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학개론

선물이란 물건이 아닌, 상대를 생각하는 것

by 서윤

언제부턴가 편의점에서 무알콜 칵테일을 팔기 시작했다. 칵테일이라면 집에 있는 재료들 만으로도 얼마든지 만들어 마실 수 있기에 별다른 관심 없이 진열대에서 눈을 돌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가 한쪽 손에 그 편의점 칵테일을 들고 있는 게 아닌가. 친구는 내가 바에서 일한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음료를 건네며 물었다.



이 칵테일 알고 있어?





진홍색 음료 상단에는 「샤인 온 더 비치」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샤인 온 더 비치? 들어본 적도, 마셔본 적도 없는 칵테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른다고 하면 체면이 말이 아닐 것 같아 음료 뒷면의 구성 성분을 확인해보았다. 복숭아, 오렌지, 크렌베리 과즙 함유. 옳거니. 보드카가 없다는 것을 빼면 「섹스 온 더 비치」 칵테일과 레시피가 같았다. 알콜을 빼고 새로운 이름의 칵테일을 만든 것으로 보였다.


친구에게 위 내용을 설명하고 나서 나는 잠시 동안 낯설지 않은 익숙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이 제품 말고 어떤 것이 있는지를 물었고 친구는 파란색 제품이 하나 더 있다고 대답했다. 이름은 「블루 하와이」. 그 이름을 듣고 나서야 나는 지난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평소 나는 매우 무뚝뚝한 사람이다. 경기도 출신이기는 하나 사투리를 쓰지 못한다는 점만 빼면 경상도 남자라고 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투르고 대부분의 일에 무신경하다. 나의 방문을 누구도 두드려주지 않는다면 나는 오래도록 방 안에 혼자 남겨져 있을 사람이다. 그것도 별다른 감정 변화 없이.


그러니 연애 사업도 엉망일 수밖에 없었다. 표현도 잘하지 못하고 관심도 드러낼 줄을 모른다. 사랑하는 방법은 더더욱 모른다. 기념일 챙기는 것에 무신경하고 그것에 서운해하는 상대방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나의 생일이나 기념일을 굳이 챙겨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데 실제 나의 특별한 날이 평소와 같은 오늘로 흘러간다 해도 나는 아무 서운한 감정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면 특히나 나는 스스로 내가 얼마나 무뚝뚝한 사람인지를 깨닫는다. 집에서는 물론이고 단체 메신저 방에서조차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서로 활발하게 올려 보내는 메신저 글들을 보면 그 사이에서 내가 정말 같은 유전자를 공유한 가족이 맞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런 나에게 있어서 '선물'은 늘 고민의 대상이었다. 나는 선물을 받지 않아도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한 날에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했고 그 기대에 충족하지 못했을 때 크게 서운한 감정을 내비쳤다. 선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난 항상 이 선물의 늪에서 허우적대야만 했다.


문화심리학자인 김정운 씨는 그의 저서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를 통해 선물에 관한 남녀 사이의 생각 차이를 이야기했다. 남자는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에 대해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특별히 선물을 주기보다는 평소에 잘해주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나는 안 좋은 의미로 남자 중에 남자다.


그러나 여자의 생각은 다르다. 여자는 선물뿐만 아니라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 그 자체에도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다. 여자에게 정말 꽃이 좋아서 꽃 선물을 받고 싶은 것이냐고 물어보면 대다수의 여자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남자가 여자를 위해 꽃집에 찾아가 상대의 마음에 들만한 꽃을 고르고 사람들 많은 장소에서 여자를 기다리는 그 행위 하나하나에 감동하는 것이다. 하나의 행위에도 남녀의 생각이 이렇게나 다르니 과연 서로를 이해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선물을 가지는 의미에 대하여 내 가슴에 진정으로 와 닿게 된 것은 뜻밖에도 바에서 본 한 손님 덕분이었다. 그 날의 바는 칵테일을 마시고자 하는 수많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나는 바쁜 상황에서 손님을 위한 칵테일을 주구장창 만들어 내고 있으면서도 너무 정신이 없어 누가 무엇을 주문했는지도 헷갈릴 지경에 빠져있었다. 중국집 배달원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처럼 나는 칵테일 하나가 완성될 때마다 "블랙 러시안 시키신 분~!!"을 외쳐대야만 했다.


주문이 밀려드는 텀이 끝나고 다음 주문이 있기 전까지의 짧은 휴식시간이 생기자 나는 카운터 바 위에 상체를 기대고 짧은 한숨을 쉬었다. 한 시름 놓았다는 안도감과 앞으로의 남은 시간들에 대한 걱정이 섞인 한숨이었다. 그렇게 지친 표정으로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는 나에게 남자 손님 하나가 다가와 음료 한 병을 건넸다. 블루 하와이. 처음 보는 음료수였다.



오늘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요. 이것도 같은 칵테일인데 힘내시라고 하나 사 왔어요.



너무도 뜻밖에 선물이었다. 많은 손님들로부터 대량 주문을 받는다는 것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바텐더라면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나를 보고 손님이 격려차원의 선물을 주다니. 잘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선물을 받는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인지 몰랐다.


나는 손님에게 연신 고맙다고 답하며 바텐더가 줄 수 있는 선물을 주었다. 「블루 사파이어」 칵테일. 파란색 칵테일을 선물 받았으니 마찬가지로 파란색 칵테일을 만들어 준 것이다. 선물을 서로 주고받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나와 손님과의 거리가 무척 가까워진 것 같이 느껴졌다.



블루 사파이어 칵테일



나중에 알고 보니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블루 하와이는 일반적인 블루 하와이에서 럼을 뺀 것이었다. 하지만 블루 하와이면 어떻고 블루 사파이어면 어떠랴. 선물의 가치는 선물 자체의 값어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선물이 지니고 있는 참된 의미이자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 이번 기회에 주변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선물을 준비해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히 상대의 행복한 미소와 함께 부쩍 가까워진 서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커피 칵테일에는 커피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