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정 나라고 불릴 수 있을까
조용하고 소극적인 아이는 부모님의 말이라면 철석같이 따랐다. 늦지 않게 자라고 하면 잤고 컴퓨터 게임을 줄이라고 하면 줄였고 책을 보라고 하면 봤고 공부하라고 하면 했다. 아이에게는 불만도 별로 없었다. 부모님 말대로 하는 것이 자식의 숙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 흔한 사춘기조차 없었고 부모님의 착한 아이가 되어 늘 곁에 있었다.
아이는 소년이 되어 사람들에게 우등생이라고 불렸다. 성적이 늘 상위권이었을 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는 엄친아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착실하게 공부한 소년은 정석적인 루트를 따라 진로를 결정했고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타인의 기대에 충족하는 미래를 꿈꿨다.
소년은 청년이 되어 드디어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교에 갔으니 이제 모든 문젯거리들이 해결되리라 믿었다. 지금까지 해야 하는 일만 해왔으니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환경이 청년의 바람을 충족하기에 충분했고 청년은 이제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청년에게는 하고 싶은 것이 특별히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해야 하는 일만 하고 살아오다 보니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러니 시간이 많아도, 모든 환경이 충족해도 마땅히 할 것이 없었다.
청년은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기 위해 애썼다. 대외활동을 지원하고 다양한 동아리에 가입했으며 여러 가지 공모전에 도전했다. 취미를 만드는 것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기타를 배워보기도 하고 중학생 때 잠깐 관심 있었던 프로그래밍을 배우기도 했으며 혼자 영화관에 가거나 노래를 듣고 불렀다. 나는 이런 취미 하나 정도 있으면 참 좋겠다 싶은 것들을 모두 시도했다.
하지만 취미는 억지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기에 지속하고자 하는 의무감도 생기지 않았다. 관심이 멀어지니 투자하는 시간도 점차 줄어들었고 결국 내가 취미로 삼고자 했던 것들이 모두 실패한 취미가 되어버렸다. 자기소개서 취미란에는 늘 그래 왔던 데로 '독서하기'나 '산책하기'가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것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취미인 적이 없었다. 그저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이미지의 취미를 시도해보았던 것뿐이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이곳저곳에 발을 담가 보았지만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었다. 가슴속은 언제나 공허함이 남아 있었다. 인간으로서의 중요한 뭔가가 빠진 것 같았다. 원하는 것이 없다면, 하고 싶은 것이 없다면 영혼 없는 목각 인형과 내가 다른 점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청년은 결국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하기로 결심했다. 남들이 바라는 모습으로 사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없는 그 무엇인가를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꾸미기 시작했다. 부모에게 받은 이름 석자 외에 나 자신을 고유하게 나타낼 수 있는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 부끄러웠다. 그래서 가상의 인물을 만들었다. 내가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이상향의 인물을 만들고 나 자신을 이와 유사하게 꾸며나갔다. 그리고 그 계획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남들이 보았을 때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누군가는 나를 보며 부러운 삶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느끼는 바와는 달랐다. 다른 이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을 꾸미다 보니 주변을 지나치게 의식했다. 흔히 말하는 눈치 보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 분명했다.
커피 칵테일은 포트와인 1.5온스, 브랑디 1/2온스, 오렌지 큐라소 2 dashes, 난황 1개, 설탕 1 티스푼을 셰이커에 넣고 세게 흔듦으로써 만들어진다. 이 칵테일이 유명한 이유는 레시피에서 알 수 있다시피 재료에 커피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커피 칵테일이라는 이름이 붙었음에도 정작 커피가 없다. 마찬가지로 나라는 사람에게는 정작 '나'가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고 믿고 있던 존재가 사실은 허울뿐에 불과한 것이다.
기시미 이치로의 유명 저서 '미움받을 용기'는 나를 되찾기 위해, 행복해지기 위해 타인의 인정욕구를 과감히 버리고 평범해질 용기를 가지라고 말한다. 평범한 자기 자신을 수용하고 지금의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살라는 것이다. 남들보다 더 우수할 필요도 없고 더 특별할 필요도 없다. 나는 나일뿐 남들의 기대를 충족해주는 기계가 아니다.
아들러 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이 용기를 가질 경우 지금, 이 순간부터 행복해질 수 있다. 인생은 선이 아니라 수많은 점들의 연속이다. 오늘의 인생도 나의 인생이며 따라서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의 나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 '지금, 여기'에 충실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아들러 학파가 주장하는 행복의 핵심이다.
나는 '진짜 나'를 찾아보기로 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않고, 남을 위해 나를 소비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는 내가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볼 것이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서 순수한 나 자신을 마주할 것이다.
커피 칵테일에는 커피가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잘 만들어진 커피 칵테일은 진짜 커피와 같은 맛이 난다. 내가 다른 누군가가 될 필요는 없다. 나는 그저 온전히 나일뿐이다. 진짜 나는 나만의 향과 맛을 낼 테니. 그 자체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나라고 불릴 자격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