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5년 정도 일을 했으면 슬슬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똑같이 일을 지시받거나 부탁을 받아도 그게 어떤 의도인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일을 나에게 시키는 것이 정말로 나에게 기대를 해서인지, 아니면 귀찮은 일을 떠맡기는 것인지
왜 어떤 일은 나에게 보고나 회의참석을 시키고 또 어떤 일은 굳이 본인이 보고나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하는지 등... 그런 것들이 슬슬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말을 정리하면 이런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누가 정말로 일을 하는 사람인지, 누가 일을 하는척만 하는 사람인지'
똑같이 회의자리에서 화를 내도, 누가 정말로 일을 망칠까봐 안타까워서 그러는 것인지, 누가 자기 입지에 영향이 있을까봐 그러는 것인지 등등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사실들을 임원이나 중간관리자가 제대로 알기만 하면 회사내의 여러 부조리가 바로잡히겠구나!'
지금부터 쓰는 3편은 그럴 일이 없음에 대해서 논하고자 합니다.
회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여러분이 생각하는 부조리는 사실은 부조리가 아니라 회사가 의도한 것이거나 지금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서 지켜보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우선 회사는 여러분이 아는 것보다 무조건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이건 100% 단언할 수 있습니다.
오너 아들이거나 사장 비서를 맡고 있거나 하지 않는 이상, 5년차 실무자에 불과한 여러분은 회사의 공식적인 정보 습득에 상당한 지장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비공식 정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각 부서에 여러분의 동기가 아무리 많이 있다고 한들,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의 한 마디를 줏어들은 것의 단순 전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의사결정 자체에 참여할 수 있고 여러분보다 훨씬 많은 회사 내의 선후배, 동기들이 있는 중간관리자들보다 5년차가 비공식 정보를 더 많이 알고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의 실상, 어떤 일의 실상에 대해서 굳이 얘기하지 않더라도 중간관리자 이상 간부진은 이미 그 사람에 대해서 여러분보다 더 정확히 알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면 황당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걸 알면서도 그 사람을 밀어준다고?', '뼈빠지게 고생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럼 눈을 감은거라고?'
5년 전에는 저도 똑같이 생각했습니다.
지금부터 하려는 얘기는 제가 전에 쓴 글 '무능한 중간관리자가 살아남는 이유(https://brunch.co.kr/@sugo30/31)'와도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그 글도 읽어주시면 이해에 보다 도움이 될 같습니다.
최근 국내 굴지의 IT기업 재직하시던 분이 안타까운 선택을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실관계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보도된 내용과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진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해당 기업에서 예전에 재직했던 사람이 다시 채용된다는 소문을 들은 직원들이 회사에 재고를 요청했는데,
이전과 같은 일은 없을 것이고 만약 그럴 경우 조치를 취하겠다는 약속하에 다시 회사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돌아온 이후에도 여러 문제를 일으키자 직원들이 약속을 상기시키며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으나,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고 힘들어하던 직원들이 속출하던 중 결국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 군내 성폭력 사건으로 피해자가 안타까운 선택을 하고 이 사건이 국민적인 공분을 사 대통령의 질책과 국방부장관의 공개사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로도 각 군에서 유사한 사건이 계속 재발되어 보도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것일까요?
그건 5년차 직원들이 생각하기에는 부조리하며 즉시 시정되어야 하는 일들이, 회사가 보기에는 '있을 수 있는 일' 즉, 허용범주 안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같은 아랫것들이 이직, 퇴사는 물론 삶의 포기까지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문제들이 그네들에게는 문제로조차 느껴지지 않거나 문제라 할지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개인도 구조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크게는 국가, 역사에 이르기까지 이 원칙에 예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5년차 직원이 오너 아들이라서 구조 자체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지 않은 다음에야,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를 지적했다고 한들 그 문제제기를 수용하고 바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직원의 육아휴직에 대해서 오너가 매우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 회사에서 육아휴직자에 대해 불이익을 주었다고 이의제기한들, 그 문제가 고쳐질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왜냐하면 오너가 그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너가 헝그러정신을 강조하며 매월 각 점포 매니저들을 집합시키고 실적이 높으면 포상도 주지만 실적이 낮으면 구타를 하는 회사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 회사에서 실적을 강압적이고 부정한 방법으로 올리는 것에 5년차 직원이 이의제기를 한다고 해서 그 이의제기가 받아들여질까요?
또는 그렇게 실적지상주의 회사에서 실적 하나만은 끝내주게 올리지만 갑질이 매우 심한 직원을 고발한다고 해서, 과연 그 직원에게 제대로 된 징계나 인사조치가 있을까요?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이라면 자연스레 '그래. 알겠고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생각이 드실 수 있습니다.
