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회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잊지 말자.
최근 회사에서 좀 씁쓸한 일이 있었습니다.
비록 저에게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공공기관도 역시 회사는 회사구나...'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청장년기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회사생활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다치지 않으면서,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인간답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써보고자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이 하나로 다 설명이 될 것입니다.
회사는 돈을 벌러 온 곳일 뿐입니다.
이 회사가 아니어도 돈은 벌 수 있습니다.
회사가 결코 내 삶의 모든 것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들,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들, 제가 한심하게 생각되는 분들이 분명 계실 것입니다.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프라이드가 높거나 회사에서 소위 잘나가고 계신 분들이 그러실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께는 한 가지만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정년까지 월급 1원 한 장 받지 않고도 계속해서 지금처럼 일하며 다니실 수 있습니까?"
아마 100이면 100 아니라고 하실 것입니다.
내 회사, 내 일도 아닌데 내가 왜 그래야 하느냐, 내 가족은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하실 것입니다.
바로 그겁니다.
우리 모두는 그 회사의 주주나 오너가 아닌 한,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일을 해주고 돈을 받는 피고용인일 뿐입니다.
경력직으로 이직해서 특정한 직급(직위), 업무를 약속받은 것이 아닌 한, 약속된 급여의 지급만 이뤄진다면 그 외의 모든 것은 회사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나를 어디에 배치하고 나를 승진시키거나 누락시키거나 회사에서 중요하게 쓰고 안쓰고 모두 말입니다.
회사생활에서의 괴로움과 갈등, 타인에 대한 시기, 질투는 모두 부서배치, 승진, 회사에서의 역할 등에 대한 나와 회사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내 생각에는 분명히 내가 승진했어야 하는데, 내가 분명히 이번에 승진한 홍길동보다는 훨씬 나은데 왜 회사는 그걸 몰라주지? 등등...
그러나 누구를 어디에 배치하는가, 그를 중용하는가, 승진시키는가는 회사의 몫이지 여러분의 소관이 아닙니다.
애초에 나에게 결정권이나 발언권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착각해서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내가 진심으로 사랑해서 대쉬하더라도 상대방에게는 단지 민폐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는 내가 스토커일 수도 있구요.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아무리 회사에 유능한 인재고 이 회사를 먹여살릴 사람이라고 외쳐도, 회사가 보기에 아니면 그냥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결정하는 것은 회사입니다.
회사에서 나에게 A라는 보직 또는 일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A를 잘 못하거나 A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저 그 뿐입니다.
그 다음에 맡게 될 B는 내가 누구보다도 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미국인이 우리나라 어머니들이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에 먹는 칠면조 요리를 못한다고, "대한민국 엄마들은 요리할줄도 모르는구만!"이라고 말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게 얼마나 어이없고 황당한 말입니까?
나는 태생적으로 한국인으로 태어나 칠면조 요리를 먹어본 적도 없고 구경해본 적도 없다면 칠면조 요리를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김밥도 만들 수 있고 라면도 잘 끓이고 백종원 레시피 따라서 제법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수 많은 다른 요리들이 있는 것처럼, 나의 가치를 절대 회사에서 맡겼다가 실패한 일 하나에서 찾아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제 경험담을 잠시 적어볼까 합니다.
경력직으로 두 명의 변호사를 뽑았는데 제가 거의 두 달 가까이를 먼저 입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설립 초창기에 그 바쁜 와중에 법무업무는 공석으로 두고(저 외의 다른 변호사님이 올때까지), 저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생소한 업무에 배치되었습니다.
제가 부여받은 업무는 정규업무도 아니었고 회사에서 크게 비중을 두지도 않는 업무였고(되면 좋다 정도?), 나중에는 행사 사진까지 찍고 다녔습니다.
회사의 이러한 인사조치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저는 플랜B이거나 그조차도 아니면 복권을 긁는 심정으로 데려간 트리플A의 마이너리거란 뜻입니다.
저도 남자이고 한 가정의 가장이며 자격을 인정받은 변호사인데 왜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묵묵히 일했습니다.
그 즉시 이의를 제기하거나 부당한 대우라고 항의하고 이직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일단 이 회사에 입사했고 면접에서 입사하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 만큼 내 말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하는데까지 해보고 내 딴에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때 다른 선택을 해도 늦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후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여전히 회사에서 쩌리입니다.
다만 그간 노력한 보람이 아주 없지는 않아 최소한 앉아 있을 자리는 확보했다고 생각합니다.
막차에 가깝긴 하나 승진도 하고 주무부처에 파견도 다녀왔고 사람들과도 원만히 지내고 있어 그렇게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그 상황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괴감에 빠지지 않으면서 잘해보자고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위와 같이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여러분의 생각과 의견을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