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혈청년 훈 Dec 13. 2021

[직딩라이프]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아"란 말

"너 아니어도 사람 많아"

"너 아니어도 사람 있지만, 이왕이면 네가 좋아."

"세상에 많은 사람이 있지만 너 아니면 안돼"


회사가 직원을 바라보는 본심은 사실 첫 번째가 대다수일 것입니다.

두 번째 정도 - "너 아니어도 사람 있지만, 이왕이면 네가 좋아" - 수준만 되어도 회사에서는 에이스이거나 최소한 라인을 잘 탄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인정받으려면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조너선 아이브나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 정도는 되어야 할 것입니다.


회사에게 99.9%의 직원은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아"란 대상입니다.

일하던 사람이 빠지는건데 당연히 잠깐의 불편함은 있을 수 있지만, 금방 적응하고 문제없이 존속해 나갑니다.

누구 하나 빠졌다고 조직에 문제가 생기는 것 자체가 그 조직의 심각한 문제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아!"라고 대놓고 말하거나 그런 태도를 가감없이 보여도 되는 걸까요?

제 생각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난 여차하면 대체될 사람"이란 생각으로 일하는 직원들이 과연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지, 일에 얼마나 충실할지, 고객의 요구에 과연 민감하게 반응할지를 잠시만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기업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 효율화를 추구해왔습니다.

사내에서 비교적 비핵심적인 업무를 과감히 외부로 아웃소싱하거나 하청을 주거나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고 고객센터를 다른 대륙에 있는 인건비가 더 저렴한 나라들로 옮겼죠.

공동의 가치를 만들어내거나 위대한 무엇인가를 위해 서로 조금 참고 양보하고 상대방의 사정을 봐주는 그런 것은 - 어쩌면 원래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 글로벌공급체계, 가치사슬 안에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닌 사람입니다.

사람인 이상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맞대고 하루에 8시간 넘게 부대끼다보면 감정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우정까지는 아닐지라도 나름의 정이 생기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우애 비슷한 것이 형성될 수도 있고 남녀간이라면 연애가 성립할 수도 있습니다.

비슷하게 주어진 목표를 달성했다고 하더라도, 기획한 신제품이 대박을 치더라도 사실 그 모든 것은 회사의 성과이고 과실임에도 마치 나 또는 우리 부서가 무엇인가를 해낸 것 같은 달성감과 충만감을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기업은 IMF이후 24년간 줄곧 신자유주의에 대해 설파하고 실천해왔습니다.

그 정도가 크고 작고는 있을지언정 신자유주의의 세례는 공공영역에까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회사가 나를 계약관계로 대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 또한 회사를 계약관계로 대할 따름입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 정확히는 알량한 약간의 지위나 직책을 얻은 것으로 마치 자신이 회사라고 착각하는 중간관리자 등 -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아!"란 말을 통해 '그런데도 너를 써주는 나에게 감사해라. 밖은 지옥이야. 네가 여기 아니면 어딜 갈 것 같아? 그러니 똑바로 해야지?' 이런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직원들 역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인 동시에 충분히 합리적인 존재들이므로 그 말을 듣고서 회사가 기대하는 대로 감지덕지하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단지 '그래, 그러면 딱 월급 주는 만큼만 하지 뭐, 다만 대놓고 티는 안 나게. 그리고 나는 재태크나 해야겠다. 승진? 그런거 뭐하러 해? 일만 더 늘어나고 개인생활만 없어지는데. 그렇다고 파격적으로 연봉을 올려줄 것도 아니고. 고객? 네 고객이겠지, 기회만 오면 바로 이직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할 따름입니다.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아"는 장기적으로 보면 최악의 말입니다.

진짜 능력있는 인재들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시키며 평소에도 그들의 능력발휘를 제한합니다.

스타급은 아니더라도 성실하고 충분히 한 사람 몫을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빼앗아갑니다.


회사의 전략은 무능하고 정말로 갈 곳 없는 직원들에게만 위기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위기감을 느낀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 - 파벌을 만들고 일 잘하는 직원들의 성취를 갈취하고 바른말하는 직원을 탄압하는 등 - 을 합니다.


회사는 회사대로, 직원들은 직원대로 각자의 삶이 있고 선택을 하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직딩라이프]회사원에게도 FA제도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