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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혈청년 훈 May 23. 2024

반려동물,룸메이트-사람은 결국 혼자가 어렵고 외롭다

최근 혼인율, 출산율이 낮아서 이 문제만 집중적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떠오른 의문이 있었습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그럼 오로지 혼자서 살고 있는걸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혼동거중인 룸메이트, 수많은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도 결국은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 대상이 법적혼인을 한 상대가 아니거나 사람이 아니라는 것 뿐, 그야말로 온전한 천애고독을 정말로 사람들이 선택하고 있는 것일까?

전 아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우선 법적 혼인관계도 아니고, 가족관계가 아님에도 한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는 룸메이트, 찾아보니 비친족가구라고 한다는군요.

이런 비친족가구(룸메이트)는 무려 100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https://www.khan.co.kr/national/health-welfare/article/202301022159005


그리고 이어서 반려동물과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반려동물 인구 중 상당수는 흔히 말하는 법률혼을 통해서 가정을 이룬 집에서 기르는 경우 아니에요?"라고 말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혼인구 중 반려동물 인구는 어떻게 되는지츨 찾아봤습니다.


마침 23년 10월에 나온 따끈따근한 통계청 자료가 있었습니다.

경인지방통계청이 수도권 미혼인구 통계를 발표했는데, 수도권 20~49세 미혼 1인가구 10가구 중 1가구는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수도권 20~49세 미혼인구는 총 1,143.3만이니 10.4%를 단순계산하면 118.9만명이 반려동물과 살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https://sri.kostat.go.kr/board.es?mid=a30301010100&bid=5110&tag=&act=view&list_no=427656&ref_bid=


또한 같은 통계발표 자료에 따르면 20~49세 미혼인구의 60.3%는 부모와 동거하고 있으며, 29.7%는 혼자 살고 있고 기타는 10%였습니다.


특히 제 눈길을 끝 것은 2022년 기준 주관적 삶의 만족도가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명백히, 크게 낮아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20~29세만 해도 주관적 삶의 만족도가 거의 절반에 가까운 46.3%가 40~49세로 가면 25.3%로 거의 반토막나는 반면, 불만은 12.7%로 낮았다가 40~49세엔 27.8%로 2배 넘게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결국 누군가를 필요로 합니다.

그 대상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연애를 해서 가족을 만드는 방법 외에 룸메이트를 구해 동거하거나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는 것으로 바뀌었을지언정, 가족과 동거도 하지 않고 결혼해 새 가정을 꾸리는 것도 아니고 룸메이트를 구하는 것도 아니며 반려동물조차 기르지 않은 완벽한 고독 하에 살아가는 청년도 분명히 일부 있겠으나...

대다수 청년들은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불꺼진 집에 혼자 돌아가 잠드는 것은 가능한 피하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혼자 살아본 적은 있지만 생애 비혼으로 살 생각은 1도 해본적 없고, 룸메이트를 구해서 살아보지도 않았으며,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그런 삶을 살고 계신 1인가구 청년분들의 고민과 어려움 또 행복은 사실 모릅니다.

인간은 자기가 가보지 않은 길을 절대로 완전히 이해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법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제 입장에서 우려되는 점을 그래도 한 번 적어보고자 합니다.


다른 존재와 내 생활, 삶, 공간을 함께 하겠다는 결심은, 기대효용과 치러야 하는 비용/대가, 그리고 리스크가 발생합니다.

기대효용은 말 그대로 새로운 가족, 룸메이트, 반려동물 등 다른 존재와 함께 있음으로서 나 혼자였을 때에는 누리지 못했을 여러가지를 누리는 것이 기대효용일 것입니다.

비용/대가는 작게는 나의 돈에서부터 크게는 내 시간, 공간, 인간관계 등등 생활은 물론 삶의 방향이나 삶의 방식에서 모든 것을 오롯이 혼자 결정할 때와 다른 환경에 놓이게 되면서 들어가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리스크는 대놓고 적나라하게 얘기하자면 배신당할 확률입니다.

예를 들어 배우자의 부정, 바람은 결혼이라는 원인이 없었으면 피할 수 있었던 리스크입니다.

룸메이트가 내 비밀번호를 알아내고 내 인감도장을 훔쳐가 모든 재산을 탈취하거나 나에게 거액의 빚을 지우는 리스크도 동거생활 자체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없었을 리스크입니다.


유교보이까지는 아니더라도 군인집안에서 태어난 저는 아이디어의 발상, 권위주의에 대한 조소와는 별개로 가족관 같은 것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편입니다.

