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담합니다.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건, 어떤 결정을 하건 반드시 누군가에게는 비판받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 비판이 타당한 면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실망할 필요도 없고 자책할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100이면 100사람 모두에게 욕먹지 않고 비판받지 않는 일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이솝우화 중 당나귀를 팔러가는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 기억나십니까?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팔러 가는데 처음엔 셋 모두 걷고 있었다.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던 처녀들이 당나귀는 편히 걷도록 두고 터벅터벅 걷고 있는 부자를 어리석다고 손가락질 했다.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아들을 당나귀에 태웠다. 얼마쯤 걷는데 이번엔 노인들이 아버지를 배려하지 않는 아들의 불효를 탓했다.
하여 다시 아버지가 타고 가는데 가엾은 아이를 놔두고 혼자 타고 가는 아버지의 매정함을 나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을 같이 태웠다. 얼마 후 젊은이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당나귀가 불쌍하니 부자가 당나귀를 들고 가는 것이 더 낫겠다고 놀렸다. 그리하여 부자가 당나귀 네다리를 장대에 묶어 메고 가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큰소리로 웃었다. 결국은 냇물을 건너다가 당나귀를 물에 빠뜨려 죽게 하였다는 스토리"입니다.
이 우화의 교훈은 "내 사정은 나 밖에 모르며, 내 결정에 대한 책임은 100% 내게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우물가 처녀들, 노인, 젊은이, 비웃던 사람들 모두 그들 나름의 논리로 간섭했고 맞는 부분도 있지만, 부자와 당나귀의 사정은 아무것도 모르고 무엇보다 당나귀를 읺어버린데 대한 책임은 1도 져주지 않습니다.
만약 갈 거리가 그리 멀지 않고 아버지와 아들이 걷는걸 좋아한다면? 우물가 처녀들이 틀린겁니다.
만약 아들이 병약해서 장시간 걷기 어렵고 아버지는 건강하다면? 노인이 틀린겁니다.
만약 당나귀가 울트라 힘쎈 근육질 당나귀라 부자를 태워도 끄떡도 없다면? 젊은이들이 틀린겁니다.
이처럼 내가 내리는 모든 선택, 결정은 100% 누군가에게 비판받고 욕을 먹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비판은 일반론에서는 지극히 타당할지라도 그 사람이 내 사정을 모르는 이상, 나에게는 완전한 오답이 될 수도 있는겁니다.
그러니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남에게 비판받고 욕먹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피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비판을 도외시하란 것은 아닙니다.
내 사정까지도 알고서 하는 진지한 조언은 곱씹어봐야합니다.
내가 정말로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나를 잘 모르고, 내 사정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일시적 호기심에 진흙묻은 신발로 내게 들어오려는 사람의 비판, 욕은 가볍게 흘려버리십시오.
"응, 알겠어. 알겠는데 그건 니 생각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