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써지지 않아 한번 훔쳐보았다

하지만 흉내지빠귀라고해서 맛까지 흉내 낼 수는 없다

by 서윤

글이 잘 써지지 않아 노트북을 덮었다. 나에게는 자주 있는 일이다. 대학교 과제로 리포트를 작성할 때도, 방학 목표인 단편 소설 쓰기를 할 때도, 공모전을 위한 계획서를 작성할 때도 글은 잘 써지지 않았다. 여기저기 장소를 바꿔보아도 결과는 매한가지. 주변의 공간, 주변의 사람, 주변의 분위기만 바뀔 뿐 글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쉽게 써내려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최근에 매거진 연재를 결심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읽었다. 부드러운 문체, 세련된 글귀, 아름다운 언어를 눈에 익히고 배우고 싶어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열심히 탐독했다. 역시나 명성이 드높은 작가는 달랐다. 누구에게나 공감 가는 이야기들을 편하게 풀어나가는 그들의 솜씨는 분명히 독자들로 하여금 높은 인기를 차지할만한 자격이 있었다. 훌륭한 글들을 읽을수록 나는 큰 자극을 받았고 바로 서투른 솜씨로 유사한 분위기의 글들을 써보기 시작했다. 노트에는 점차 열심히 휘갈긴 필작들이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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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를 크게 자극한 책이 두 권 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바로 김웅 작가님의 「검사 내전」이다. 냉소적인 듯하면서도 위트 있는 문체가 나를 글 속에 빠져들게 했다. 어렵고 딱딱한 내용일 것이라는 직업세계에 대한 선입견을 당당히 깨부순 책이었다. 짧은 문장, 하지만 모자람이 없는 전달력과 편안한 글의 흐름이 책을 집어삼키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정말 말 그대로 읽기 편한 쉽고 좋은 글이었다.


이에 자극받은 나는 비슷한 류의 글을 써보기 시작했다. 주제와 콘셉트를 잡고 10가지 이상의 꼭지를 땄다. 목표는 딱 두 가지였다. 문장은 짧게, 냉소적이지만 딱딱하지는 않게. 시작은 수월했고 하루 만에 4편의 글을 쓸 수 있었다.


이런 나를 또다시 자극한 두 번째 책은 이병률 시인의 「내 옆에 있는 사람」. 읽어본 여행 산문집이 여럿 있지만 이 책은 다른 산문집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아무래도 작가가 시인이라서 그럴까? 매우 서정적인 이야기들이 마음속에 있는 감성을 강하게 자극했다. 마치 장문으로 된 시를 읽는 기분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글이 쓰고 싶어 졌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감정을 자극하고 이를 끄집어내어 글의 분위기에 취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나는 이번에는 감동에 관한 주제를 잡고 여러 편의 글을 써보기 시작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노력하니 어느 정도는 비슷해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검사 내전을 읽고 자극받아 쓴 글들이 다시 눈에 보였다. 냉소적이고 간결한 문체. 지금 쓰고 있는 글과는 전혀 분위기가 딴판이었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그 글들이 재미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보니 나의 글은 짧으면서 호흡이 계속 끊겼고 냉소적이면서 딱딱했다. 이러한 어설픈 글솜씨는 작가님의 책과 비교하니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그러고 나서 지금 쓰고 있는 글을 보았다. 역시 나는 시인은 될 수 없는 그릇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화려해 보이려 애썼으나 군더더기가 많았고 감성적인 듯하면서도 지루했다. 결국 나는 이병률 시인을 흉내 내는 것도 포기했다.




이 가엾은 모작꾼을 어떻게 해야 할까




칵테일 모킹버드



데낄라 1과 1/3온스, 페퍼민트 리큐어(그린) 2/3온스, 라임주스 2/3온스를 셰이커에 얼음과 같은 넣고 셰이크 한다. 미리 칠링 해둔 칵테일글라스를 꺼내 방금 세이크 한 음료를 정성스레 담아주면 흉내지빠귀, 모킹버드 완성. 다른 새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흉내지빠귀는 멕시코 전역에 걸쳐 서식하기 때문에 멕시코 산 데낄라가 들어가는 이 칵테일에 위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


아무리 다른 새의 울음소리를 잘 흉내 낸다 할지라도 본인이 그 새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아무리 다른 작가들의 문체를 흉내 낸다 할지라도 그들과 같은 작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의 흉내내기를 포기하고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쓰기로 했다. 남들보다 글솜씨는 떨어져도 묵묵히 쓰다 보면 부족한 글도 개성으로 봐주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백날 흉내지빠귀가 되느니 스스로 미운 오리가 되는 길을 택하겠다. 그렇게 결심하고 나니 내 글에도 나만의 문체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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