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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혈청년 훈 Mar 14. 2021

15.[시사잡설]yes맨6 Mr.쓴소리4의 황금비율

개인, 기업, 국가경영의 성공을 위한 Yes맨과 Mr.쓴소리 황금비율

Mr.쓴소리

여러분의 주변 지인, 다니는 회사에서 보면 yes맨이 중용받는 것 같은 느낌 없으십니까?

조금 멀리 역사책을 보면 늘 간신이 득세했다고 나오는데,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어째서 늘 간신들이 존재하고 지도자는 이를 끊어내지 못하는 것일까?'란 의문을 가져본 적 없으십니까?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서 좀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1. yes맨을 위한 변명


저는 yes맨은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세상일은 나 혼자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직은 당연하고 심지어 개인의 일에서도 그렇습니다.


대입에서의 재수, 취업준비, 결혼과정 등등을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 주위의 부모님, 형제자매, 친구들, 지인들이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반대만 합니다.

내 뜻을 지지해주고 이해해주는 yes맨이 단 한명도 없다면, 그 때도 여러분은 재수를 하고 취업준비를 하고 지금 배우자와 결혼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만큼 나도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받습니다.

내가 추진하는 일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yes맨의 존재는 당연히 필요합니다.


그리고 특히 조직에서 yes맨은 실제로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입니다.

경영자의 철학과 목표, 비전을 이해하고 이것을 지지하며 아랫사람들을 움직여줄 yes맨이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경영자라도 본인의 뜻에 따른 경영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건희 회장이 아무리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했다 하더라도 회의에 참석한 사장단 전원이 일제히 반대를 표명했다면, 그 때도 과연 삼성이 바뀔 수 있었을까요?



2. Mr.쓴소리를 위한 변명


이번에는 Mr.쓴소리에 대해서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대부분의 경영자, 중간관리자 심지어는 직원들조차 Mr.쓴소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1번에서 말한 것에 더하여 회사 사기를 저하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회사에 불만이 있으면 나가라는 극단적인 얘기를 듣기도 하는 사람들입니다.


Mr.쓴소리는 정말로 필요없을까요?

만약 개인의 삶, 회사경영, 국가운영에 있어서 돌발변수가 하나도 없다면 그래도 됩니다.

단 한 번도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거나, 기존에 했던 의사결정이지만 과거와 완벽히 동일한 조건, 상황하에서의 의사결정이기에 변수가 전혀 없다면  Mr.쓴소리는 내 곁에 없어도 됩니다.


그러나 지금 말씀드린 가정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는 금방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하다못해 늘 이용하는 대중교통조차 어제 폭설이 내렸으면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하고 갑자기 사고나 고장이 나서 잘 가다가 멈춰설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직장에서도 새로운 업무로 배치를 받을 수도 있고 설령 같은 업무를 계속 담당하더라도 승진을 하게 되면 새로운 상황에 대한 판단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리하자면 1) 완전히 새로운 의사결정, 2) 선택에 따른 결과나 파장이 불확실한 상황, 3) 리스크탐색 등을 위해서는  Mr.쓴소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개인에게도, 회사에도, 국가에도 말입니다.



3. yes맨과 Mr.쓴소리의 황금비율은?


가장 이상적인 것은 '결정권자와 yes맨이 Mr.쓴소리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yes맨 9, Mr.쓴소리 1의 경우 Mr.쓴소리의 의견은 있으나 마나하게 될 것이고,

반대로 yes맨 1, Mr.쓴소리 9가 될 경우 결정권자가 아무것도 추진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또는 추진이 되더라도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고 그 사이에 타이밍을 놓쳐버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 생각이 다르겠고 정답이 있는데 제가 찾지못한 것일수도 있지만..

저는 yes맨 6, Mr.쓴소리 4가 가장 황금비율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yes맨이 기본적으로 과반이어야 결정권자의 결정을 실현하고 추진할 수 있습니다.

찬성파와 반대파의 세력이 너무 비등하면 의사결정에 소모되는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으며, 요즘 경영계의 트랜드인 작게 빨리 시도해보고 실패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집니다.


한편 Mr.쓴소리의 숫자가 3이하일 경우에는 숫자의 논리, "우리 yes맨은 Mr.쓴소리보다 2배가 넘게 있는데 저쪽 말을 참고해야 해?"와 같이 되어버릴 우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7,8,9에 비하면 3,2,1은 확연한 소수입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저 단순히 조직에서 낙오하거나 투덜이 스머프의 집합으로만 비쳐질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yes맨이 6이하이고 Mr.쓴소리가 4이상이 되면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 않습니다.

