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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을 보여줘도 괜찮아

내가 내 곁에 있을테니까

by 구름파도

그날도 똑같은 하루였다.

나는 내가 바깥에서 생각 없이 말하고 행동했던 것, 그 행위가 너무 과했던 것에 대해 반성하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기에.(아무리 애를써봐도 모든 악이 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걸까?)

얼마나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고 되새김질 했던가.

무의미한 짓을 반복한 끝에 잠에 빠져들었다.


꿈을 꾸었다.

낮선 천장이 보였다.

희미한 전등 빛, 좁디좁은 방, 그 한가운데에 누워있는 나.

손을 들어보았다. 폭싹 늙어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이 보였다.

그 손을 보자마자 깨달았다.

아. 나는 나이를 먹을대로 먹었구나. 그래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구나.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뒤, 더러운 단칸방에서 쓸쓸하게 혼자 죽어가는 나.

내 끝은 외로울거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아래쪽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그곳을 바라보니 누군가의 형체가 희미하게 보였다.

따뜻한 손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꿈속의 나는 온 힘을 짜내 형체를 바라보았다.

그 형체는 나였다.

딱, 이 글을 쓰고 있는 젋은 나이대의 내 모습.

시끄럽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길래 뭔 소리를 하는가 싶어서 귀를 기울여보았다.

'야! 일어나! 이대로 후회만 하다가 죽을거야?'

...대충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머리를 울리게 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갑자기 체리필터의 '오리 날다'로 바뀔 때 즈음 나는 깨어났다.


휴대폰 알림을 끄고 부스스한 머리를 매만지며 일어났다.

정신 없는 와중에도 꿈의 내용은 유독 선명히 기억났다.

이대로 후회만 하다가 죽을거냐는 물음.

그 물음이 나를 잡다한 생각에서 벗어나게 했다.

단칸방에서 쓸쓸하게 후회만 하다 죽는 삶.

나는 꿈이 내 미래를 보여준 것만 같았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서있었다.

사람들이 내 곁으로 다가와 온갖 말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 말들은 가시가 되고 비수가 되어 나를 찔렀다.

내 몸이고 마음이고 전부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부서지기 직전까지 몰아넣는다.

이 사람들이 나쁜걸까?

아니다.

이 사람들은 나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

왜냐하면 나로부터 비롯된 일들에서는 내가 명백한 가해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뭔 소린지 이해 못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만큼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툭 건들기만 해도 부서질 듯한 마음.

비수가 없었어도 내 마음은 이미 쌓일대로 쌓인 감정에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감정을 숨기고, 가면을 쓰고, 생각을 멈추고, 연기를 하며 살아온 나는 받은 상처를 내보이지 않기에만 급급했다.

그래선 안되는 거였는데.

참고 참다가 곪아버린 나는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나조차도 모르게 되어 버렸다.

남은 것은 뒤따라 오는 후회뿐.


나는 꿈에서의 나처럼 후회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착한 척을 하려 해봐도, 겉만 번지르르한 글을 쓰더라도 그 속에 나는 없었다.

썩어버린 마음을 가만히 두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가 쌓아온 후회의 근원을 표출하고 싶었다.

마침 나에게는 글이라는 이름의 훌륭한 도구가 있었다.

나는 내가 숨겨온 밑바닥을 거침없이 보여주려고 한다.

더럽고, 추하고, 답답할지라도 내가 터져버리기 전에 숨겨왔던 이야기들을 말하고자 한다.

이것이 나의 희망이니까.


'밑바닥을 보여줘도 괜찮아' 브런치북을 만든건 이 때문이었다.

아무도 궁금하지 않을 오래된 이야기.

이 이야기가 너덜너덜해져 끝내 사라져가버린 내 마음을 위로할 수 있기를.

억압된 끝에 흩어져 사라져버린 어린 날의 나를 사랑할 수 있기를.

그리고 마지막 후회가 되기를.

나는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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