첫번째, 이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은 여러분의 선택이란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무도 이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있지 않습니다.
두번째, '완전히 내 마음에 드는 회사', '나의 모든 요구조건을 다 충족시켜주는 회사'란 절대로 없습니다.
내 가게, 내 회사를 직접 차리기 전에는 말입니다.
세번째,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고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무는 법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생각하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선이 무엇인가를 고민해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절대로 얻어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도 고민해야 합니다.
단, 첫번째와 두번째 원칙을 전제로 하면서 생각해야 합니다.
어쩌면 제 글은 추상적이고 불친절한 글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글이 길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조금 더 구체적인 예시를 들얼보고자 합니다.
이미 이해가 충분히 되신 분은 스킵하거나 뒤로가기를 누르시면 됩니다.
한 번 나를 보면 못잡아 먹어서 안달인 중간관리자 상사 A가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사람은 왜 나를 그렇게까지 괴롭히는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아래 가능성 중 적어도 하나는 해당되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A가 권위적, 권력지향적인 사람이고 회사분위기가 경직/상명하복 문화인 경우
이 경우에는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안타깝게도 당신은 본보기로 당첨된 것입니다.
권력적이고 권위를 내세우기 좋아하는 사람이 중간관리자로 있을 때, 직원들을 관리하기 가장 손쉬운 방법이 뭘까요?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누어 관리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귀여워해주고 챙겨주는 그룹, 챙겨주지도 괴롭히지도 않는 그룹, 괴롭히는 그룹
여기서 앞의 둘 까지는 이해하겠는데 괴롭히는 그룹이 왜 필요한지 궁금해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관리법의 대상은 챙겨주는 그룹이 아닌 챙겨주지도 괴롭히지도 않는 둘째그룹에 있습니다.
챙겨주는 그룹은 일종의 당근으로 분발해서 너도 여기 속하도록 노력하라는 메세지를,
괴롭히는 그룹은 일종의 채찍으로 언제고 내 심기를 거스르면 너도 여기에 속해서 괴로워진다는 메세지를 주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세번째 그룹에 속하게 되었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회사의 오너가 바뀌지도 않고 중간관리자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면, 진지하게 이직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두번째, A가 무능하고 실력도 없는데 회사(또는 사업)구조상 팀원들의 성과가 알려지기 쉬운 경우
이 경우는 당신이 유능해서가 문제인 것입니다.
만약 A가 무능하고 실력이 없어도 팀원들의 성과를 다른 부서나 임원들이 알기 어려운 구조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전제처럼 A 본인은 무능하고 실력도 없는데다 팀원들의 성과를 다른 부서나 임원들이 알기 쉬운 구조라면, 본인의 지위는 당신으로 인해 언제든지 위험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당신의 실력을 알아보고 회사 내 다른 곳에서 스카웃을 해가거나 정 뭣하면 이직을 하면 그만이니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경우는 선택의 여지도 넓고 어떻게 보면 행복한 고민일 것 같습니다.
세번째, A는 지금 회사에서 주류에 속하고 내가 몰락한 경쟁파벌에 속하는 경우
여기서 실제로 내가 몰락한 경쟁파벌에 속했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조차 있습니다.
그저 몰락한 경쟁파벌과 어떤 접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유가 될 수 있으니까요.
이 경우 내가 정말로 몰락한 경쟁파벌에 속해있었다면, 해당 파벌의 부활 가능성을 제일 먼저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 파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주도권만 잡으면 언제든지 해당 조직 내에서는 비상할 수 있다는 뜻인데, 만약 부활의 가능성이 없다면 이직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면에 맹세코 경쟁파벌에 속한 적도 없고 해당 파벌의 부활가능성도 없어 보인다면 적극적으로 오해임을 밝히고 회사에 남던가 그런 과정들이 신물난다면 이직도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담으로 직원들에게 평판이 좋은 중간관리자와 평판이 나쁜 중간관리자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회사 내의 지위와 관계가 있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진짜 자신감이 있고, 회사 내 지위가 탄탄한 경우에는 자신에 대한 비판에 덜 예민하고 직원들에 대해서도 포용력을 보일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고 회사내 지위가 불안한 경우(재밌게도 이런 경우 대외적으로는 더욱 쎈 척을 하고 스스로에게 뭐가 있다고 주장합니다만), 직원들에게 화도 잘 내고 갑질을 할 가능성도 큽니다.
5년차를 위한 이야기 3편 어떠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어두운 이야기가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5년차가 되면 슬슬 회사의 안 좋은 면이나 어두운 면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사실이라 마냥 긍정적이고 밝은 얘기만도 쓰기 어렵습니다.
언제나처럼 여러분의 의견과 댓글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