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고쳐쓰려 하지 말고 처음부터 좋은 사람을 만나자

by 열혈청년 훈

저도 어영부영하는 사이 40이 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쓸 때마다 가슴을 부여잡게 됩니다 ㅠㅜ

나이를 먹은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딱히 이뤄놓은 것도 없고 괜찮은 사람인지, 직장에서나 사회에서나 부모로서나 한 사람 몫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못내 아쉽고 부끄러운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어쨌건 각설하고 그래도 100년 전만해도 평균수명을 거의 다 살아온 수준이 되었으니 나름 살아오며 느낀 것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오늘 글 제목입니다.


"사람을 고쳐쓰려 하지 말고 처음부터 좋은 사람을 만나자."


정말정말 느끼지만 사람은 고쳐지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도 고치지 못하는데 어떻게 감히 내가 남을 고칩니까?


진지빨고 얘기히자면 나 또는 다른 사람이 고쳐지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의 의식구조가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글에서 쓴 것처럼 여성에게 껄떡대는 것을 예의 내지는 친근함의 표시로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성희롱의 근절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고,

사람은 술자리를 가져야 친해지고 거기서 비로소 본심을 얘기할 수 있다고 믿는 상사에게 회식을 줄이자는 제안은 소 귀에 경읽기일 것입니다.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서 생각해보면 '고친다'라는 표현도 오만하기 그지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고친다'라는 표현 자체는 이미 그 사람이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 사람이 고장난 것이 아니라 그걸 문제로 바라보는 내가 고장난 것일수도 있습니다.


설령 정말로 그 사람의 잘못된 부분을 고쳐야 하는 것이 맞다고 하더라도, 저 같은 문외한이 가전수리를 해봤자 세탁기를 더 망가뜨리기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그 사람의 문제점을 고칠 수 있는 전문가인지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고쳐쓴다'란 표현 또한 어쩌면 '다른 사람을 내 마음에 들게 개조한다'는 뜻일지도 모르지요.

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입니까?


물론 그렇다고 그야말로 철저하게 문제되는 사람과 선을 긋고 삭막하고 기계적으로 살자는 것은 아닙니다.

존중을 빙자한 방치, 은근한 따돌림을 조장하자는 것도 더더욱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성격을 갖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건 그건 그 사람의 나름의 특성이므로 존중하자는 것입니다.

내가 어울리고 싶으면 다가가고,

어울리고 싶지 않다면 지켜보기만 하고,

그 사람이 다가온다면 물러서면 됩니다.


혈연관계 같이 선천적인 관계는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그 외 우리 인간관계의 90% 이상은 대체적으로 내가 조절할 수 있습니다.

직장의 경우도 거리감을 조정할 수 있으며 이도저도 안되면 퇴사하거나 이직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기억했으면 하는 것은 우리의 시간, 관심사, 체력은 유한합니다.

그런 한정된 시간을 성공확률도 낮고 스트레스만 받는 일에 쏟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오늘 하루도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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