그런 제가 보기에 전통적인 결혼이 아닌 룸메이트, 반려동물과 지내는 선택지는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에 비해 기대효용이 다소 낮아지는 대신, 치러야 하는 비용/대가 및 리스크 또한 낮추고 억제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만약 일종의 체험판, 인턴 비슷하게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에 앞서 동거를 해본다거나 어떤 사정이 있어서 힘든 심신을 추스르기 위해 우선 사람이 아닌 반려동물과 지낸다던가 하는 것은 전혀 반대할 이유도 없고 오히려 권장할만한 일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 좋은 사람, 마음이 가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만약 룸메이트, 반려동물이 전통적인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감히 말씀드리건데 그건 불가능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생애주기를 맞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 죽기까지 끊임없이 변화하며 살아갑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말입니다.


키가 커지고 얼굴이 변화하고 머리가 희어지고 등이 굽기 시작하는 육체적 변화,

세상에 나만 잘났고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유아적 사고에서 스스로를 고찰하고 남을 배려하고 나아가 사회를 생각하는 정신적 변화,

대소변만 가려도 칭찬받는 아기에서 시작해 글을 읽고 쓰고 공부를 하고 배우고 누군가를 가르키고 책임질 것을 요구받는 사회적인 변화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은 이러한 생애주기의 변화와 아주 자연스럽게 맞물립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러한 기회가 없으면 나의 생애주기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어려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건 정말 "OOO 아버님", "OOO 어머님"이란 호칭을 한 번이라도 들어보신 분들은 다 이해하실겁니다.


물론 저는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가정이 행복하고 현재 한국의 가족제도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결혼제도는 분명히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나날이 세계의 감탄아닌 감탄을 자아내고 있는 심각한 저혼인, 저출산이 무엇보다 강력한 증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병든 몸을 고치려 하고 무조건 잘라내지 않는 것처럼, 주방 식칼이 살인에 사용되었다고 식칼 자체를 세상에서 없애버리지 않는 것처럼,

문제있는 한국식 결혼문화, 가족제도를 고치고 손을 볼 일이지,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도 옳은 선택인지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부모와 자식은 정서적 교감을 합니다.

때로는 서로 다투고 화내고 싸우기도 하지만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고 서로가 서로를 지지합니다.

하지만 반려동물은 다릅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동물과의 정서적 교감은 한계가 있으며 무엇보다 본질적으로 나는 주인입니다.


아기는 커졌다는 이유로 길에 버림받지 않고, 입양을 하더라도 친자식을 내치는 경우는 없으며, 자아가 생겨 부모에게 반항하고 자기의견을 말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버림받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반려동물은 그렇습니다.

여담으로 아동학대의 본질은 자식을 가족의 일원이 아닌 반려동물과 같은 소유물로 보는데서 기인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결혼과 룸메이트를 계약에 비유하자면,

결혼이 초장기계약이라면 룸메이트는 단기 또는 중기계약일 것이고,

결혼이 무한정에 가까운 권리와 의무를 함께 지는 계약이라면 룸메이트계약은 낮은 단계의 권리와 의무를 부과한 계약이고,

결혼이 원칙적으로 계약종료가 없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 예외적으로만 종료 또는 해지가 가능한 반면, 룸메이트계약은 결혼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 계약종료사유를 규정한 계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사람이 정말 외로운 때는 힘들 때 누가 곁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힘들 때 나를 일으켜주는 것은 미안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말이 아닌 행동입니다.

룸메이트도 걱정은 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그간 내가 얻은 성과, 과실을 함께 향유한 것도 아니고 나에 대한 특별한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둘 사이를 이어주는 아이라는 특별한 존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단순히 말로 위로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면 극단적으로는 술집 바텐더를 찾아가 푸념을 늘어놓아도 됩니다.

기쁨도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지만 나의 기쁨이 곧 가족의 기쁨이 되는 것과 달리 룸메이트는 다른 모두가 해줄 수 있는 그런 축하 이상을 해줄 수는 없습니다.


로스쿨 3학년 가을의 어느날, 아무도 없는 기숙사 문을 열고 들어갔을 난생 처음 외로움을 넘어선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대학교 진학 후 군대, 교환유학, 시험준비, 로스쿨 진학 등으로 수시로 집을 비웠고 20살 이후 반이 넘는 기간을 집 밖에서 지냈지만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습니다. 


물론 그 때의 저보다 더 많은 나이임에도 한 번도 그런 감정을 느껴보지 않으셨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사람의 감정이나 고독에 대한 내성은 다 다른 법이니까요.

아니, 어쩌면 정말로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몸에 맞지 않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 같은 외로움을 넘어선 공허함을 느끼신 분이 계시다면, 그리고 그 분들 중 그 공허함을 빠르고 신속하며 효율적으로 해결하고자 룸메이트 또는 반려동물을 키우고 게시다면...

이 기회에 그간 마음 한 켠에 밀어놓았던 전통적인 가족제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는 것도 어떨까 싶습니다.


오늘은 새벽에 잠이 깨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예전부터 생각하던 주제에 대해서 고민고민하며 글을 써보았습니다.


단지 우리 모두가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더 행복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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