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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D Day A Day

선배들과의 만남

누구보다 큰 용기를 가진 후배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by 서윤

한일 고등학교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인 데다 집을 1년에 4번 정도밖에 보내주지 않을 정도로 학생관리가 철저한 곳이다. 부모님과 처음 떨어져 생활해보는 것이기에 적응기간인 3일간 수업 없이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는데 OT의 마지막 날 일정표에는 '선배들과의 만남'이라는 시간이 꽤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과연 그 '선배들과의 만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가 우리 신입생들 사이에서는 늘 논란의 대상이었다. 처음에는 명문 대학에 진학한 선배님들이 새롭게 입학한 신입생들을 위해 조언을 해주시는 자리이겠거니 생각했으나 친한 선배들이나 선생님들에게 여쭤보아도 돌아오는 대답은 오직 겪어보면 알게 된다 혹은 고생해라라는 말이 전부였다. 그러니 우리들은 대체 그 '선배들과의 만남'이 무엇이기에 이런 답변이 나오는지 계속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그 시간이 다가오자 우리는 소극장에 모여 앞으로 있을 행사를 위해 대기했다. 나는 그새 친해진 친구들과 계속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고 나머지 친구들은 나처럼 떠들거나 엎드려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너무나 평화로운 소극장. 그 고요함을 깨고 철문을 발로 차는 소리와 함께 고함이 들려왔다.


"다 의자 위에 올라서서 눈 감아!!!"


어리둥절한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도 모른 채 선배들이 지시한 대로 눈을 감고 의자 위에 올라가 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두려운 상황에서 선배들의 성난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지금부터 인사교육을 실시한다. 앞으로 선배나 선생님 또는 외부인을 만나면 45도 이상 허리를 숙여 인사해라. 알겠냐?"

"네!!!"



선배들은 우리에게 허리를 굽히라고 명령하며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중간중간 지시에 똑바로 응하지 않는 후배는 따로 데리고 나가 얼차려를 시키면서. 나는 아픈 허리 통증을 참아가며 선배들 눈에 띄지 않도록 최대한 버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견디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내 몸은 끝내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야, 너 지금 개기냐?"


자세가 흐트러지기 무섭게 선배 하나가 달려왔다. 나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그런 것이라 말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선배는 나를 밖으로 불러내 그대로 땅바닥에 엎드리게 했다.


"〈하나〉하면 〈인사를〉, 〈둘〉 하면 〈잘하자〉. 똑바로 해라."

"네!"

"하나!"

"인사를-!!!"



나는 팔을 굽혀 몸을 낮췄다. 5초쯤 지났을까. 아무리 기다려도 선배는 둘을 외치지 않았다. 내 몸을 지탱해주던 팔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10초 정도가 더 지나 도저히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쯤 선배가 드디어 둘을 외쳤다.


"잘-하자!!!"



선배의 얼차려는 그로부터 약 5분간 지속되었다. 다음부터는 쓰러지지 않고 잘하겠다는 약속을 두세 번씩 반복했다. 선배는 나의 약속을 몇 차례 더 받아내고야 만 뒤 다시 소극장으로 복귀시켰다.



소극장은 여전히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얼차려가 한창이었다. 나는 아까 그 자리로 복귀해 다시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십니까'라는 말을 목청이 터지도록 수없이 외쳤다. 공부하러 들어온 학교에서 왜 이런 것까지 하고 있어야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우리는 한 시간 가량 같은 짓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반복한 뒤에야 선배들의 통제 하에 기숙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후로도 학교생활 내내 선배들의 얼차려는 계속되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도 너무 시끄럽다며 올라와 책걸상들을 교실 뒤편에 몰아넣은 다음 팔 굽혀 펴기를 시켰고 일요일마다 기숙사 청소 상태를 점검하여 마찬가지의 체벌을 가했다. 학교생활 초기에는 근육통 때문에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을 정도였으니 그 강도가 만만한 수준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취급에 많은 친구들이 힘들어했다.


이러한 악습의 장점도 분명 존재한다. 공부 좀 해봤다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선생님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공부를 잘한다는 이미지가 생기면 그때부터 알게 모르게 그들로부터 특별 대우를 받게 된다. 입시에 중요한 대회 같은 것을 진행할 때 남들보다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잘못을 한다 하더라도 따로 면책권이 주어질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런 대우에 점차 익숙해지게 된다.


선배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러한 관습은 우등생들이 가지고 있던 위와 같은 오만함을 많이 없애주었다. 성적과는 상관없이 모두를 동일한 후배, 학생으로 보고 훈계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점차 스스로 겸손함을 깨닫고 우등생이 아닌 한 명의 평범한 사람으로 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훨씬 더 많이 존재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아직 이러한 구시대 적인 유물이, 그것도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자행되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몇몇 친구들은 이러한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전학이라는 길을 선택하기도 했을 정도니 말이다. 이는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또한 이러한 악습은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공부에 악영향을 끼친다. 평상시 운동을 하던 아이들도 아니고 책상에 앉아만 있던 학생들에게 얼차려를 시키니 몸이 남아날 리가 없다. 얼차려 한 번에 온 몸을 땀으로 적시고 나면 피곤해서 한동안은 책상에 엎드려서 쉬어야 했다. 물론 우리도 사람인지라 결국 적응을 하기는 한다지만 그것이 올바른 방향인지는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이제는 이 악습이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나 또한 그들의 행위를 그냥 방조했던 선배로서 이로 인해 고통을 느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악습을 없애기로 결심한, 누구보다 큰 용기를 가진 후배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당신들의 용기로 수많은 후배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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