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일회담은 여러모로 논쟁이 많고 잦아들기는 커녕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차이는 이번 대일외교를 "기부, 어음, 협상" 중 무엇으로 보는지에 따라 달린 것 같습니다.
비판론은 이번 정상회담을 일본에 일방적으로 퍼주기만 한 "기부"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중립적이거나 소극적 지지입장은 이번 정상회담을 먼저 물건부터 내주고 대가는 나중에 받는 "어음"으로 생각하고,
지지론은 이번 정상회담을 정상적인 외교적 "협상"으로 보고 있기에 서로 간에 평가와 입장이 극명히 갈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협상"이라고 볼 수는 없고, 수 개월 내 일본의 태도를 지켜보면 "기부"였는지, "어음"이었는지가 곧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과 관련된 최근 수년간의 외교뉴스를 통해 우리 국민들은 "상응조치"라는 말에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외교에서는 상대국이 우호적으로 나오면 우리도 우호적으로 대하되, 상대방이 국익을 해하면 우리 또한 동등한 정도의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등한 국가간 외교에서는 이 원칙이 특히 중요합니다.
엄연한 독립국임에도 외국의 일개 대사가 우리나라 국가수반과 동등한 의전, 동등한 격의 회담을 갖게 되면 우리는 그 나라의 속국 내지는 큰 영향력 아래에 있음을 자인하는 꼴밖에 되지 않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일제시대 일본을 비롯한 열강이 우리나라 고종에게 했던 것을 상기하면 됩니다.
이번 한일회담에서 우리가 그나마 얻어낸 것으로 정부에서 말하는 반도체 수출규제는 여러 언론과 관련자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 바와 같이, 사실상 무의미한 것입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일본의 반도체 부품에 대한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화에 착수하였고 그 기간도 벌써 3년이 되었기에 정착해가고 있는 중입니다.
무엇보다 정말로 일본의 반도체 소부장 관련 제재가 치명적이었다면, 당장 삼성전자를 비롯한 우리나라 반도체는 제조나 수출이 급감했을 것이나 지난 3년간 일본의 수출제재로 인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받은 것이 없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부"는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고, 요구하지도 않으며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이익을 안겨주는 것을 말합니다.
"어음"은 기부와는 엄연히 다릅니다.
"어음"은 일단 내 물건을 먼저 납품하되 정해진 기한이 되면 납품대가를 받기 때문에, 반대급부가 있는 거래입니다.
일단 정부가 지금까지 밝힌 내용과 흘러나오는 언론보도들을 고려했을 때, 정부가 반대급부를 뭘 바란다고 한 내용은 명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어제 대통령꼐서 우리가 먼저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면 일본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란 취지로 말씀하신 점을 볼 때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이는 외교관계에서 모든 있었던 협상내용, 대화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원칙을 고려할 때 단정지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일본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기로 약속했다면 발표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기는 합니다만...
왜냐하면 외교적 실수나 불이익은 몰라도 얻어낸 것은 잘한 일로서 당연히 국민에게 알리고 싶을 것이니까요.
어찌되었건 현 시점에서는 "기부"일수도 있고, "어음"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음은 무한정 결제를 미룰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길어야 수 개월이면 이번 한일회담이 일방적 퍼주기인 "기부"였는지가 싫든좋든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외교에서 일방적 "기부"는 전쟁에서 패한 상황이나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몰려 일단 살고봐야 하는 정도의 급박한 상황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이 어떤 요구이건 간에 상대방의 일방적 요구를 들어줬을 때, 국민적 저항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21개조 요구에 대한 중국의 5.4운동이 한 예입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일본에 "기부"와 같은 외교를 해야 할 상황에 있다고는 국민 대다수가 납득하고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본의 경제적, 군사적 압박에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것도 아니고,
일본과의 무역이 전체 교역량의 3~40%를 차지하고 있어 경제적 의존관계가 심한 것도 아니고,
일본이 우리나라의 수원을 차지하고 앉아 협박하고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무엇으로 보든 우리가 일방적으로 굽히고 퍼주는 "기부"의 외교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외교가 결국에는 "기부"로 정리된다면, 국민적 저항을 만만치 않게 받을 것입니다.
국민적 자존심, 역사관, 정부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보편적 가치인 인권문제를 일방적으로 양보해가면서까지 얻어낼 국인이란 것이 있을 수 있다면, 그 국익은 국민 누구나가 납득하고 이해할만한 깜짝놀랄만한 수준의 실질적 이익이 아니고서는 최소한의 정당성을 갖출 수 없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