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등생으로만 살아왔던 내가 한순간에 열등생이 되었다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 이름만 들어도 도시와 멀리 떨어진 시골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이곳은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전국모집 기숙사 자율형 고등학교다. 중학교 3년 동안의 철저한 내신 준비와 대외활동을 통해서 나는 공부를 하는데 모든 조건과 환경이 최적화되어있는 이 고등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교정에 들어섰다.
나름 수도권에 살고 있는 나이기에 충청도에 있는 이 시골학교 학생들의 수준은 도시에 비해 비교적 떨어질 것 같다는 착각을 잠시 했었다. 그러나 그런 오만한 생각은 얼마 되지 않아 산산이 박살이 나버린다. 입학생 모두가 응시한 반 배치고사에서 충격적인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받은 반배치고사 성적표 맨 아래에는 각 과목별 점수와 함께 이렇게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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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등생이었던 내가 한순간에 열등생이 되어버린 것이다.
반배치고사의 충격은 매우 오래갔다. 내 옆자리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짝, 맨날 축구를 하러 나가는 친구, 쉬는 시간만 되면 잠에 곯아떨어지는 녀석. 주변에 있는 모두가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것으로 느껴지고 그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마치 나를 무시하는 것만 같았다. 수업은 내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어려웠고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 나와달리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선생님께 질문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친구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같은 반 친구들의 동그라미 가득한 문제집들을 보며 나는 쉴 새 없이 비 내리는 나의 부끄러운 문제집을 항상 숨겨야만 했다. 지금까지 쉬엄쉬엄 공부해온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과 처음으로 떨어져 혼자 생활하는 것에 적응하기를 어려워할 때 나는 친구들과의 급격한 공부 수준 격차를 어떻게든 메워보려고 노력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했다. 특히 수학 문제의 경우 풀이 해설을 읽어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아 쉴 새 없이 친구들에게 물어보러 다녀야 했다. 전화할 수 있는 기회는 꽤 많았지만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으면 괜히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 일부러 하지 않았다. 그저 문제풀이만 계속할 뿐이었다.
입학한 지 1주일 정도가 지나자 담임선생님께서 학생 하나하나를 직접 면담하여 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상담이라고 하면 보통 잘하고 있다는 칭찬과 함께 진심 어린 격려를 해주시거나 같은 반 내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친구를 도와주라고 하는 것이 전부였다. 오늘의 상담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 담임선생님의 호출에 별생각 없이 교무실에 들어간 나였지만 그곳에서 나는 17살의 학생이 혼자서 견디기 어려운 말을 듣게 된다.
"윤아, 혹시 전학 갈 생각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빨리 해라."
생각지 못한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내 눈은 동그래졌다.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닐까? 너무나 진지하고 심각한 담임선생님의 표정 때문에 내 몸은 더욱 위축되었다.
"아니요,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몸이 사람들 앞에서 완전히 발가벗겨진 것처럼 수치스러운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공부 잘하는 모범생, 우등생으로만 살아왔던 내가 한순간에 열등생이 되었고 이제는 담임선생님 눈에 문제아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담임선생님에게 나는 이곳에 남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이미 목소리에서부터 그런 자신감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고된 상담이 끝나고 교실에 돌아온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기만 했다. 힘들게 들어온 고등학교. 이곳에만 오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풀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나보고 전학을 가라니. 담임선생님이 지금까지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셨을 것이라 생각하니 너무나 부끄러웠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이곳에 남아 있는 게 맞는 걸까? 그냥 담임선생님 말씀대로 더 늦기 전에 가까운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내신관리라도 철저히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 아닐까? 마음이 극도로 불안해졌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나는 기숙사 앞 공중전화 박스 안에 들어가 수화기를 들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의 고등학교 합격을 진심으로 너무나 기뻐하시던 당신들. 한동안 보지 못한 부모님의 얼굴이 오늘따라 너무나 보고 싶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집 전화번호를 눌렀다. 수화기 너머로 통화 연결음이 들려왔다.
따르릉- 따르릉-틱!
나는 전화를 걸다 말고 다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심란한 현재의 마음 상태로 부모님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다간 괜히 부모님까지 힘들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나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나와 기숙사로 돌아갔다. 아무런 걱정 없이 웃고 떠들고 있는 기숙사 같은 호실원들을 보니 더 외롭고 쓸쓸해졌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끊이지 않는 고민은 밤새 계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