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를 자주 찾는 3가지 직업

일상에 지친 사람들을 위해

by 서윤

바의 문을 열기가 무섭게 30대의 외국인 손님 하나가 찾아와 카운터 바 앞 한 자리를 꿰찼다. 손님은 평소와 같이 바텐더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사장님을 찾는다. 내가 이곳에서 일을 하기 전부터 자주 드나들던 단골이란다. 조금 늦은 출근을 한 사장님은 바에 미리 와 앉아있는 단골을 보며 반갑게 인사했고 손님 역시나 가볍게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그 둘의 대화는 밤이 늦도록 이어졌다.


흡연을 위해 손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사장님께 다가가 물었다.



"저 손님은 뭐하시는 분이에요?"

3대 직업 중 하나!



3대 직업?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머릿속에 판사, 검사, 의사와 같은 사짜 직업을 떠올렸다. 하지만 외견으로 보나 하는 말과 행동을 보나 손님은 그런 딱딱한 직업군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고 궁금함을 참지 못한 나는 끝내 다시 한번 물을 수밖에 없었다.



3대 직업이라는 게 뭔데요?



사장님은 바를 자주 찾는 3가지 직업이 있다고 말했다. 바를 오면 오는 거지 무슨 자주 찾는 직업 같은 것도 있나 싶었지만 일을 하다 보니 정말 유독 자주 보이는 직업군들이 있었다. 지금부터는 바로 그 3대 직업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선생님


초중고 선생님보다는 일반 학원 선생님에 더 가깝다. 그중에서도 특히 외국에서 낯선 이국땅에 온 원어민 선생님들이 자주 보인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아는 지인이 없어도 바는 항상 외롭고 쓸쓸한 상대를 친근하게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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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단골손님은 근방에 있는 토익 학원의 영어 선생님이었다. 3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그는 한국에서 일해보고자하는 마음에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국행 비행기 편을 끊었다.


바라던 한국에서의 삶을 경험하며 그가 얻은 것은 많았다. 하지만 끝까지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외로움이다. 물론 주변에도 착하고 좋은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지닌 본연의 외로움은 낯선 타지에서 쉽게 해소될 수 없다. 먹어도 배고프고 자도 피곤한 것이 타지 생활 아니겠는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세상에는 영어 외에 또 다른 만국 공용어가 있다. 알콜. 어느 나라를 가든, 어느 시기에 가든 술은 존재한다. 원어민 선생님은 익숙한 웨스턴 바로 발걸음을 옮겼고 단골로서의 바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간호사


대학생들의 성지 신촌에는 거대한 대학병원, 세브란스 병원이 위치해 있다. 워낙 전국적으로 명성 있는 병원이기도 하고 병원 취직을 원하는 취준생들에게는 항상 1, 2위를 다툴 정도로 인기 있는 병원이기도 하다 보니 이 주변에는 항상 간호사와 간호사를 준비하는 학생들로 붐빈다. 어렵게 시작한 서울생활. 내가 신촌에서 처음 자취방을 알아보러 돌아다녔을 때 만났던 다른 구집자(?)도 간호사 무리였을 정도이니 이 주변에 얼마나 간호사들이 많은 지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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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가 힘든 직업이라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심한지는 그녀들의 실제 경험담을 듣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직업 특성상의 정신적·육체적 노동 강도가 높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태움'과 같은 군대식 부조리도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그놈의 '태움'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 간호사의 고충이 얼마나 심한지는 대화 몇 번 나눠보면 쉽게 공감하게 된다.


그러니. 힘든 하루를 마친 그녀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전 바를 찾는다. 나의 칵테일이 그녀들의 피로를 조금이라도 풀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바텐더


삶에 지쳐 보이는 여자 손님 하나가 혼자 바에 들어오더니 바텐더를 불러 능숙하게 주문한다. 헤어스타일이나 눈빛, 말투, 행동들을 보고 있으니 어딘가 익숙하고 친근한 느낌이 든다. 칵테일 조주를 마치고 그녀 앞에 서비스한 후 살며시 묻는다.



저희 쪽 맞죠?



그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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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직업은 뭐니 뭐니 해도 바로 바텐더다. 본인이 일하는 바에서 마시면 될 것을 왜 굳이 다른 바까지 찾아가서 돈을 주고 칵테일을 마실까 하는 합리적인 의구심이 들 것이다. 매일매일 손님맞이를 위해 나만의 가면을 꺼내 쓰고 밤을 새워 칵테일을 만들고 취객이 지나간 자리를 정리하다 보면 피로가 쌓이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면 바텐더들조차 결국 찾아 가게 되는 것이다. 평소 눈여겨보았던 주변의 괜찮은 바를.


바의 세계가 좁은 이유는 여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바에 놀러 가 통성명을 하다 보면 어느새 여러 바텐더들과 친구가 되어있다. 이 바텐더가 저 바에 놀러 가고 저 바텐더가 저기 저 바에 놀러 가고 하다 보면 아는 사람이 자연스레 많아진다. 서로 팔아준다는 느낌보다는 바텐더들이 피로를 푸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Blue-Monday-600x386.jpg 블루 먼데이 칵테일


혹시 힘들고 고달픈 일상에서 매주 찾아오는 월요병 때문에 고생하는가. 보드카 1과 1/2온스, 블루 큐라소 1/2온스, 트리플 섹 1/2온스를 얼음과 함께 셰이커에 넣고 섞어보라. 맑은 푸른색과 오렌지의 상큼한 향이 우울한 월요일을 달래주는 블루 먼데이 칵테일이 일상에 지친 여러분들을 조금이나마 달래줄지도 모른다. 오늘도 고생한 우리 자신들에게 스스로 수고했다고 위로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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