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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 Jan 10. 2020

땜빵

나의 뒷목에는 선명한 수술 자국이

 미용실의 문을 여니 출입문 위쪽에 달려있는 종이 울렸다. 나는 미용사의 안내에 따라 커다란 거울 앞 의자에 천천히 앉는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 미용사는 나에게 원하는 스타일이 있는지 물은 뒤 가위를 들어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한다. 거침없이 잘려 나가는 머리카락들이 눈에 보인다. 머리를 정리하던 도중 미용사가 잠시 멈칫하더니 거울을 통해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을 꺼낸다.


              

 "여기 뒤에 있는 흉터는 어떻게 된 거예요?"               



 맞다! 머리 뒤통수에 선명히 새겨져 있는 나의 흉터.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그 흉터를 떠올리며 나는 나의 머릿속 시곗바늘을 고등학교 3학년 그때 그 시절로 돌려본다.       


        

 수험생 스트레스로 한창 골머리를 앓고 있던 '고쓰리'. 나에게는 단순히 심리적·정신적 스트레스뿐만이 아닌 그로 인한 신체적 변화까지 일어나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열꽃. 얼굴뿐만이 아닌 머리 두피 전체까지 나의 몸엔 붉은 두드러기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기숙사 고등학교이다 보니 병원에 가는 것이 마땅치 않아 처음 그런 두드러기가 올라왔을 때는 별 것 아니겠더니 하고 그냥 방치해두었다. 그러나 점점 머리의 통증이 심해져갔고 결국엔 야간 자율학습을 빼고 근처 시내에 나가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터진 염증으로 인해 환부를 휴지로 돌돌 감싼 채 말이다.                



 염증의 원인은 매우 간단했다. '스트레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고들 하던데 역시나였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마 고3이기 때문에 생긴 학업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스트레스임에도 심한 염증이 생길 정도로 내가 유독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편인지는 그 날 처음 알았다. 나는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을 받아 가지고 온 백팩에 집어넣었고 교실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목 뒤로 넘겼다.         


      

 문제는 2주일치 약 정도로는 이 염증이 완치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부기가 가라앉는 것은 잠시, 약이 끊기면 얼마 되지 않아 염증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프다고 해서 왕복 2시간이 넘게 걸리는 시내를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매번 왔다 갔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가만히 두면 언젠가는 나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아픔을 참고 생활하기로 마음먹었다.     


          

 목 뒤 염증으로 인해 고개를 돌리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뒤나 옆을 보기 위해서는 우스꽝스럽게도 70년대의 배트맨 TV 드라마처럼 상체를 함께 움직여야만 했고 자칫 이를 까먹고 고개만 먼저 돌리는 날에는 하루 종일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염증은 더 커지고 통증은 더 심해졌다. 책상에 엎드려 자다 눈을 뜨면 목 뒤에는 터진 고름이 가득했다. 곪아 왔던 염증이 체육활동을 하거나 조금 격한 행동을 하면 시도 때도 없이 터져버리니 나는 항상 주머니에 휴지를 지참하고 다녀야만 할 정도였다. 그러니 나중에는 공부에 지장이 가 집중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도저히 자연적으로는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자 나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나의 목 뒤를 잠시 보시더니 곧이어 말을 꺼내셨다.      


         

 "염증이 너무 많이 올라와 있어서 수술로 고름을 쨀 수밖에 없겠네."  


             

 수술이라니! 병원에 계속 다니기만 했어도 수술까지는 하지 않았을 텐데 시간을 아까워하다가 결국 몸에 칼까지 대게 생겼구나. 나는 의사 선생님과 수술 날짜를 잡은 후 다시 한번 병원에 방문하여 목 뒤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진한 칼자국을 남겼다.           


    

 그렇게, 나의 뒷목에는 선명한 수술 자국이 남게 되었다. 주변에서 나에게 왜 뒷목에 흉터가 생겼느냐고 물으면 나는 나의 고단했던 지난 수험생활을 떠올리곤 한다. 가슴 아팠던, 그리고 그만큼 지쳐있었던 그때 그 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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