는 통증은 엄마의 불안을 높였다. 언니와 나는 건강염려증이라며 한숨도 쉬고, 농담처럼 "부작용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붙여드렸다. 6개월이 다 되어갈 때 병원에서는 최종적으로 이제 더 이상 약을 처방할 게 없고, 수술은 잘 되었다고 했다. 각종 부작용을 논하던 엄마는 시간이 해결해주는 몸의 회복과 의사의 단호함에, 마음을 좀 바꾸어먹고, 스스로 몸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경락을 하는 언니의 도움은 그 회복에 매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면서 언니는 엄마에게 전화도 좀 자주 하고, 혼자만이라도 한번씩 제주도에 왔다가라고 했다. 사실 식구들 다같이 가려고 하면 좀 일정을 맞추고 하는게 어렵지만, 혼자서 당일치기나 1박2일은 어렵지 않으니 말이다. 언니 말이 맞는 것 같아 한두달에 한 번은 가봐야지 싶었다. 8월에 한 번 다녀오고, 추석에 식구들 다같이 다녀왔으니, 10월의 어느날 문득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엄마, 11월에 한 번 갈게. "

"왜? "

"그냥 밥먹고 오게. 애들은 좀 바쁘고. 나혼자 갈게. "

"언제 온다고? "


엄마는 내 방문 계획을 매우 반가워했다. 그냥 예의상 한번 가야지 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미안할 만큼.

막상 제주도에 가기로 한 날이 다가오자, 지난 8월에 아직 회복기인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온게 영 마음에 걸렸던 게 생각나서, 반찬이라도 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올림해서 50인데, 아직도 엄마 밥을 얻어먹는게 부끄럽다는 생각을 이제야 하다니, 철드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면서 100번만 보자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칠순이 넘은 엄마를 10년 정도 더 본다고 하면, 솔직히 10년에 100번도 간당간당하다. 이 번에 제주도를 가는 것을 그 첫번째로 하고, 앞으로도 부지런히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야 100번을 채울 수 있다.


무려 첫번째니까, 딱 100번이라도 뭘 해드려야지 싶어서, 요리를 잘하진 않지만 혼자서도 챙겨먹기 쉬운 반찬으로 소고기 다짐육을 사다 매콤하게 볶았다. 온라인으로 반찬 재료도 엄마 집 앞으로 주문해놓았다. 거기에 소고기 다짐육을 사다달라고 부탁했더니 사골을 사와 곰탕을 끓여준 남편 찬스로, 사골곰탕과 곁들일 파와 삶은 고기를 싸들고 의기양양하게 제주도로 향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엄마에 대한 생각보다, 100번을 보러갈 생각을 한 내가 기특한게 컸다. 뭔가 두 손 가득 가는 그 기분이 좋았다. 그렇지만 부산으로 돌아올 때는, 그런 얄팍한 생각의 나를 엄마가 더 반겨주고 공항까지 바래다 주고 싶어하는 엄마 마음이 느껴져서 엄마한테 미안해졌다.

10년만 더, 99번만 더 보면 철이 좀 들려나.


어쨌든 엄마의 남은 생이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엄마의 재미있는 삶에 나와의 식사도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 다음 비행기표를 끊지 않았지만, 12월 어느 날엔 올 해를 마무리하면서 송년회를 해야겠다.



(앞으로 엄마와의 100번의 식사를 기록하는 게 내 브런치의 새로운 목표다. 10년치 글감을 확보한 기분이다.)


# 제주도에서 엄마랑 먹은 메뉴

2025.11.15 저녁 - 오리구이+탕+솥밥 : 언니네 집 앞에 새로 생긴 오리집이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https://naver.me/5CFB0WjS

2025.11.16 아침 - 사과와 피넛버터, 낫토와 소고기 볶음, 닭가슴살 구이 : 전날 거하게 먹은 저녁에, 주문한 식재료들을 소개하고 닭가슴살 구이 반찬을 만들며 조금씩 맛봤다.

2025.11.16 점심 - 들깨죽: 이모가 와서 들깨죽을 끓어 먹었다. 생각보다 쉬운 레시피라서 집에 있는 들깨가루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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