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自傳2] '200만원 인생'으로 끝날 것인가?

대단한 위인이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200만원짜리로 끝나기도 싫다

by 열혈청년 훈

1998년 수능에서 제 성적은 백분위 59%, 원점수로 279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인터넷 용어로 '근자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의 준말입니다.

고등학교 3년간 제가 딱 근자감에 절어있었습니다.


저도 서울대나 스카이는 못갈 것이라고는 알았지만, 정말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래도 인서울이야 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지방대학은 경기도권조차 생각을 하지 않았고 전문대는 머릿속에 존재하지도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수능점수를 받아들고 배치표를 보니 현실은 그게 얼마나 어이없고 황당한 생각인지를 나타내주고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대학입시를 당연하다는 듯이 인터넷으로 지원합니다.

그러나 그 때만 해도 지금은 망해버린 추억의 종로서점 같은 곳을 가서 줄을 서서 일일이 원서를 사서 수기로 작성하고 또 들고가서 제출해야만 했습니다.


여기서 저는 또 한 번의 실수를 합니다.

성적이 낮으면 낮은대로 지원전략이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나는 죽어도 재수를 하기 싫다'는 사람과 재수를 염두에 두고 '떨어져도 괜찮으니 내 눈높이에 맞지 않는 곳은 지원도 하지 않겠다'는 사람의 지원전략은 동일할 수 없습니다.

또는 '전공은 아무래도 좋다. 전과제도도 있으니 조금이라도 좋은 대학을 들어가자'는 사람과 '아무리 좋은 대학도 전공이 안 맞으면 의미가 없다'는 사람의 지원도 동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기준조차 없이 마구잡이로 지원을 했습니다.

특차는 언감생심이니 패스하고 가군부터 라군까지 4번의 기회가 있는데, 위에 말한 사례들을 다 쓴것입니다.

비교적 서울 하위권 대학의 야간학과를 써서 어떻게든 서울에 남아있으려고 하기도 했고,

성적에 맞춰 충청권 대학을 지원하러 가기도 했고,

대학과 무관하게 하고 싶은 전공을 지원하기도 했었습니다.


결과는 4전전패였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2월말이 다 되어서 예비합격번호 130번이었는데 추가합격 통보를 받은 대학이 있기는 합니다만, 가지 않았습니다.

뭐... 당연한 결과겠지요.


그렇게 실의에 빠져 지냈습니다.

그 당시에 있었던 일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집에서 멍하니 누워있는데 뉴스위크 정기구독을 권하는 어느 텔레마케터분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 이 분이 저와 무려 1시간을 통화하고 끊으면서는 "힘내세요"라고 위로를 해줄 정도였습니다.


그런 저를 보다 못한 부모님께서 경기도의 한 전문대에 원서를 넣으셨고 합격했습니다.

다행히 집에서 1시간 40분 거리기는 해도 지하철로 통학이 가능한 곳이었습니다.

3월 개강을 하고 나서 학교를 가서 첫수업을 들었는데,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수능 후 느꼈던 불쾌함과 절망감이 갑자기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벽'이었습니다.

앞으로 저의 인생에 있어서의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물론, 아무리 노력해도 어느 수준 이상은 올라갈 수 없다는 주홍글씨, 벽 같은 것에 부딪힌 느낌이었습니다.


첫 수업이 끝나고 바로 학교를 나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재수를 다시금 생각했습니다.

원래 저는 수능이 끝나고 배치표를 받아들고 나서 재수를 생각하고 말씀드렸었지만, 담임선생님과 어머니 모두 부정적이었습니다.

"재수는 원래 서울대를 갈 사람이 실수를 해서 연고대를 갔을 때 하는 것"이라는 말에 재수생각을 접었었습니다.


학교를 나가지 않다 다시금 재수를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께서는 1주일을 우셨습니다.

말 그대로 일을 나갔다 오셔서 저녁, 밤 내내 울음을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전문대라도 가서 나오면 200만원은 월급 받고 살면서 사람구실 할 것인데, 허파에 바람만 들어서 이제 인생을 망치게 되었다는 것이 어머니 말씀의 요지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이도 상식적인 판단입니다.

오늘 중간고사를 보는 아들이 아침 통학 직전까지 게임을 하다 가서 시험만 보고 돌아와 계속 또 게임만 했습니다.

3년을 그렇게 공부를 안 했는데, 1년 공부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달라질 수는 있겠는가? 경험칙에 근거한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저도 "3년을 놀았으니 1년만 공부해도 성적은 무조건 오른다."는 당시 제 말을 황당하게 느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200만원 언급은 제 막연한 추측을 확신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아! 여기서 내가 편한 선택을 하면 난 진짜로 200만원짜리 인생이 되는거구나!'

그래서 너무 죄송스런 마음이었으나 재수를 끝까지 시켜달라고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1999년 당시 200만원의 임금은 작은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9년 임금근로자 평균임금은 월 129만원이었고 2019년 임금근로자 중위소득이 월 239만원이니 당시 기준으로 월 200만은 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는 급여였습니다.


모자간의 실랑이를 보다 못한 아버지께서 본인 책임으로 재수를 시키겠다고 선언하시고 저를 노량진으로 데려가셨습니다.

지금에야 공무원시험 준비의 메카로 변모했다지만 당시만 해도 노량진은 재수생의 성지 비슷한 곳이었습니다.

다닐 학원을 정하고 전문대를 찾아가 자퇴절차를 밟고 등록금 1/3을 환불받았습니다.

환불받을 때 대학직원이 자퇴사유를 물어보았고 재수를 하려 한다고 하자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세요"라고 말해주었던 일, 첫날 이후 1주일을 출석을 안하고 있으니 "과대표 XX인데, 왜 학교에 안 나오는거야?"라고 걸려왔던 전화가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지금도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자퇴절차를 다 마치고 학교를 나오니 해가 뉘엿뉘엿지면서 노을이 지고 있었습니다.

문득 '내가 인생에서 뭔가 큰 결정을 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몰려왔습니다.

그렇게 엄마를 졸라댈 때는 생각도 하지 않았었던 '기껏 이렇게 재수해놓고 실패하면 어쩌지?'란 생각이 그제서야 갑지가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이제는 앞으로 달려나가야만 했습니다.


오늘도 출근시간이 임박하고 아기가 저를 찾아 이만 줄이고 이 다음은 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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