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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D Day A Day

콤플렉스

나 자신을 인정하고 그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받아들였다

by 서윤

어렸을 때부터 나의 발목을 붙잡아왔던 영어. 그나마 중학생일 때까지는 암기 위주의 내신 시험으로 인해 영어 실력자들과의 그 간극을 메울 수 있었다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특히 다른 과목들에 비해 영어의 경우는 사람들의 수준을 명확히 가늠할 수 있는 공연 영어 시험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비교당하기 십상. 나의 머릿속에는 영어가 항상 콤플레스로서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서울대에서 제작한 공인 영어인증 시험인 TEPS를 가장 대표적인 영어시험으로 생각하고 틈날 때마다 응시했다. 텝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독해, 청해, 문법, 단어 파트로 구성되어있는 영어 시험으로, 토익보다 조금 어렵고 토플보다 조금 쉬운 시험이라고 이해하면 알아듣기 쉬울 것이다. 학교가 워낙 시골 촌동네에 있는지라 시험을 보러 가려면 2시간 정도 걸리는 천안 시내로 나가야만 했는데 다행히도 텝스 관리위원회 측에서 우리의 상황을 배려하여 2, 3개월 단위로 한 번씩 학교에 와 교실에서 시험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아직 고등학교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의 텝스 성적은 대개 990점 만점에 700점 이상이었다. 나는 아직 텝스 시험을 본 적이 없기에 그 수준이 어느 정도 인지를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대략적으로는 짐작하고 있었다. 텝스 기출문제집을 구매해서 풀어보면 나의 위치를 파악해보는 게 얼추 가능했기 때문이다. 비록 열등생으로 입학했기는 하나 나도 친구들과 비슷한 수준까지는 성적을 끌어올리고 싶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 처음으로 보는 텝스 시험까지 약 한 달. 나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의 대부분을 텝스 공부에 투자하여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되지 않는 청해를 스크립트까지 꺼내가며 반복해서 듣고 어려운 텝스 단어들을 계속해서 외웠다. 독해의 경우 모르는 단어가 워낙 많아 글을 읽는데 꽤 난항을 겪었지만 전자사전으로 해당 단어들을 모두 찾아가며 문장 구조를 읽어내는데 온 신경을 썼다. 한 달 이상 공부하니 그래도 처음 문제집을 펼쳤을 때보단 확실히 나아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나의 첫 텝스 시험. 역시나 아직 내게 영어시험은 큰 부담이었다. 시간이 부족할뿐더러 어려워서 풀 수 있는 문제 자체가 얼마 없으니 앉아 있는 것이 완전 헛수고일 정도였다. 그래도 주변 친구들 말론 첫 시험은 보통 500점 정도 받는다고 하니 나도 그 정도는 당연히 받겠거니 하고 막연하게 낙관하고 이었다. 그러나 나의 성적표에 적혀있는 텝스 성적은 「358점」. 아무리 처음이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성적이었다.


그제야 나는 친구들과 차이나는 나의 객관적인 영어 수준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랑 비교를 해보아도 그나마 못 본 친구와 100점 이상 차이가 났으니 가히 우리 학교 영어 실력 꼴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나머지 과목들도 잘하는 것 하나 없는데 영어 공부는 또 언제 한단 말인가!



나는 친구들이 텝스 성적의 하한선으로 보고 있는 700점을 목표로 삼아 공부했다. 수능 영어와는 또 다른 느낌이기에 따로 시간을 배분하여 틈틈이 공부해야 했다. 고등학교 3년간 450점, 500점, 580점, 600점 이런 식으로 조금씩 오르긴 했지만 도저히 600점 대에서 벗어나지를 못해 700점의 벽을 넘기란 쉽지 않았다.


600점 대에서 계속 머물러있기를 약 1년. 사실상 고등학생 시절 마지막 텝스 시험인 3학년 3월 시험에 난 응시했다. 그때쯤 되면 다들 수능 영어에 몰두하느라 텝스 시험을 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첫 시험 때 목표로 세운 성적을 넘고 그동안 쌓여있던 콤플렉스를 떨쳐내기 위해 마지막 시험을 응시한 것이다. 나쁘지 않게 본 것 같다고 생각하고 2주 정도 뒤 받은 나의 성적표는 이러했다.


Score : 712



너무나 기뻤다.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성적일지 몰라도 나에겐 꿈에 그리던 성적이었다. 그래도 졸업 전에 목표를 이루어내기는 하는구나.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친구들이 1학년 때 받은 성적을 받는 데에도 난 2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영어가 대표적이긴 하지만 나머지 과목도 마찬가지이다. 흔히 말하는 천재들 사이에서 그들과 같은 위치에 올라선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 자신을 인정하고 그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들과 비슷한 위치에 올라섰다. 비록 최종적으로 나는 그들보다 또 다른 1년이 더 필요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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