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관념
친구들이 나를 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말
고등학교에 열등생으로 입학하게 되면서 내가 목표로 세운 것은 딱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전교에서 공부 열심히 하는 것으로 1등 하기, 두 번째는 시중에 있는 문제집을 모두 풀기. 두 번째 목표가 생긴 것에는 지난 기말고사에서 문제집을 달달 외운 것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 컸다.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나의 심각한 강박관념은 나 스스로를 계속 혹독한 궁지로 몰아넣는 데에 상당히 일조했다.
나의 하루 일과는 이러했다. 아침에 일어나 점호를 한 뒤 식사를 마치면 빠르게 샤워를 하고 교실에 1등으로 도착한다. 그렇게 하면 수업 시작 전까지 대략 30~40분 정도의 시간이 남는데, 그 시간에 나는 공부를 했다. 그 이후로 점심식사 전까지 쉬는 시간에 항상 수학 문제 1~2문제를 풀거나 영어 단어를 외우고 다른 아이들이 자거나 떠들고 있으면 남들보다 오늘 10분을 더 공부했다는 생각에 희열을 느꼈다.
점심식사 후가 나의 유일한 여가시간이었다. 남은 점심시간에는 매점에서 사 온 커피를 마시며 매일 아침 배송되는 신문을 읽었다. 길어봤자 20-30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알아갈 때 나는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
짧은 행복이 끝나면 다시 쉬는 시간마다 졸음을 참고 공부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매우 오만한 행동이었지만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이미 선행학습이 끝난 수업 진도를 나가실 때는 독서대로 문제집을 가리고 다른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 공부시간 확보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는 의미다. 저녁 시간도 마찬가지로 다른 친구들이 쉬고 있을 때 미리 30~40분 먼저 교실 의자에 앉아 공부했고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는 자정까지 최대한 엉덩이를 붙이려 노력했다.
하루 동안 공부가 부족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이렇게도 했었다. 시험기간에는 새벽에도 부족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연등실 이용을 허락해주는데, 나는 이곳을 평상시에도 이용하고자 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미리 창문과 문틈에 신문지를 붙여놓았다. 그러고 나서 취침시간이 되었을 때 자는 척을 하고 있다가 기숙사 사감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때 몰래 침대에서 일어나 연등실에서 새벽 넘어서까지 공부하는 것이다.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조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지만 나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내 옆에 있는 다른 친구들보다 내가 절대적인 시간을 더 많이 공부했으면 됐으니까.
내가 보던 수학 인터넷 강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은 수학강사가 되기 위하여 몇 년간 시중에 있는 모든 문제집을 사서 풀었다고. 나는 이 말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이해력이 부족하여 수학을 많이 어려워하고 있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문제집을 모두 사서 풀고 해설지까지 완전히 외워버리면 못 푸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문제집을 닥치는 대로 사 모으기 시작했다. 문제를 풀다 너무 어려우면 일단 넘어가고 나중에 해설지를 외웠다. 한 문제를 오래 붙잡고 있기엔 아직 풀어야 할 문제집들이 많았으니까. 그렇게 내 사물함에는 다 푼 문제집들이 쌓여갔고 나는 그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친구들이 나를 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독하다" 어떻게 쉬지도 않고 공부를 하냐고, 힘들지도 않냐고 친구들이 항상 물어왔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나 자신이 힘들면 힘들수록 그곳에서 짜릿한 희열을 느끼는 변태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죽도록 힘들었지만 내가 힘들어야만 주변 친구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의 이 고통이 심하면 심할수록 내 성적이 오르는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더 혹독하게 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