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술 아래 영원한 이성친구는 없다

술 마시면 이성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비어 고글' 효과

by 서윤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후 계속되는 패전에 의해 피난길에 오른 선조는 잠시 휴식을 취하는 와중에 지역 백성이 올려 바친 생선을 먹는다. 듣도 보도 못한 생선의 기막힌 맛은 단번에 선조의 관심을 끌었다. 그가 놀란 표정으로 이 생선의 이름을 묻자 백성은 '묵'이라 답한다. 선조는 힘든 피란 길에 작은 행복을 가져다준 이 생선에게 친히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머릿속 깊이 은어의 인상적인 그 맛을 간직한다.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다시 안정을 되찾을 무렵. 선조는 은어의 그 놀라운 맛을 잊지 못해 상궁으로 하여금 같은 요리를 다시 해줄 것을 주문한다. 드디어 다시 맛볼 수 있게 된 은어. 젓가락 끝은 호기롭게 생선을 집어 임금의 입 안으로 요리를 밀어 넣는다. 무척이나 기대했을 그였다. 하지만 이내 선조는 은어의 맛에 크게 실망하고야 만다. 상황이 열악한 피난길에서 힘겹게 먹을 수 있었던 은어의 맛과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상황에서 특별히 뛰어날 것 없는 반찬 하나의 맛이 같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선조는 그 생선에게 내린 '은어'라는 이름을 빼앗고 도로 묵이라고 부를 것을 지시한다. '도루묵'이라는 생선의 이름은 바로 이러한 설화를 통해 생겨났다.


글로써 보니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우리 삶에 있어서도 이러한 경험이 결코 적지 않다. 특히 일상에 '술'이 존재하는 한 누구나 선조보다도 더한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예부터 '밤'과 '술' 앞에서 남녀 사이에 친구는 없다고 했다. 평소에 별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상대조차 알코올과 분위기에 취하면 훨씬 매력적으로 보이게 되는 법이다. 그리고 다음 날 냉철한 이성 앞에 서로는 다시 '도루묵'이 되어 버린다.



pixabay_com_20160425_122349.jpg



영국 브리스톨대 연구진은 술을 마시면 이성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비어 고글'효과를 연구하기 위해 남녀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피실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술을 마시고 나머지 다른 한 그룹은 청량음료를 마시게 한 뒤 30분 후 20명의 남성과 20명의 여성들에 대한 성적 매력을 평가하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술을 마신 그룹의 평가 점수가 청량음료를 마신 그룹의 평가보다 10% 정도 더 높게 나타난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하루가 지난 뒤 다시 실시한 평가에서도 술을 마신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상대 이성을 더 매력적으로 평가했다. 남녀에 관계없이 술을 한두 잔 마시고 나면 상대 이성의 얼굴이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술에 의지한 취중고백으로 뭇 청년들의 흑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술에 취해 심신미약자가 되었다는 이유로 형법에서는 이들의 죄를 감경하여 주는데 돌이킬 수 없는 감정의 죄를 저지른 이 불쌍한 남녀들을 도대체 어떻게 구제해주어야 할까?



500xNxFuzzy_Navel_0.jpg.pagespeed.ic.vRTiD3UsE9.jpg 칵테일 퍼지 네이블



칵테일 「퍼지 네이블」은 얼음을 넣은 올드패션드 글라스에 피치 리큐어 1.5oz를 넣고 나머지를 오렌지 주스로 채워 저어줌으로써 만들어진다. 퍼지(Fuzzy)는 '흐릿하다'라는 뜻으로, 술에 취해서 정신이 몽롱해진 상태를 의미한다. 복숭아와 오렌지의 달콤한 조합에 빠져 이성이 흐릿해지고 나면 밝은 달빛 아래 남녀 둘은 서로의 이성적 매력에 강하게 이끌린다.


이렇게 달콤한 퍼지 네이블에 레몬주스와 그레나딘 시럽을 넣어 섞으면 주홍빛의 복숭아꽃, '피치 블로썸'이 된다. 머리가 몽롱해진 상태에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복숭아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없었던 마음도 갑자기 생겨나기 마련이다. 기분 좋게 입가에 적신 피치 블로썸이 끝내 사랑을 의미하는 오렌지 꽃이 되었을 때는 갑자기 흔들린 감정이 한순간의 착각이 아닌 영원히 남을 콩깍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술에 취해 이성이 흐릿해진 상태로 저지른 취중고백이 이불이 남아나질 않을 끔찍한 기억이 될지 취중진담을 계기로 한 새로운 관계의 시발점이 될지는 그 이후의 행동으로 결정된다. 하지만 기왕이면 술의 마법이 영영 풀리지 않아 평생 잊지 못할 인연이 되기를 바란다. 서로가 서로에게 말짱'도루묵'이 아닌 '은어'로서 소중하게 간직될 수 있도록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전하기 어려운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