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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D Day A Day

처절한 생존기

나는 결심했다

by 서윤

담임선생님과의 첫 상담 이후로 나는 선생님들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했다. 마치 모두가 내 성적을 알고 내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실 것 같아서였다. 지난밤 내내 고민한 끝에 나는 부모님의 행복한 미소를 지켜드리기 위해 학교에 끝까지 남기로 마음먹었지만 아직까지도 '어떻게'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지에 대한 방법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친구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같은 나이임에도 대체 저 친구들은 어떻게 저렇게 공부를 잘하는 것인지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 저 친구들은 중학생일 때 나보다 더 혹독한 삶을 살았겠지. 내가 쟤네보다 공부를 못하는 이유는 그만큼 공부를 하지 않아서일 거야. 위와 같은 생각에 다다른 나는 절대적인 공부 시간의 차이에 주목하며 무조건 다른 아이들보다 많은 공부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1교시 수업 전 아침자습시간, 각 수업 후 쉬는 시간, 점심·저녁 시간 등 나는 남들이 휴식하는 시간에 무조건 문제집을 펼쳤다. 공부시간 확보에 대한 강박관념이 너무나 강해서 심지어는 특강시간이나 수업시간 중 조금 루즈해지는 때가 있다 싶으면 몰래 책을 꺼내 문제를 풀기도 했다. 나는 결심했다. 이곳에서 공부로는 1등을 하지 못할지언정 가장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 가장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는 1등을 하자고.



나는 무작정 주변 친구들을 붙잡고 공부법을 묻기 시작했다. 가장 자신 없는 과목인 수학부터 비교적 중요성이 덜한 탐구과목까지. 최대한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공부법을 필터링 없이 흡수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친구들마다 가지고 있는 공부법은 제각각 모두 달랐고 그중에 나에게 맞는 공부법이 무엇인지 판단할 능력은 나에게 없었다. 나는 수첩에 친구들이 알려준 공부법들을 과목마다 적어 정리해놓고 하나하나 테스트해보기 시작했다.



공부법을 설명해보는 것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오답노트를 만들기도 하고 스스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풀어보기도 하는 등 할 수 있는 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주위 친구들이 여러 유명 문제집들을 푸는 동안 나는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해 초조해졌다. 빨리 끝내고 나도 저렇게 문제풀이를 하고 싶다. 남들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더더욱 빠르게 문제를 풀고 오답노트를 만들었다. 그렇게 찾아온 중간고사. 나는 생애 가장 낮은 수학 점수를 받아보게 된다.



수학 점수 : 37점 / 100점



모든 공부법을 동원해보았음에도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자 마음이 무척이나 초조해졌다. 내 공부법이 잘못된 것일까? 가장 친한 친구가 100점이 나온 시험이기에 불안감은 더더욱 커졌다. 혹시나 어려운 시험은 아니었는지 친구들에게 물어보았으나 평균 70점 대의 매우 쉬운 시험이었다. 반 석차 뒤에서 2등. 슬프지만 그것이 객관적인 나의 성적이었다.


나는 공부방법을 완전히 변경했다. 일단 어떻게든 성적을 올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나는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사용하시는 부교재 문제집을 꺼내 문제 문항과 해설지를 폈다. 그리고 문항에 답을 미리 체크한 후 무작정 해설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제 이해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했다. 그냥 문제를 보면 답과 해설이 모두 떠오를 정도로 해설지를 완전히 '암기'했다. 나로서는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기말고사 시험이 다가왔다. 수학 시험은 부교재 문제에서 숫자 정도만 바뀐 수준이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받은 성적은 '89점'. 나는 이것이 나만의 공부법이 가져온 긍정적 결과라고 생각했다. 이때 받은 높은 성적이 나의 잘못된 공부방법을 완전히 고착시켜버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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