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텐더와는 다트 내기를 하면 안 된다

바카디 151의 공포

by 서윤

술의 알코올 함량을 나타내는 단위로는 일반적으로 도수가 쓰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바의 세계에서도 가장 많이 쓰이는 용어는 여전히 도수이지만 그 다음으로 자주 볼 수 있는 단위가 있다. 'Proof'. 낯선 용어이기에 어려워 보일지 모르겠으나 그냥 알코올 도수에 2를 곱하면 Proof 단위가 된다. 예를 들어 소주의 도수가 17도라면 소주의 Proof는 34Proof인 식이다.


그런데 이 Proof 단위 자체가 고유명사처럼 쓰이는 술이 있다. 바카디 사에서 제조한 '바카디 151'. 이 술의 알코올 함량은 무려 151proof, 자그마치 75.5도이다. 궁금한 사람이 있을까봐 살짝 말해주자면 40도 짜리 보드카 한 샷을 들이키면 식도가 타오르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지만 이 양주를 한 샷 들이키면 식도를 넘어 위장까지 녹아 없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알코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무래도 이렇게 도수가 강한 술이다 보니 우리들 사이에서는 칵테일의 재료로 쓰이는 것만큼이나 내기를 위한 벌주로 쓰이는 경우가 잦다. 특히 당구대, 다트, 보드게임 등이 마련되어있는 우리 매장은 벌주를 마시기에 최적의 장소. 워낙 도수가 강하다보니 식용으로 쓰이기보다는 불쇼로 더 자주 쓰이는 이 술을 벌주로 한번 들이키고 나면 다음 내기에는 반드시 이기고야 마리라는 강한 의욕이 자연스레 샘솟는다. 물론 알콜 덩어리를 마시고도 정신을 잃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지만.


훤칠한 키의 남자 손님 둘은 개인적으로 좋은 일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알코올의 마법에 힘입어 기분이 들떠서인지 흥분을 쉽지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바 한 쪽 구석에 마련되어 있는 다트 기계에는 천원 짜리 지폐가 쉴틈없이 들어갔고 들어간 지폐 수 만큼이나 날렵한 다트가 표적을 향해 바쁘게 몸을 날렸다. 모르긴 몰라도 승부에 목마른 수컷들이 내기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기계 화면에 새로운 점수가 나타날 때마다 수컷들의 목젖은 강하게 진동했고 바 뒤쪽에 있던 우리로부터 꽤나 큰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그 관심을 의식했는지 손님의 관심 또한 우리 바텐더들을 향했다.


안 바쁘시면 저희랑 같이 다트 할 생각 없어요?


자기들끼리만 하기에는 조금 심심했던 모양이다. 마침 손님도 그 남자 손님들을 제외하고는 두 테이블 정도 밖에 없었고 우리도 주문이 뜸해 심심해 하던 참에 들어온 꽤나 솔깃한 제안이었다. 나와 또다른 견습 바텐더는 매니저 형에게 허락을 구하고 손님들의 제안에 기꺼이 응했다.


"그냥 하기엔 재미 없고. 뭐라도 걸고 하는거 어때요?"


아무리 내기라지만 손님과 돈을 걸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을 걸어야 적정한 수준에서 서로 긴장감을 유지하며 게임을 진행할 수 있을지 나는 곰곰히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것이 바로 '럼 151'이었다. 나는 바 아래 선반에 놓여있는 구릿빛의 바틀 하나를 꺼내 손님들 앞에 선보였다.


"벌주는 어떨까요? 지는 팀이 151 더블 샷을 나눠서 마시기로. 무려 70도가 넘는 술이에요."


나의 제안에 내기에 참여한 모두가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역시 우리 대한민국은 술게임의 나라.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벌주로는 151보다 보드카 한 샷 정도가 적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남아있지만 어쨌거나 나는 잔 진열대에서 더블 샷 잔 하나를 꺼내 151을 잔의 표면까지 가득 부었다. 그리고 내가 벌주를 준비하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이 다트를 할 준비를 끝마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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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고백하건데 손님이 없는 바를 지키고 있는 우리 바텐더들에게는 다트 게임이 곧 일상이나 다를 바 없었다. 홀을 모두 정리하고 부족한 음료를 채우고 사용한 술병을 모두 닦아도 손님이 오지 않을 때엔 민망한 손을 감출 길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잠시 눈을 붙이거나 핸드폰을 만지고 있기엔 바를 관리하는 사장님이나 매니저형에게 눈치가 보이는 노릇이다. 마냥 놀기는 눈치보이고 일을 하기엔 할 것이 없으니 바에 활력이라도 돋울 겸 모두가 다트 기계로 향해왔던 것이다.


양궁 표적처럼 중앙에 가까울 수록 점수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정중앙을 제외하고는 점수가 어떻게 해야 높게 나오는지 우리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잘 맞추는 비법이라 할 것은 특별히 없다. 그저 자주 던지다보니 실력이 늘고 실력이 늘다보니 어지간하면 원하는 목적지에 닿은 것 뿐이다. 바텐더들의 다트 실력은 그렇게 키워졌다.


이런 바텐더들을 상대로 하는 다트내기에서 생초짜인 손님들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심지어 맨정신으로 게임을 해도 모자랄 판에 취중투척이라니. 손님들의 자신감으로 시작된 게임은 라운드가 거듭될 수록 격차가 점점 벌어져 갔고 결과는 불보듯 뻔하게 바텐더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내기에서는 기분좋게 이겼지만 손님에게 정말 그 술을 먹일 생각은 없었다. 승부욕 강한 남정네들의 자신감을 꺾고 바에 있는 동안 잠깐 골려주는 것으로 나는 충분했다. 하지만 남아일언중천금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미련한 자존심이라고 해야할지 손님 중 하나가 다짜고짜 151 더블 샷을 잡아채 목 뒤로 강하게 넘겼다. 그리고 그대로 픽 쓰러졌다.


손님의 팔다리가 아무런 힘을 받지 못하고 바닥과 마주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머릿 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디 문제라도 생긴 것 아닐까 하는 손님에 대한 걱정도 걱정이지만 혹시나 여기에 토하면 어떻게 해야하지라는 나를 위한 걱정이 더 앞섰다. 대체 왜 하고 많은 술 중에서 151을 택했는지 나 자신을 잠시나마 원망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져 버렸고 손님은 정신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쓰러진 손님을 부축하는 것은 다행히도 내가 아닌 다른 손님의 몫이었다. 벌주를 마시지 않은 손님은 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연거푸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친구의 팔을 자신의 목덜미 뒤로 감아 올렸다. 술에 취해 쓰러진 사람은 평상시의 사람보다 1.5배쯤은 더 무겁다. 얼떨결에 보호자와 피보호자 신세가 되어버린 그들은 나의 걱정어린 잔소리에도 괜찮다며 힘겹게 바 안을 빠져나갔고 그 이후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연락을 달라고 연락처를 남겼음에도 아직까지 별다른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다트 게임 손님들은 다행스럽게도 무사히 귀가한 것 같다. 아무튼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손님과 술을 건 내기는 되도록 하지 않는다. 명심하시길. 바텐더와는 다트 내기를 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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