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잘해?

하나의 칵테일, 서로 다른 레시피

by 서윤

손님이 슬슬 밀려들어오기 시작할 저녁 무렵. 이미 술에 어느 정도 취한 것으로 보이는 여자 손님 둘이 내 앞에 앉아 짐을 풀었다. 나보다 두 살 연상인 이 손님들은 바가 익숙하지 않은지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특유의 친화력 덕분에 금세 적응했다. 추천하는 칵테일을 묻자 나는 그녀들에게 여자가 좋아할 만한, 술보다는 음료에 더 가까운 칵테일 몇 가지를 추천했고 그것은 곧 주문으로 이어졌다.


둘 중 왼편에 앉아있던 손님은 남자친구와의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오늘의 술 모임도 바로 그것 때문에 생긴 듯한데, 나는 일일 상담사로서 그녀의 고민을 들어주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문제라 할지라도 남녀 사이의 연애 문제를 제삼자가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녀에게 걸려온 남자친구의 전화로 인해 그녀는 잠시 자리를 비웠고 내 앞에는 그녀의 친구만이 남아 있었다.


친구가 떠나자 외로이 홀로 남은 그녀는 나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물었다.



밤에 잘해?



내가 당황해할 틈도 없이 그녀의 질문공세는 계속되었다. 몇 명이랑 해봤는지, 어느 체위로 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어디에서 했을 때 가장 짜릿했는지 등.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야기하기에는 예민하고 자극적인 질문들 투성이었다. 사실 이쯤에서 그녀의 목적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나와, 밤을 끝까지 함께하고 싶다는 것.


그녀는 자신의 경험담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테크닉이 얼마나 뛰어난지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체형을 보았을 때 그녀의 말 중 어느 정도까지가 실인지 의심스러웠지만 일단 믿어주기로 했다. 우디 앨런의 영화 '로마 위드 러브'에 나오는 앨런 페이지처럼 이토록 솔직하고, 어쩌면 진취적인 여자를 누군가는 매력적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아닌 것 같다. 그것도 비즈니스적인 관계로 만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섹스 온더 비치 칵테일



칵테일 중에는 유독 야하고 자극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많다. 영화「칵테일」로 유명해진 '섹스 온 더 비치'부터 시작해서 오르가슴, 블로우 잡, 옥보단 등등. 이름이 야할수록 더 맛있다는 속설이 있는 데다 야한 이름일수록 머릿속에 각인되어 잊히지 않으니 바마다 야한 이름의 오리지널 칵테일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다.


야한 이름의 가장 대표적인 칵테일인 섹스 온 더 비치는 보드카 1온스, 피치 시럽 1 dash, 크렌베리 주스 2온스, 오렌지 주스 2온스를 셰이커에 넣고 섞어서 만든다. 1987년 플로리다의 칵테일 경연대회에 출품되어 공식 고전 레시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너무나 노골적인 이름 탓에 입 밖으로 꺼내기가 어려워 주문을 어려워하는 사람도 많지만 또 한편으로는 호기심에 굳이 맛을 보려고 나서는 사람도 자주 볼 수 있다.


남자친구의 전화를 받으러 나갔던 그녀의 친구가 돌아오고 둘이 옆 공간에서 당구를 치는 와중에도 나를 향한 그녀의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다른 손님을 맞으러 가는 도중에 아무 의미 없이 불러 세우고 자신이 하고 있는 당구를 도와달라며 대뜸 당구채를 나에게 들이밀기도 하고 심지어는 칵테일 맛이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며 다시 만들어달라기까지. 나로서는 이보다 고역일 수가 없었다.


손님들 중에는 바텐더와의 스릴 있는 하룻밤을 꿈꾸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바는 1차보다 이미 술을 어느 정도 마신 2, 3차에 오는 경우가 훨씬 많은 데다 인테리어 분위기 자체도 사람들을 이성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원래 술에 취한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지금 눈 앞에 있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자신을 위해 술도 만들어주지 원하면 대화 상대도 되어주지···. 이보다 더 좋은 파트너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바텐더의 입장은 다르다. 아찔하고 스릴 넘치는 밤을 꿈꾸는 누군가는 특별한 이벤트를 바라며 구애할지 모르나 바텐더에게는 생업. 손님과 밤일을 즐기는 바텐더가 있다는 소문이 돌면 그 바에 도대체 누가 찾아올까. 뿐만 아니라 바텐더의 세계는 무척이나 좁기 때문에 잘못된 행실로 직업세계에서 도태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섹스 온더 비치 칵테일 (파인애플 버전)



섹스 온 더 비치는 본래의 복숭아 버전 외에 파인애플 버전이 또 따로 존재한다. 기존의 오렌지 주스 대신에 파인애플 주스가 들어가는 것인데 주스 하나가 바뀌는 것 치고는 같은 이름을 써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다른 맛이 난다.


마찬가지로 같은 바에 있으면서 같은 칵테일을 앞에 두고서도 마주 본 서로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그녀는 내 주변을 서성거리며 쉴 새 없이 말을 걸어왔다.


"저 마감 치려면 아직 멀었어요."

"그때까지 기다릴게. 끝나고 술 한 잔 하자."


설마 진짜 퇴근시간까지 기다리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녀는 꿋꿋이 내가 퇴근하기까지 기다렸고 이만 나갈 테니 밖에서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을 들은 뒤에야 바를 나섰다. 그러나 그녀는 마감칠 때 걸리는 시간까지는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 뒷정리까지 끝나고 나니 어느새 시간은 부쩍 한 시간 가까이 지나있었고 기다림에 지쳤는지 다행히 창문 밖 그녀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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