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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숙 Oct 18. 2023

테이트브리튼미술관, 중간에 나온 썰

50대 아줌마의 영국 혼자 여행기

된장국이 그리운 약간 아쉬운(?) 한식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동네 마실 나가듯 20여분쯤 걸으니 어느덧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 도착했다.

 개관 시간이 10시인데 9시 40분쯤 도착했기 때문에 

미술관 옆 정원 벤치에 앉아 시원한 런던의 아침 공기를 즐겼다.

런던에는 테이트 브리튼과 테이트 모던, 2개의 미술관에 테이트란 이름이 있는데, 

이 이름은 미술관의 설립자인 헨리 테이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헨리 테이트는 설탕 제조업으로 부를 축적했고 

1892년 자신이 모은 미술품을 국가에 기증하면서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이 개관되었다.

그래서인지 이 미술관도 무료이다. 

'맘만 먹으면 언제든 걸어가 볼 수 있는 미술관이 무료라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을 하며 안으로 들어가니 안내도가 보였다.

그림이 너무 많아 보기도 전에 배가 부른 기분이었지만 

전부 다 보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테니  

눈에 띄는 그림을 먼저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둘러보기 시작했다.

Saltonstall Family란 그림이다. 가족의 모습이어서 눈길이 갔는데 

자세히 보니 침대에 누운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인 듯하다. 

설명을 보니 예전에는 산 자와 죽은 자를 가족 그림에 함께 넣기도 했다고... 

모자를 쓰고 서 있는  Saltonstall 씨의 첫 번째 부인은 병색이 완연한데  

그녀는 손을 뻗어 자식을 부르는 듯하다. 

그런데 남자의 시선은 아기를 안은 두 번째 부인에게 향하고 있고.. 

나의 시선을 끈 것은 가족의 모습이어서였는데 

결코 행복한 그림이 아닌 죽어가는 여자의 입장에서 

피눈물(?)이 나는 그림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두 아이를 남겨 놓고 죽어가는 데 

새 여자가 아기를 낳았으니 모든 이야기의 소재가 되는 '새엄마 이야기' 그림이 아닌가?


다음으로 눈길이 간 그림은 

스펜서 가문의 여인이란 제목의 앤서니 반 다이크의 그림이다. 

여인의 신원은 불확실하나 그녀가 유복한 가문의 여인인 것을 

그녀의 당당한 얼굴과 분위기, 그리고 옷차림에서 추정이 가능하다. 

그녀 옆의 개와 도마뱀은 충실함의 상징이란다.

즐거운 미술품 감상은 여기까지였다. 


휴대폰을 보니 남편의 톡이 왔는데, '딸에게 연락 좀 해 보지? 힘든 것 같던데....'


여행이란 원래 모든 것을 다 떨치고 떠나는 것이지만 

혼자 여행이다 보니 수시로 가족과 톡을 하고 있었는데, 

직장을 바꿔 새로이 출근한 딸아이가 많이 힘들어한다는 것이었다. 

미술관 한쪽 귀퉁이에서 딸과 통화를 했다. 


딸의 설명을 들으니 첫 출근을 했는데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내려오니 교무실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점심시간도 충분치 않아 점심도 굶고.. 심지어 첫 출근인데 

선배 교사가 계획에도 없는 수업 참관을 하겠다고 갑질(?)까지 하고... 

(상대적으로 자신과 같은 날 출근한 동료는 

동학년이 함께 점심 먹으러도 가고 안내도 친절하게 해 주고, 

 첫날부터 너무 열심히 안 해도 된다고 위로까지 해 주었단다.)

(내가 추정하건대 딸아이도 이전 회사에서 팀장까지 했고, 신규 직원을 챙겨본 경험도 있고 직장 분위기를 모르는 아이는 아닌데...

 학교의 경우는 모두가 동료라고 생각하다 보니 

누구도 첫 출근자를 배려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보통은 선배 교사나 동학년, 혹은 부장이 챙기기도 하련만...

아마도 그곳은 각자 살아남는 분위기였던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하지만 어쩌랴, 분위기가 좋은 곳도 있고 안 좋은 곳도 있으니 

견디고 버텨내야 하는 게 직장인 것을.)


또 하나, 과 사무실에서 수석 졸업이니 졸업식에 참석할 수 있냐고 전화가 와서

 학교에 연가를 쓰고 싶다고 말하니 

관리자가 '수업도 있는데 연가를 꼭~~ 써야겠냐고 해서 

졸업식도 못 가게 되었다고 속상해하였다. 

물론 나 같은 경력자는 그렇게 말해도 '배 째라' 하고 밀고 나갔을 텐데 

이제 막 시작한 직장 초보자이니 말을 못 한 것은 당연하였다. 

그래도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2년 반 동안 미친 듯이 공부하고 편입인데도 수석졸업하게 되었다고 얼마나 좋아했는데...(딸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학교 분위기는 별로여도 

털도 부숭부숭한 고등학생들이 이쁘게 보인다고 하니 

안심이 되기는 하였지만 딸과 통화가 끝나고 나니

 더 이상 그림을 보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마음이 아파 한참을 미술관 소파에 앉아 있다가 생각을 바꿨다. 

설사 내가 한국에 있었다고 해도 그 상황을 어떻게 바꾸어 줄 수도 없고...

그 힘든 무게는 딸이 이겨내야 하는 삶의 무게였다. 

그렇다면 나는 힘들게 이곳까지 왔으니 내 몫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기분을 바꾸기 위해 미술관을 나와 

 오늘 보기로 한 뮤지컬 극장이 있는 런던 시내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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