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희노애락과 대소사를 단 두 가지로 정리한다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 중에는 절대적으로 바뀔 수 없는 것과 바뀔 가능성이 계산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태어난 연도, 국가, 부모, 형제자매, 혈액형, 타고난 재능 등은 대표적으로 절대적으로 바뀔 수 없는 것입니다.
바뀔 가능성이 계산되지 않는 대표적인 것으로는 사람이나 조직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비록 매우 낮은 확률이지만) 외부의 충격에 의해서 또는 갑작스런 깨달음에 의해서 바뀔수도 있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한 번 나에게 조직이나 사람이 매긴 위치,형성한 이미지를 바꿔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면 통제가능한 것은 나 자신밖에 없나요?“ 이렇게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나 자신에 대해서도 실제로 통제가능한 범위는 생각보다 적습니다.
예를 들어 퇴사는 언제든지 사직서만 제출하면 그만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이 드문 것처럼, 현실적인 여러 사정과 이해관계들이 얽혀있어 나 자신에 대해서조차 100%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데카르트처럼 생각하고 또 생각할 때, 어떤 경우에도 100% 나에게 통제권이 주어진 경우가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나의 생각”, 더 정확히는 “일어난 사건을 받아들이는 관점”은 온전히 나만의 것입니다.
새옹지마란 유명한 고사처럼 이미 일어난 일이나 다른 사람의 언행에 대한 해석만큼은 내 머릿속에서 온전히 이뤄지는 것이기에 그 누구도 간섭하거나 통제할 수 없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기회조차 위기로 만드는 것도 결국은 그 사람이 위기나 기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바라보는가에 달린 것입니다.
제가 통제가능한 영역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역설적으로 제가 통제가능한 영역에 집중하면 할수록 결과적으로 제가 통제할 수 없었던 영역들도 조금씩조금씩 통제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오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