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언어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언어의 장벽조차 쉽게 무너뜨리는 그 무언가

by 서윤

귀여운 외모의 일본인 손님 두 명이 테라스 테이블에 앉았다. 핸드백을 테이블 아래 가방걸이에 건 뒤 그녀들의 두 눈은 천천히 주변을 서성거렸다. 바텐더를 찾는 것이리라. 그녀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즉각 반응한 나는 테이블 쪽으로 다가가 주문을 받았다. 아니, 받으려 했다.


"주문하시겠어요?"

"(끄덕)"

"···어떤 걸로 만들어드릴까요?"


주문 내용을 묻는 나의 질문에 그녀들은 어색한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녀들은 한국말을 잘할 줄 몰랐고 나도 일본어를 할 줄 몰랐다.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쓰면 참 좋았겠지만··· 본인은 영어를 굉장히 싫어하기에 그런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결국 그녀들과 나는 간간히 알아듣는 한국말과 세계 어디에서나 사용하는 몸의 언어로 대화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찌어찌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한 내용에 따르면 그녀들은 한국에 여행 온 일본 대학생으로, 바에 자주 오는 편이 아니기에 바텐더가 간단히 메뉴를 정해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한국에 여행 온 일본인 여학생들에게 어떤 칵테일을 대접하는 것이 한국에 대한 더 좋은 인상을 남겨줄 수 있을까. 한국 대표로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나는 그녀들에게 TGI를 개하기로 결심했다.


TGI는 부산에 있는 TGI 프라이데이 바에서 만들어진 칵테일 「준 벅」 보드카를 추가하여 만든 칵테일이다. 6월에 벌레라는 이름에 걸맞게 시원한 이미지의 연두색 칵테일에 알콜까지 가미했으니 과연 불타는 금요일(Thank God It's Friday!)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부족함이 없다. 멜론, 코코넛, 바나나, 파인애플 등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과일들만 모여있어 남녀노소 구분 없이 인기가 많다.



칵테일 준 벅



그녀들에게 칵테일을 전해준 이후 사실 나의 할 일은 끝이 났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그녀들에게 계속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낯선 나라에서의 여행을 즐기고 있는 비슷한 또래에 대한 동질감 때문이라기 보단 귀여운 그녀들에게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어서였다고 밖에 대답할 수 없겠다. 말이라도 한 번 더 걸어보고 싶지만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섣불리 다가갈 수도 없어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던 터였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들은 테라스 밖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칵테일과 함께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즐거운 것은 분명해 보였다. 하하호호 행복하게 미소 지으며 이야기하기를 몇 분. 그런 그녀들에게 한 남자가 다가섰다.



일본에서 왔어?



사장님의 가벼운 인사에 그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텐더로서의 삶만 해도 수십 년. 그에게 있어서 언어의 장벽 따위는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능숙한 화제 던지기와 계속해서 이어지는 흥미로운 대화는 그녀들을 자신에게 쉽게 몰입하게 만들었다. 손님은 점차 경계를 풀어 사장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역시나 대화에 있어서 말을 먼저 건네는 용기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또 하나의 만국 공용어, 외모다. 사장님의 외모가 이성의 관심을 단숨에 끌 수 있을 만큼 잘생겼다는 사실은 (기분 나쁘지만)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잘생겼어요!"

"나 잘생겼어?"


원래 외국어를 배울 때 가장 먼저 공부하는 것은 인사말과 욕, 그리고 칭찬이라고 했다. 외국어에 재능이 없는 나조차 예쁘다가 중국어로 피아오량이라는 것은 알고 일본어로 카와이 정도는 말할 줄 안다. 그러니 그녀도 잘생긴 사람에게 한국말로 칭찬쯤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기분 좋게 만드는 외모 칭찬을 시작으로 셋의 대화는 물꼬를 틀었고 신촌 거리의 조명은 어두워지는 하늘과 반대로 점점 진해져 갔다.





여느 직업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바텐더에게 있어서도 외모는 꽤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요소라기 보단 능력, 재능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지만. 누구나 호감을 느낄 정도의 잘생긴 외모는 삶뿐만 아니라 업에서도 놀라운 기능을 발휘한다. 억울하긴 하나 그것도 능력인 것을 어쩌겠나. 남들보다 키가 크고 몸매가 좋고 두뇌가 비상한 것이 선천적인 재능인 것만큼 잘생긴 것도 수많은 재능들 중 하나일 뿐이다. 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수밖에.


고구마 소주 1과 1/3온스, 오렌지 리큐어(화이트) 2/3온스, 레몬주스 2/3온스를 셰이크 하여 소금을 묻힌 스노 스타일 칵테일글라스에 따르면 '아름다운 아가씨', 「사쓰마 고마치」 완성. 강력한 일본산 고구마 소주의 맛과 오렌지 리큐어의 과즙 향이 만나니 이보다 더 맵시 있는 맛은 없을 것이다.


잘생긴 외모에 빠진 아름다운 아가씨여. 잘생긴 남자에게 빠진 당신의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고 싶으나 나 또한 그대들의 외모에 눈길이 가게 된 것은 부정할 수 없으니 그저 재능이 부족한 탓으로 신세한탄을 그만두려 한다. 못생긴 사람도 대부분 잘생기고 예쁜 사람을 좋아한다. 그 사실에 대해 인정할 수밖에 없기에 나는 씁쓸히 그대들을 지켜만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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