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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혈청년 훈 May 05. 2024

함께한 기록이 아닌 함께한 기억이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 나아가 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오래 함께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당연히 부모입니다.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계속 연락하고 만나고 함께 먹고 자는 사람은 부모 외에는 없습니다.

배우자라 할지라도 상당기간 성장한 후 성년이 되어서 함께한다는 점에서 부모님을 일찍 여의거나 배우자와 아주 오래 살지 않는 한 부모님과 함께한 시간보다 긴 시간을 함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 땅에는 비극적인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날까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신체적, 정서적 아동학대와 자식의 부모에 대한 패륜행위를 뉴스로 듣는 것이 어렵지 않은 사회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부모, 자식에게 그런 끔찍한 일을 할 수 있는걸까요?


저는 함께한 기록은 함께한 기억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어사전의 함께하다란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모두 있습니다.

1. 경험이나 생활따위를 얼마동안 더불어 하다.

2. 어떤 뜻이나 행동 또는 때 따위를 서로 동일하게 취하다.


눈치빠른 사람은 이미 이제부터 하려는 말을 짐작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1이 아닌 2로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 자녀에게도 사회에서 저를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말입니다.


인간은 컴퓨터가 아닙니다.

2024년 5월 5일 10시 17분에 에버랜드에 입장했고 같은 날 18시 22분에 에버랜드를 나왔다는 것은 단순한 사실, 기록입니다.

그 날 찍은 사진과 동영상도 그 자체로는 하나의 기록에 불과합니다.

그런 단순한 기록은 자녀와의 유대를 강화하는데 쓸 수 없습니다.


인간은 그 순간, 그 때의 감정, 느낌을 기억합니다.

감정이 먼저고 그 감정을 떠올리기 위한 매개로서 기록이 의미가 생깁니다.

함께하며 느낀 감정이라면, 그것이 곧 함께한 기억이 되는 것입니다.


중학교 2학년 시절 다리를 크게 다쳐 한쪽 다리에 통기브스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희 집은 언덕 비슷한 곳을 깍아서 만든 곳에 살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경사가 제법 있었습니다.

그 위에 주차장 아닌 주차장 느낌의 공용공간이 있는데 하루는 차가 가득차서 위에다 차를 댈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저 언덕 아래애서부터 당시 60키로가 넘던 저를 업고 언덕을 올라 하필 언덕 깊숙한 안쪽의 우리집 3층까지 쉬지도 않고 한 번에 가셨습니다.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서는 아버지의 등에 업힌적이 없었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입니다.

정확히 언제부터라고 법에 정해진 것은 아니나 초등학교 2, 3학년만 되어도 아빠 등에 업힌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 때 아버지 등에 업혀서 올라오던 10분은 저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어릴 적 이후로 완전히 잊고 있었던 누군가의 등에 업힌다는 낯선 느낌,

다 커서 아버지에게 업혀가고 있는데서 느끼는 약간의 부끄러움,

무거울텐데 하는 미안함과 고마움,

그런 한편 몸이 허공에 두둥실 떠 있는데서 오는 낯설지만 기분좋은 느낌 등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모두가 저절로 친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동료만 떠올려보더라도 분명히 같은 부서에서 함께 2년, 3년을 근무했는데 나중에 업무적으로 물어보거나 뭘 부탁할 때 그 때 함께했다는 이유만으로 편하게 전화를 걸 수 있던가요?


가정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가족이고 친부,친모라 할지라도 단순히 집에 함께 있었다는 기록만으로 저절로 자녀와 유대관계가 생기지 않습니다.

함께한 기억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이 추억이 되고 부정애, 모성애를 느끼는 재료가 되고 나아가서는 가족의 유대관계란 것이 생겨날 것입니다.


회사가 그토록 얻고 싶어하는 직원의 애사심이란 것도 같습니다.

직원에게 함께한 기억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회사가 직원과 함께 울고웃은 기록이 아닌 기억을 많이 만들면 만들수록, 직원들 중 회사에 애사심을 느끼는 비율이 늘어날 것입니다.

여기서 "아하! 직원들과 회식, 등산, 워크샵을 자주가면 되겠네"라고 생각하신다면...

바로 그래서 당신의 회사에서 직원들이 계속해서 탈주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확실히 여행은 서로 낯선 공간을 함께 가는 것이기에, '함께한 기억'을 만들기에 아무래도 좀 더 용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곧 집에서는 함께한 기억을 만들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일상에서도 잘 준비하거나 사소한 우연, 예측불허의 행동을 통해서 얼마든지 함께한 기억을 만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장소가 어디이건, 어떤 때이건 자녀에게 함께한 기억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2024년 5월 5일 오전 6시 39분입니다. 

조금 뒤에 저도 그렇고 이 땅의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와 함께 어디론가 갈 것입니다.

어쩌면 어제 이미 출발하신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네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아이와 함께 행복한 어린이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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