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 있어요?

가끔은 로맨스를 꿈꾸지만

by 서윤

바텐더는 되도록이면 손님에게 시선을 두지 않으려 노력한다. 손님을 향한 관심은 의도가 어떠하든 손님에게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의 바로 맞은 편에서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도 바텐더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바로 그런 까닭이다. 괜히 똥폼 잡는 것 같이 보일지 몰라도 나를 청자로 하지 않는 남의 이야기에 시시콜콜 반응하는 것은 손님에게 실례가 될 수 있다. 그것도 은밀한 이야기가 자주 오가는 바에서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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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럴듯한 직업의식을 가진 시늉을 하는 나에게도 위기의 순간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를 향한 시선이 계속 느껴질 때. 내가 남들보다 넓은 시야를 가진 것도 아닐 뿐더러 옆이나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신기하게도 나를 향한 시선만큼은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어딘가 그런 기분이 느껴진다하면 100%다. 대부분의 자극에 무감각한 나지만 이런 직감만큼은 틀린 적이 없다.


그 날도 그랬다. 손님들의 주문 세례를 받아내고 사용한 바틀과 기구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앞 쪽의 테이블로부터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것이다. 손님이 바텐더를 쳐다보는게 이상한 일은 아니거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시선은 그냥 넘기기엔 좀 과했다. 타올로 바틀의 푸어러를 모두 닦고 쉐이커, 지거, 바스푼 등의 기구들을 모두 설거지한 이후에도 그녀의 시선은 나의 얼굴을 따갑게 비췄다. 아무리 둔감한 동물원의 사자일지라도 계속되는 관광객들의 관심에는 반응을 보이는 법이다. 결국 나도 되도록이면 손님에게 시선을 두지 않는다는 내 신조를 어기고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테이블로 나의 시선을 옮기고야 말았다.


4명의 20대 초반 여성들로 구성된 그 테이블은 서로가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활기차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 대화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중 한 사람만은 그 거대한 흐름에서 벗어나 내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노력하면서 나를 계속 신경쓰이게 만드는 그 시선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그녀는 그녀들의 무리에 속해있으면서도 관심은 전혀 다른 곳에 쏟고 있는 듯 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하던 중에 너무나 어색하게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곧바로 시선을 깔고 바쁜 척을 했다. 하지만 나의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그녀가 점점 나에게로 다가오는게 느껴졌다.


"저기요, 혹시······."

"필요하신게 있으신가요?"


혹시··· 여자친구 있으세요?


태연하게 받아쳤으면 참 좋았을텐데 낯선 이에게 첫눈에 호의를 받아본 적이 거의 없기에 나의 당황스런 표정은 대번에 드러났다. 나를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라면 이해하겠지만 나는 결코 낯선 이에게 한방에 호감을 살만한 인상이나 외모가 아니다. 오히려 경계심이나 위협을 줄만한 외모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일례로 나는 대학교 새내기 때 외모때문에 학과 남자 선배로부터 훈계 아닌 훈계를 받은 적이 있는데 사건의 전말은 아래와 같다.


학과 행사를 위해서 합주 연습을 하고 있던 나는 난생 처음 만져보는 기타이기에 연습 내내 낑낑댔다. 다들 어찌나 노래도 잘하고 악기도 잘 다루는지, 밴드 팀원들에게 도움은 주지 못할 망정 피해는 주지 말아야겠다는 것이 나의 소박한 목표였을 정도다. 그런데 팀장의 지시로 연습은 갑자기 중단되었고 나는 남자 선배에게 불려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A가 네가 무서워서 도저히 같이 공연 못하겠대. 힘든건 알지만 그래도 얼굴은 좀 피면서 하자.


나는 나에게 서툰 기타를 잘 쳐보기 위해 연주에 몰두했을 뿐이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표정이 굳었을 뿐인데 내 모습을 본 여자 선배가 이를 화난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결국 나는 공연에 참여하는 곡 수를 줄이고 그 여자선배와의 오해를 풀어야만 했다.


외모로 인한 수난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머리를 빡빡 민 훈련병 시절, 외로운 나에게 같은 훈련소 동기들은 물론이고 훈련소 조교들조차 좀처럼 말을 걸지 않았는데 난 그 이유를 도저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해 곧 알게되었는데, 평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생활관에 앉아 멍때리고 있는 나에게 동기 중 하나가 슬금슬금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 어디 화난거 있어요?

그나마 훈련소는 나았다. 자대로 전입오고나서부터는 그놈의 외모 때문에 나는 선임들로부터 숱한 오해를 받아야만 했다. 선임들의 잔소리나 훈계에 별다른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향한 갈굼은 항상 표정관리 똑바로해라로 끝이 났다. 선임들의 기대와 달리 나는 실제로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악감정이 없으니 표정이 변하지 않고 표정이 변하지 않으니 그저 무표정이었을 뿐인데 그 표정이 선임들에게는 자신을 향한 분노표출로 느껴졌나보다. 슬프게도 외모는 내가 고칠 수 있는 범위의 것이 아니었고 내 위의 선임들이 모두 전역할 때까지 나는 같은 위기를 계속 겪어야만 했다.


그러니 그녀의 호의가 나에게는 낯설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라고는 지금까지 말한 나의 외적인 모습과 칵테일을 능숙하게 만드는 모습, 그리고 손님을 응대하는 모습 뿐인데 나의 이런 모습들만 보고도 용기있게 다가와 전화번호를 묻는 그녀가 대단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상대가 여성이어도 이러한 호의가 당황스럽게 느껴지는데 낯선 남자의 러브콜을 받는 여자들은 얼마나 당황스럽고 한편으로는 두려울까하는 괜한 오지랖까지 생겼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주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주지 못하겠다는 변명을 하며 대신 여자들이 좋아하는(내가 가장 추천하는) 피치 크러시 칵테일을 만들어 줬다. 왜 전화번호를 주지 않았느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도 솔직히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밖에 답을 못할 것 같다. 너무 당황스럽기도 했고 혹시나 그녀가 사기꾼은 아닐까하는 의심도 살짝 했으며 나는 지금 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볼품없는 직업의식도 한 몫 했다. 그러나 가끔 그때 그냥 번호를 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참 내가 생각해도 바보같다.


모르긴 몰라도 분위기 있는 바에서 일한다는 점, 멋진 유니폼을 입고 다양한 손님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는 점, 그리고 술을 전문적으로 다룬다는 점이 이성에게 꽤나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한 것 같다. 그녀가 위협적인 외모를 이상형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 한 말이다. 바에서의 운명적인 만남을 기대하고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같은 인연이 이렇게 끝이 났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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