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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D Day A Day

9번째

분명히 무언가 잘못되었다

by 서윤

어둡고 황량한 교실.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책걸상들 그 한가운데 내가 앉아있다. 교실 안은 시험을 기다리고 있는 수험생들로 가득 차 있지만 정숙한 분위기 속에 숨소리조차도 들리지 않는 데다 경직된 표정 또한 모두가 일관적이다. 역시나 마네킹처럼 딱딱한 감독관이 왼쪽 겨드랑이에 시험지 서류 봉투를 낀 채 앞 문을 열고 들어온다.



시험지와 OMR카드를 나눠주자 가만히 앉아 있던 수험생들이 마치 차가운 목각 인형들과 같이 기계적으로 신상정보를 채워 넣는다. 펜과 시험지가 서로 맞닿는 소리가 무서울 정도로 크게 들려왔다. 멍하니 지켜만 보고 있던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컴퓨터용 사인펜을 든다. 『ㅅ·ㅓ·ㅇ·ㅠ·ㄴ』지겹게 적어 온 내 이름 석 자. 오늘은 평소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준비는 충분했다. 밤새 연등실의 불을 밝히며 공부를 하기도 했고 남들이 놀고 있을 때 조용히 교실에 돌아가 책을 펴기도 했으며 모의고사에서 원하는 성적을 얻어 쾌재를 부르기도 했다. 더 이상은 단 하루도 그렇게 살 수 없을 정도로 후회 없는 수험생활을 보냈다. 이제부터는 지금껏 쌓아온 노력들을 결과로써 보여줄 때이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시험을 알리는 종소리가 크게 울린다. 시험지를 넘기는 소리가 내 심장을 찢을 듯이 날카롭다. 후-하-. 숨이 막히는 것 같아 마음을 가다듬고 크게 심호흡을 해본다. 조금은 괜찮아진 기분. 수능용 샤프를 들고 천천히 시험지를 넘긴다.



어딘가 이상하다. 분명히 무언가 잘못되었다. 펼친 시험지엔 내가 배운 적이 없는 어려운 문제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갑자기 심장 박동 소리가 커지고 눈 앞이 새하얘진다. 샤프를 든 내 손이 덜덜 떨려왔다. 일단 풀어보자. 샤프 끝을 시험지 위에 조심스레 올린다. 탁! 샤프심이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빠르게 샤프 뒷면을 눌러 샤프심을 빼낸다. 타-닥! 또 부러졌다. 점점 더 초조해진다. 이번에는 샤프심을 아주 조그만 꺼내 시험지 위에 샤프를 얹는다. 지-익! 시험지가 샤프에 끼어 찢어졌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 얼굴은 점차 상기되고 두 눈동자 주위는 붉게 달아오른다.



불안하고 긴장된 나의 모습에 계속 지켜보던 감독관이 천천히 다가온다. 다른 수험생들의 차가운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오히려 처음 시험지를 펼쳐 쓸 때보다 더 긴장된다. 천천히 떨어지는 감독관의 입술. 나와 눈을 마주치며 상태가 괜찮은지를 묻는다. 괜찮다고 대답해야 한다. 나는 힘겹게 입을 뗀다.



"괜찮······."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계속 목을 조여 보지만 소용이 없다. 반복되는 소리 없는 외침에 목 뒤에 힘줄이 두껍게 돋는다. 초조한 분위기 속에서 오랫동안 흐르는 정적. 지켜보고 있던 감독관의 표정이 이상하다. 감독관은 손을 뻗어 나의 시험지를 세게 집는다. 나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는 찢어진 시험지. 빼앗기면 안 된다. 나는 시험지를 강하게 붙잡고 다시 한번 목에 힘껏 힘을 준다. 괜ㅊ, 괜찮···



괜찮아요-!!!!!



몸을 일으키자 침대 위에 앉아있다.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 벌써 9번째 같은 꿈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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