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自傳3]절반의 성공

패기만으로 성공하기에는 시간의 축적을 무시할 수 없었다.

by 열혈청년 훈

재수가 시작되고 나서 나름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노량진은 당시 천호동에서 제법 멀었기에 현실적으로 송파 대학학원 재수종합반에 등록을 했습니다.

올림픽 공원 옆의 임마누엘 교회 앞에 있는 건물인데 4년인가 5년 전에 그 앞을 정말 오랫만에 지나갈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더 이상 학원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쉽....


이제 졸업도 했기에 더 이상 회수권을 쓸 수 없어 교통카드를 챙기고 매일 같이 점심값을 어머니께 받아 학원으로 향했습니다.

왕뚜껑이 850원, 뜨거운 물은 공짜, 그리고 요즘은 아메리카노에 완전히 밀려버렸지만 그 때만 해도 150원 프림을 듬뿍 탄 자판기 커피가 많았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판기 커피를 오전, 오후 한 번씩 먹기 위해 300원

하루에 1,150원으로 생활을 했습니다.


재수를 하는 기간 동안 어머니와 다툼이라도 일어나면 늘 너 때문에 쓰지 않아도 되는 돈 500만원을 썼다는 말을 듣는게 괴로웠습니다.

전부 돌려받지 못한 전문대학교 등록금과 재수기간에 들어가는 돈이 500만원이라는 것이죠.

마음 같아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밤에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의지가 약해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또 그렇게 해서 성공할 거란 생각은 더더욱 들지 않았구요.


그 이후로도 저는 좌충우돌하며 인생의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그 때마다 너 때문에 쓰지 않았어도 될 돈이 얼마인지 아느냐? 할 때의 액수는 올라갔습니다.

로스쿨을 준비하고 있을 때에는 처음으로 그간 쓴 돈에 대한 얘기를 듣지 않아서 한결 마음이 편했습니다.


이렇게만 쓰면 사정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저희 어머니가 좀 너무했다고 생각하실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실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사람의 행동입니다.

사회생활을 해보고 절실히 느끼는 것은 말로만 남을 위해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돈이 안 드니까요.

근데 어쨌건 밥이라도 한 번 사주면서 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란 것을 배웠습니다.


없는 집에 시집와서 직업군인인 아버지의 벌이가 넉넉하지 않아서 온갖 장사를 해서 집안을 일으키고 저와 여동생을 교육시킨 것은 어머니였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3~4가지 일을 하시고 주말에도 쉬지 않고 빌딩 화장실 청소를 하러 다니실 정도로 열심히 사셨는데 자식이 진로도 빨리 못 정하고 방황하고 있으니 왜 안 답답하겠습니까?

물론 그 당시에는 아무래도 저도 어렸기에 서운하게 생각했지만, 지금 같아서는 다 이해할 수 있고 오히려 죄송한 마음만 듭니다.


수능준비를 하면서는 이과이면서도 괴멸적인 성적을 받은 수학을 보강하는데 집중했습니다.

99년 수리영역 점수는 80점 만점에 겨우 17점이었습니다.

이 점수로는 어디도 원하는 곳을 갈 수 없었습니다.

시간 비중을 수학에 두고 나름 전략적으로 열심히 했으나 고2 때 놓아버린 이과수학을 1년만에 따라잡는 것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2000 수능에서는 56점을 받아 39점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객관적으로 80 만점에 56점이란 것이 높다고는 할 수 없는 성적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만족할 만한 성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는 50점이 올랐으니 사실 수학을 제외하면 그렇게까지 큰 향상이 있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언어영역은 99 수능보다 2000수능이 오히려 좀 떨어지기도 했으니까요

사실 언어영역은 비록 모의고사지만 딱 한 번 120만점에 118점을 받기도 해서 나름 기대했으나, 실제 수능에서는 오히려 성적이 고3 때보다 낮게 나오면서 다소 실망한 기억이 아직도 새롭네요 ㅎㅎ


어쨌건 노력한 보람이 있어서 이제 지원할 대학을 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또 다음에 이어서 한 번 적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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