회사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라거나 "일부만의 생각이다."고 치부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기본적으로는 경영자의 결정이 yes맨들의 동조로 추진이 되겠으나, Mr.쓴소리의 의견을 반영한 보완책, 수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높고 그러한 토론 과정에서 프로젝트의 완성도, 성공확률은 자연스레 올라갈 것입니다.


제가 읽은 어떤 책에서 본 사례입니다.

(구글링을 해도 잘 찾아지지가 않네요 ㅎㅎ)

어떤 글로벌기업은 각 프로젝트별로 색깔이 다른 모자를 만듭니다.

찬성파에게는 파란 모자를, 반대파에게는 빨간 모자를 줍니다.

그렇게 한 번 토론을 하고 나면 이번에는 강제적으로 찬성파가 빨간 모자를 쓰고 무조건적으로 반대를, 반대파는 파란 모자를 쓰고 무조건적으로 찬성의견을 내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찬성파와 반대파는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게 되어 내부반발 최소화, 결속을 이끌어낼 수 있을 뿐더러 의사결정과정의 질이 훨씬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한 번 시도해볼 가치가 있는 제안이라고 생각됩니다. 



4. 글을 마치며


솔직히 고백하건데 오늘 글의 글감은 온전한 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고 따르는 친구같은 형님과 이런저런 대화 중 그 분의 얘기를 제 나름대로 정리하고 제 생각을 추가(황금비율 숫자 등)한 것입니다.


이미 눈치채신 분들도 계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성향은 기본적으로 Mr.쓴소리입니다.

yes맨이 되는 경우가 당연히 있지만, 무조건적인 yes를 외치는 경우는 일단 없습니다.

제가 yes맨이 될 때는 해당 사안을 Mr.쓴소리 입장에서 고민해 보았으나 종합적으로 옳다고 생각될 때입니다.

그 때는 누구보다도 강력한 yes맨이 됩니다.


다들 느끼시겠지만 조직이나 개인은 결국은 yes맨에 호감이 가고 Mr.쓴소리는 아무래도 꺼리게 마련입니다.

다들 머리로는 알고 있고 들은게 있어서 적어도 겉으로는 Mr.쓴소리에 열린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 행동을 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순진하게도 저는 사람들의 그런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고, 그 사람, 조직을 위해서 Mr.쓴소리의 역할을 다 했습니다.


결과가 어땠을까요? 

짐작하시는 그대로입니다. ㅎㅎ

한 때는 왜 나를 몰라주나 서운하기도 했고, 나야말로 저 사람을 위하는 사람이고 조직의 충신이란 생각에 억울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제 잘못이 더 크다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애초에 이 글감을 준 사람은 엄밀히 말하면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의 말을 종합해보면 제 잘못은 명백합니다.

저는 첫째로 사안별로 yes맨이 될수도 있고 Mr.쓴소리가 될수도 있는데 유연하게 그러지 못했고,

둘째로는 사람들은 일단 본능적으로 내편/네편을 가르는데 그걸 도외시하고 사안별로 이성적으로 판단할 것이라 착각했습니다.


사실 저 둘은 같은 소리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들은 '옳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닌, 내가 '신뢰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설령 옳은 소리라고 할지라도, 내가 싫어하는 사람 또는 내가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말에는 - 그것이 정말로 맞는 말이라 할지라도! -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일단 신뢰를 획득한 뒤라면, 그 때는 내 말의 내용이 yes이건 쓴소리이긴 그건 더 이상 중요치 않은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그러한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의외로 항상 yes만 외쳐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건 결정권자에게 속으로 경멸당하는 지름길입니다.


우선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결정권자라고 해서 신이 아닌데 모든 리스크를 체크하거나 완벽한 계획을 내놓을리가 없는데 무조건 yes만을 외치고 있으면, 그건 그 사람이 무능하다는 말과 동의어가 됩니다.

다음으로 일정한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주위에 사람에게 잘보이려는 사람들로 둘러쌓이게 마련인데 언제나 yes만을 외치면 그들 하나로 전락할 뿐, 뇌리에 각인되거나 기억되지 못합니다.


크고 작은 실수, 실패 끝에 저는 이제 조금 그런 것들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여러분은 저의 실패담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이미 잘하고 계신 분은 그대로 더 잘하시고 저와 같은 실수를 하고 있다면 반면교사로 삼아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최근 유튜버들이 영상 말미에 구독, 일림설정 좋아요를 외치는데 요즘 심정이 조금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ㅎㅎ

브런치는 유튜버와 달리 누가 라이킷을 눌러주거나 구독을 해준다고 바로 수익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계속 쓰는데는 분명한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여러분의 의견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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